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고 기다릴 때 변화를 선물하는 학생들"

어려운 이웃이 늘고있다. 경산종법사는 신년법문에서 '인정미'를 강조했다. 이웃간 따뜻한 마음으로 서로를 돌봐주며 온정을 건네는 곳이 많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본지에서는 이웃과 함께 희망을 나누며 인정미를 전하는 현장이나 인물을 만났다.

1주 자선원·동그라미플러스, 2주 용인 은혜학교, 3주 군산 은혜의쉼터, 4주 원봉공회 빨간밥차 나눔현장이 게재된다.
▲ 은혜학교 학생들은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정서를 함양하고 있다.

교무실을 좋아하는 학생들. 교사가 형, 누나 같고 언니, 오빠처럼 친근한 관계를 형성하는 학교. 보통의 일반 중·고등학교에서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죽능리 5번지에 위치한 은혜학교. 한마디로 교사와 학생 간 인정미가 넘치는 교육현장이다.

4일 오전10시30분 은혜학교 교장실 문을 두드렸다. 밖은 봄 햇살로 따사로운데 교장실은 한기가 느껴진다. 학교장 강성운 교무는 "경제적 여건으로 난방을 마음껏 할 수 없는 형편"임을 설명했다. 어느 곳이나 초창기에는 근검절약 외에는 뾰족한 방법이 없음을 새삼 알게 한다. 사제간 교육열로 그 한기를 극복하는 은혜학교 구성원들. 그들의 이야기 속에는 서로를 아끼는 인간미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교사와 학생 간 친밀감 최고

자발적이고 자율적인 교육을 펼치는 은혜학교. 매주 목요일 오후 2시, 스플(스트레스 푸는 방)교실에서는 학생과 교사 간 회의가 열린다. 학교생활 중 개선할 사항을 서로 논의하는 자리이다.

강 교무는 "가령 한 학생이 잘못을 했을 경우 교사들이 벌칙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대화를 한다. 학생의 입장과 교사의 입장에서 터놓고 이야기를 나눈다. 그래서 학생들 스스로 결과를 내게 한다"고 말했다. 이는 학교의 일방적인 처벌이 아니라 학생들이 스스로 한 처벌이기에 자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똑 같은 잘못을 막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학생들은 얼마 못가 또 다시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는 사례가 다반사다. 이때 교사들은 지치기 마련이다. 그러나 교사들은 또 다시 대화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교칙에 의한 처벌이 아닌 문답과 감정을 통한 대화이기에 변화가 더디더라도 포기란 없다.

교무부장 박연하 교사는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게 학교가 운영되고 있다. 학습 역시도 개개인의 인지 정도에 맞게 하고 있다"며 "기숙사 생활을 하다 보니 교사와 학생간 친밀감이 높다. 그래서 교무실이 학생들의 놀이터가 된 듯하다. 일반학교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교사들이 늘 학생들을 풀어주는 것 만은 아니다. 엄해야 될 때는 엄하게 한다. 다만 엇나가지 않게 학생들 한 명 한 명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현재 학생 모집 중인 은혜학교는 신입생이 지원한다고 해서 무조건 입학이 되는 것은 아니다. 1주일 간 적응 기간을 가진 후 학부모와 학생 면담을 한 후 입학이 결정된다.
▲ 교사와 학생간 끊임없는 대화로 친밀감을 높여가고 있다.

느리지만 꼭 변화로 응답

강 교무가 은혜학교 개교부터 함께한 한 학생을 소개했다. 고3 심근보(18) 학생이다. 근보 학생은 "학교에 처음 왔을 때는 낯가림이 심했다"며 "이제는 낯가림도 없어졌다. 처음에는 공부를 하다가 모르는 것 있어도 물어볼 엄두를 못냈다. 이제는 1:1수업처럼 선생님과 친해져서 너무 좋다"고 변화된 점을 말했다.

주말이면 그는 대학로에 가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공연티켓 현장 판매를 담당했다. 낯가림이 심한 그가 이런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것도 '은혜학교'에서 친밀한 인간관계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는 "전에는 택배 알바를 했다. 무척이나 힘들었다. 선생님과 함께 다른 알바를 찾다가 티켓 현장판매에 대해 알게 됐고 도전을 했다.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지금은 상대방에 따라 어떤 말을 해야 티켓을 사게 할 수 있는지 알 정도이다"고 자신의 변화를 소개했다. 적극적인 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근보 학생 외에도 학생들은 자율적인 교육에 힘입어 저마다 서서히 변화의 모습을 보였다.

