空寂靈知의 光明 2

만물을 고요히 살펴 흥취를 얻자면 무엇부터 고요히 살펴야 할 것인가? 맨 먼저 하늘과 땅을 살펴야 하고, 그 다음으로는 하늘과 땅 사이에 끊임없이 변하는 사 계절의 이치를 살펴야 할 것이다.

그런 뒤에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만물이 나고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변화를 또한 직접적으로 일으키는 해와 달의 밝은 이치를 살펴야 할 것이며, 그 다음으로는 일월이 서로 번갈아 변화하는 그 틈새 속에서 인간의 길흉은 어떻게 얻어지는 것인가를 살펴야 한다.

옛 시인의 글귀에 "텅 빈 산에 주인은 없어도 물은 흐르고 꽃은 핀다(空山無人, 水流花開)"라는 말이 있다. 만물의 주인은 사람이라 말하기도 하지만 엄밀히 보면 주인이 아니라, 만물을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존재일 따름이지 주인은 아니다.

즉 텅 빈 산속에 심고 가꾸는 이는 없어도 꽃은 끊임없이 필 때가 되면 어김없이 피고 질 때가 되면 어김없이 진다. 또 사람과는 별다른 관계없이 물은 끊임없이 흐르고 끊임없이 스며들고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증발하여 구름이 되어 흐른다.

어찌 "솔개는 하늘을 거침없이 날고, 물고기는 물속을 자유롭게 헤엄치며 논다(鳶飛戾天, 魚躍于淵)."<중용>고 일렀던가? 그 까닭은 다름 아니라 애당초 태어나면서부터 선천적으로 부여받은 '성(性)'이 그렇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옛 어른은 솔개와 물고기가 노는 까닭을 일러 "물고기는 물이 넓다는 것으로 말미암아 온 힘으로 뛰고, 새들은 하늘이 팅 비었다는 것을 믿고 마음대로 나른다(魚因水활全心躍, 鳥恃天空任意飛)."라 읊었다.

물고기에게 물을 벗어나 하늘을 날라고 한다든지, 새들에게 물속으로 들어갔다가 마음껏 공중으로 뛰어 오르라고 주문한다면 그 말을 그대로 따를 수는 도저히 없는 노릇이다. 그렇기로 만물에게 각각 부여된 본디의 성질을 잘 알려면 그냥 게 바위 지내 듯 말은 눈으로 슬쩍 보지 말고, 생명력이 꽉찬 촉촉한 눈으로 잘 살펴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말의 진실된 머리'(話頭)를 찾자면 눈 위에 손을 얹고, 눈을 지그시 한 채 속을 잘 살피라는 뜻에서 볼'간(看)'이니 또는 살필'성(省)'을 쓴 것이다.

즉 마음을 텅 비우고 바깥으로 드러난 빛을 끊고 속에 갊아 있는 광명을 볼 수 있어야 가까스로 '공적영지의 광명'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문역연구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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