空寂靈知의 光明

본디 공(空)이라는 글자는 산에 파진 동굴을 나타내는 구멍'혈(穴)'에 만들'공(工)'을 붙인 글자다.

그런데 사실 여기에서 뜻하는 공(工)은 동굴의 바닥에서부터 천정까지를 헤아린다는 뜻을 지닌 글자이기 때문에 결국 공(空)이란 동굴의 상하가 '비었다'는 뜻으로 빌'공(空)'이라 했다.

따라서 공(空)이란 아무런 거침이 없이 텅 빈 공간을 뜻하는 글자다. 그렇기 때문에 형형색색을 떠난 텅 빈 공간 자체를 뜻하는 말로 형색 이전의 무형무색의 상태를 가르키는 말이다. 게다가 적(寂)이란 집을 뜻하는 집'면(宀 )'속에 적다는 뜻을 지닌 적을'숙(叔)'을 넣어 집안에 사람이 거의 없어 어떤 소리도 나올 수 없음을 뜻하여 고요할'적(寂)'이라 했다.

따라서 '공적(空寂)'이라 하면 텅 빈 동굴이나 집안에 그 공간을 지키고 있는 주인공이 없기 때문에 전혀 소리마저도 없다는 말이다.

즉 줄기를 따라 끊임없이 순환하는 도는 노자의 말씀처럼 "애써서 귀신처럼 엿보려 하나 볼 수도 없고, 애써서 귀를 쫑긋하여 들으려 하나 들을 수도 없고, 굳이 만지려 하나 만져지질 않는다(視之不見, 聽之不聞, 搏之不得)"는 표현처럼 형색을 떠난 이른바 '도(道)'를 뜻한 말이다.

따라서 '공적'으로 표현된 도는 일단 무형무색하여 형색으로나 언어로 설명할 수 없다.

일단은 '공적'하다는 표현이 가장 알맞은 말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끊임없이 돌고 도는 일정한 줄기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 줄기를 일컬어 한편 줄기 '리(理)' 곧 알맹이라 말한 것이다.

그러나 이 줄기를 얻어 알자면 안으로는 허령한 신령을 회복해야 하고, 밖으로는 사물 자체에 갊아 있는 진실을 걸림 없이 내 안으로 끌어 드릴 수 맑은 눈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사물과 내가 비로소 일체를 이룰 때에 드디어 '공적영지의 광명'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옛 말씀에 이른바 '빈 집안이라야 밖에서 나는 소리를 익히 들을 수 있다(虛堂習聽)'는 말은 허령한 신령을 회복함을 이름이다. 그리고 '빈 골짜기라야 소리가 전해져 온다(空谷傳聲)'는 말은 사물 자체의 진실이 전해져 온다는 것을 말함이다.

그래서 밖의 진실을 안에서 고스란히 받아 드리는 감흥을 일찍이 정자는 "만물을 고요히 살펴 스스로 그러함을 얻으니 사 계절 일어나는 아름다운 흥취를 여러 사람들과 함께 하리라(萬物靜觀皆自得, 四時佳興與人同)"고 읊었다.

<문역연구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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