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원(一圓)은 제불제성(諸佛諸聖)의 심인(心印)이다. 이 뜻은 모든 부처와 성현들의 마음 씀씀이가 진리에 의한 모습으로 도장을 찍은 것처럼 항상 나타남을 일컫는다. 여기에서의 부처는 서가모니 부처를 국한시켜 지칭하기보다는 깨달음에 의해 사는 모든 사람을 말한다.

깨달음에 이르는 사람과 그 의미에 앞서 좀 더 근본적인 질문은 '진리가 우주만유에 존재하듯 영혼 속에도 자리할까?'이다. 그 동안 현대과학이 계량화하여 표현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인식의 체계에 도움을 주었지만, 계량화하기 어려운 영혼에 대해서는 그만큼 인식화의 과정이 참으로 더디다. 느끼고 생각하는 주체인 영혼을 모른다는 것은 나를 모른다는 의미이니 삶에 의미가 있기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뇌과학에서도 많은 연구가 있지만 뇌의 정상적인 활동을 도와주는 정도에서 그친다. 일부에서는 선정(禪定)에서의 느낌을 뇌의 일부를 건드리거나 약물로써도 가질 수 있다고 하나, 일반적인 마음을 더욱 맑고 지혜롭고 의지력 있고 포용심을 지니게 할 수 있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대답을 못한다.

건강한 뇌를 가진 사람으로서 마음이 맑고 지혜로우며 의지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은 건강한 육신을 가지려면 약물이나 의술이 아닌 운동을 해야 하는 것처럼 마음을 단련하는 수밖에 없다.

그럼 마음에 어떤 요소가 있고, 또 어떻게 단련할 수 있을까.

물질의 근원처럼 마음의 근원을 찾아 들어가면 모양, 색깔, 냄새가 없다. 잡거나 보거나 느낄 수 없기에 '없다'고 표현한다. 그런데 그 없는 마음이 비롯되어서 세상을 느껴 생각을 하고 행동으로 옮긴다.

또 이들을 바탕으로 각자가 한 의식의 체계를 이룬다. 이를 일컬어 비었으되 오묘하게 내재하여 나타난다는 뜻의 진공묘유(眞空妙有)로 표현한다. 만물에 진리가 진공묘유의 모습으로 존재한다는 것처럼 마음 즉 영혼에도 존재함을 의미한다.

마음 단련은 육신을 지닌 동물들이 사유하며 사회를 이루는 곳에서 하는 것이 좋은데, 그곳이 인간사회이다. 육신이 없는 영혼도 공부할 수 있지만 생각하는 즉시 옮겨가서 반응하기에 수행하기 어렵다. 인간 사회는 기본적으로 재색명리에 의한 착심을 기반으로 이루어진 사회이지만 고급영혼들이 와서 공부하고 놀거나, 인간을 가르치며 자신이 배우는 사업장이기도 하다.

수행자에 있어서 이 세상은 영혼이 진급하는 장인데 그 진급의 과정은 삶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이 삶을 수행으로 승화시키며 살아가는 사람이 수행자이고 수행의 완성단계에 있는 사람이 제불제성이다.

<삼동연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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