空寂靈知의 光明 3

본디 두렷이 밝은 덕상은 하늘로부터 품부받아 얻어지는 법인데 이는 곧 허령한 채로 어둡지 아니하여(虛靈不昧) 모든 이치를 다 갖추어 모든 일을 그대로 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다만 태어날 때로부터 얻어진 기품에 구애되고, 삶을 살아가는 동안 오탁악세의 용심에 가려져 때때로 혼미해 질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그 본체의 밝음을 점차 회복하여 본래의 면목을 되찾고 보면 고스란히 잃었던 밝음을 되찾을 수 있다 했다.

즉 굳이 성경현전(聖經賢典)이나 제자백가(諸子百家)를 두루 섭렵하지 않더라도 본디 지니고 있었어야 할 두렷한 덕상만을 되찾고 보면 동서를 관통하고 고금을 넘나들 수 있는 활연관통을 얻어 만사만리를 제대로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옛 말씀에 이르기를 '마음을 안정시켜 사물을 제대로 볼 수 있다면 비록 책을 읽지 않았더라도 가히 덕을 갖춘 군자라 이를 수 있으리라.(定心應物, 雖不讀書, 可以爲有德君子矣)'라고 말한 바와 같이 내가 내밖의 사물을 바로 보고자 하면 우선 먼저 '마음의 안정'이 첫째일 따름이다.

그렇다면 그런 안정을 얻어 밝음을 얻는 비결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다름 아니라 천지의 밝음을 내안으로 끌어 드려 내 밝음으로 삼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예로부터 일러 오기를 '천지와 더불어 그 큰 덕을 합하고 일월로 더불어 그 밝음을 합해야 한다(與天地合其德, 與日月合其明).'라 했다.

하늘은 만물을 덮고, 땅은 만물을 싣고 있으나 하늘 그 자체는 언제나 자강불식(自彊不息) 그대로 만물을 한 울안에 덮고, 무시선의 모범을 보이고, 땅 또한 (厚德載物) 그대로 어김없이 만물을 싣고 있는 무처선의 모양이 어찌 크다 이르지 않을 것인가?

이처럼 '천지의 큰 덕을 일컬어 삶 그 자체가 된다(天地大德曰生).'라 하였으니 천지는 곧 무시무처(無時無處)로 정심으로 응물할 수 있는 만상을 빚어 내놓기도 하고 걷어 드리기도 한다.

<문역연구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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