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메우기, 가장 중요한 부분은 정신에 있습니다"

▲ 공방 한켠에 놓인 윤 악기장의 증조부·조부·아버지가 제작한 전통 북.

▲ 윤종국 악기장이 자신의 작품 앞에 서 있다.
북 만드는 작업을 '북메우기'라고 한다. 가죽을 북통에 씌우는 작업을 칭하는 말이다. 북 소리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작업이어서인지 북을 만드는 작업을 일컫게 됐다.

서울 삼성동 중요무형문화재전수관에서 만난 북메우기의 장인인 윤종국(53) 악기장 은 4대 째 전통문화의 맥을 이어오고 있다.

4대 째 이어온 장인
명예 있지만, 수익은 …


윤 악기장은 "어릴 적에는 몇 대를 내려오는 일인지 몰랐다. 취미로 하시는 일인 줄 알았다. 어느 날 아버지께서 '이 일은 할아버지로 부터 배웠다. 이제 전수를 해야 할 시기가 왔다. 4대로 계속 이어갈 것인지 선택을 해라'라고 말씀하셨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우리나라 전통문화 계승이 쉽지 않은 현실을 이야기 한 것이다. 장인으로서 자녀가 그 뒤를 이었으면 하는 바람은 있지만, 부친으로서는 아들에게는 쉽게 권유할 수 없는 고민을 한 셈이다. 결정이 쉽지 않았지만 전수받기로 결심했다.'가죽 냄새 좀 맡아보자'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증조할아버지, 할아버지, 아버지로 이어져 오는 말 그대로 가업이기 때문이다. 가업은 하고 싶어서 하고 하기 싫어서 안하는 게 아니었다.

이런 그도 젊었을 때 꿈이 있었다. 청춘과 더불어 모든 것을 포기하고 가업을 잇는다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방황도 했다. 24세 즈음에 결심을 굳힌 후 북메우기를 본격적으로 배웠다.

그는 "아버지(故 윤덕진 옹)께서 집에서 고생하는 모습을 보고 있는 게 쉽지 않았다. 군 제대 후 나의 꿈보다 가업이 우선임을 깨달았다"며 "이 일은 위대한 일이고, 꼭 해야 할 일이다. 내 젊음이 10번이 있어도 투자해 모든 힘을 쏟아야 한다는 결심을 했다"고 그 배경을 밝혔다.

그는 부친이 두가지 모습으로 비쳐진 것을 기억하고 있다. 연장(도구)을 펴고 작업을 시작하면 스승이고, 연장을 내려놓으면 자상한 아버지였다. 하지만 체벌할 때는 인정사정이 없었다. 북의 가죽, 나무, 연장 등 눈에 보이는 것은 체벌도구가 됐다. 머리로 기억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몸으로 기억하라는 뜻이었다.


그는 어릴 적부터 북메우기 과정을 모두 보며 자라왔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전수를 받은 일은 쉽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께서는 어릴 때부터 북을 만드는 과정에 대한 숙제를 종종 냈다. 말 그대로 조기교육인 셈이다. 또한 아버지께서 제일 민감해 하는 부분은 소리였다. 악기가 당연히 소리가 좋아야 한다는 것이다. '모양이 아무리 예뻐도 소리가 안 좋으면 악기로써의 가치가 없다'고 하셨다. 작업을 하실 때에는 부모관계보다 사제관계였다. 어릴 적에는 엄하신 아버지로 기억하지만, 지금 세월이 지나고 시간이 지날수록 아버지를 존경하는 마음이 강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부친의 기억을 새롭게 가다듬었다. 가죽에 유달리 애착을 가졌다는 것이다. 가죽 냄새가 보통이 아니지만, 한 여름에도 직접 무두질을 할 정도로 열정이 많았다.

그는 부친의 정신이 위대하다고 생각했다. 이 정신이 이제 그에게 맥맥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

그는 "북메우기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은 첫째로 정신이다. '고집'이 있어야 한다. 둘째가 재료이다. 내가 일이 힘들어 더 버틸 수가 없다면 선택은 둘 중 하나이다. '한다', '하지 않는다'라는 갈림길에서 '나는 죽어도 하겠다'라는 의지가 필요한 것이다"며 "좌우를 바라보지 않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한 길만 바라보겠다는 정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버지께 배운 것은 기술만이 아니라, 북에 대한 정신과 지혜였다.

이제 그도 이런 정신과 기능을 전수해야 할 시기이나 아직 쉽게 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다. 5대로 내려갈 것인지, 다른 사람에게 전수해야 하는지 갈림길에 서 있다. 대체적으로 전통적인 일들은 주로 가업으로 이어지고 있고 혈육이 아닌 사람에게 전수해 주기를 꺼려하지만 이제는 그것을 따질때가 아니라는 의미다.

그는 이에 대해 "예전에는 대부분 대가족이었기 때문에 자녀 중 한 명만 전수를 받으면 맥이 이어질 수 있었다. 요즘은 핵가족화로 자식들이 많지 않다. 전수 받지 않는다고 하면 그 맥이 끊어지고 만다. '남'이라도 전수를 해줘야 맥이 끊기지 않는다. 전수에 인색해 지지 않을 수 없게 됐다"며 "솔직한 바람으로는 아들이 전수를 받아줬으면 한다. 하지만 강요할 수만은 없다. 악기장으로 살아가면 명예는 높지만 수익이 많지 않아 그만큼 생활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는 이외에도 하나의 바람을 갖고 있다. 여유가 된다면 박물관을 만들고 싶다는 오롯함이 있다. 이곳에서 북메우기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통해 아이들도 손쉽게 전통 북에 친근함을 가지게 하고 싶다는 염원이다.

그는 "북이나 장구도 재료만 준비된다면 쉽게 만들어 볼 수 있다. 소고 같은 것은 1시간 정도면 만들 수 있다. 관람객들이 우리 전통 문화를 보고, 듣고, 느끼게 하고 싶다"고 소망을 전했다.

그에게 '유달리 정성을 쏟은 작품이 있느냐?'라는 질문을 던지자 그는 '그런 것은 없다'라고 딱 잘라 답했다. 모든 작품을 정성들여 만드는 것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사람에게 거짓말을 시킬 수 있어도, 북에게 거짓말을 못 시킨다는 말이 있다. 북을 만들며 한 과정이라도 소홀이 하면 어디라도 이상이 생긴다. 소리부터 차이가 난다. 모든 과정이 완벽해야 한다"고 다시금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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