강 교무는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는 탓도 있지만 눈높이 수업 때문인지 수업 참여도 높아지고, 학습에 대한 적극적인 면을 보인다. 또 의사표현도 활발하고 대학을 가겠다는 의지를 보인 친구도 있다"며 "재학생이 20명이다 보니 학생들 각자의 변화가 눈에 보인다"고 말했다.

한 교사는 "무기력한 상태로 학습발표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타 학교에서 적응을 하지 못해 온 학생 한 명이 뮤지컬 음악에 맞춰 개다리 춤을 추고 즐거운 얼굴로 사회까지 잘 보는 모습을 봤다"며 "그 학생은 처음에는 대중 앞에 서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두려워했다. 마음을 주는데도 늘 엇나가던 학생이었다. 그런데 알게 모르게 변화 중이었다"는 사례를 밝혔다.

또 다른 학생은 "이 학교에는 뭔가가 있는 것 같다. 그것이 무엇인가 확실하게 답할 수는 없지만 어쩐지 매력이 있는 그 무엇이 있다"는 것을 학생들도 말하고 있다. 아마도 마음공부의 효과가 아닐까 싶다.

박 교무부장은 "학생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쓰기이다. 그래서 마음일기를 기재하지 않고 대화로 하고 있다"며 "실질적이고 솔직한 대화로도 마음이 변화되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각 분야별 후원이 필요해

은혜학교는 소년원생, 가출 청소년, 일반학교 부적응, 저소득층 자녀 등 가정과 사회의 관심 밖으로 내몰린 아이들이 마지막으로 찾아오는 학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은혜학교에서는 그들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고 있다.

교사와 학생 모두가 기숙사 생활을 통해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그 관계로 인해 개개인의 욕구를 파악하고 문제점을 함께 찾아 해결해 심리적 안정을 얻는다. 그 결과 학생들은 스스로 변화를 자처한다. 자각을 하기 때문이다.

학생과 교사간 인정을 건네는 훈훈한 학교라고 소문이 나고 있어서 일까. 최근 은혜학교에는 기쁜 소식이 날아들었다. '삼성꿈장학재단'에 제출한 프로그램이 통과 돼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강 교무는 "뮤지컬 프로그램을 진행할 할 계획이다"며 "종합예술인 뮤지컬을 통해 학생들 스스로 대본을 쓰고, 안무를 구상하고, 무대를 꾸미며 내면표출의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또 이를 통해 학생들간 협업의 의미를 체험하는 좋은 작업이 될 것이다"고 희망을 놓지 않았다. 정규 수업 외 특별활동인 셈이다.

은혜학교는 이러한 특별활동을 해 줄 재능기부자를 찾고 있다. 최근에는 사서교사 3명이 재능기부를 통해 도서관을 꾸미고 있다고 밝혔다.

올해 개교 3년을 맞는 은혜학교는 초·중등교육법 제60조의 3 규정에 의한 중·고 통합형 학력인정 대안학교이다. 현재 학생은 20명, 교사 6명, 행정직 3명이 한 마음되어 운영되고 있다.

강 교무는 "정신없이 달려온 2년이다. 3년째가 되어 앞으로 한걸음씩 나가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 바로 경제적인 열악함 때문이다"며 "국가의 어떠한 재정 지원도 받지 못하고 학교를 운영하다 보니 어려움이 많다.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후원인들의 정성어린 기부와 후원금 때문에 가능했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은혜학교 초기 설립후원인들의 힘이 버팀목이 되어준 것이다. 이제는 발전기금 후원인과 운영위원을 모집해야할 상황이 된 것이다.

현재 보다 인정미 넘치는 학교 운영을 위해서는 극복해야할 과제가 너무나 많다. 교사들의 교육열로는 채울 수 없는 한계인 것이다. 은혜학교를 성공시키기 위한 다양한 길을 찾는 일이 우선되어버리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강 교무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응답으로 인정 넘치는 웃음을 보여줬다. 그 웃음 속에 버무려진 교장의 고뇌가 전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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