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태산대종사의 대각 개교100년, 인류상생의 희망

▲ 소태산대종사.
익산성지의 대각 꽃잔치

대각개교절의 달을 맞이한 원불교익산성지는 아름다운 꽃동네를 이루고 있다.
제철을 맞은 홍매에서부터 목련이 만개한 가운데 벚꽃이 망울을 터뜨렸다. 더구나 경내를 야생화단지로 가꾸었으니 만화방창으로 참배객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정문에는 경축 아취가 서고, '모두가 은혜입니다'란 구호와 4월19~29일 법등축제 등봉축일정이 빼곡히 적혀 있다.

소태산대종사가 탄생하신 5월 5일이 어린이 날이라 겸하여 민속큰잔치가 베풀어지고, 연원불 석존성탄절이 17일이니 꽃잔치는 계속된다.

꽃잔치 속에서 맞이하는 4월 28일, 금년으로 98회째 대각개교절이다.

주세불로 이 땅에 오신 소태산대종사는 20여 성상의 모진 구도 끝에 1916년(원기 원년) 이날 대각을 이루셨다. 궁극적인 종교체험으로 근원적인 진리를 깨닫고, 구세제인(救世濟人)의 교화사업에 착수하셨으니, 이른바 원불교의 개교이다. 그로부터 도도한 물결이 흘러 개교 100년을 눈앞에 두고 있다. 재가 출가 전 교도가 합심하여 100년을 기념하는 성업(聖業)을 수행하는 지금, 교단에는 대종사 친견(親見)제자가 많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대종사 대각의 의미를 생각하며, 우리는 그 경륜을 충분히 살려내고 있는가 되돌아본다.

한 인간의 깨달음은 인류사의 대 전환을 요청한다. 제생의세(濟生醫世)의 교화틀이 새로 짜이게 되는 이유이다.

그러면 대각을 통해 나타난 세계관은 어떠한가? 그 실제적 성격을 구도과정에서 엿볼 수 있는데, 대종사는 우주 자연의 변화현상과 인간 삶의 본질에 의문을 가진 채로 구도를 계속하다가, 마침내 '장차, 이 일을 어찌할꼬?'라 절규하고 입정(入定)에 드셨다. 대각을 성취했을 때의 대종사는 젊음이 끓는 26세, 서구 제국주의 세력이 물밀듯이 들어와 범람하는 상극(相剋)의 시대에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라 세운 기치는 울림이 클 수 밖에 없다. 그 가운데 변화된 세계상을 꿰뚫어보는 예지가 있고, 낙원건설이라는 목표와 그에 이르는 방법이 함께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추축시대의 주세불 대종사

대종사는 대각의 견지에서 깨달음의 실체를 테두리 없는 일원상(一圓相)으로 상징하셨다. 그 속에 시간과 공간을 통한 만유의 존재 근거와 조건을 살지 못할 관계, 곧 은(恩)으로 확인한다. 원불교의 사은신앙이 확립된 순간이다. 일찍이 석가가 고(苦)로, 예수가 원죄로 파악했던 것과 잘 대비된다.

두 성인의 당대를 인류가 개명하며 인륜과 도덕을 세우던 시대라고 하면, 대종사는 세계가 지구촌을 이루는 가운데 물질문명이 인간 탐욕과 버무려져 무너져 내린 인륜과 도덕을 새로 세워야 하는 누란의 시대였다. 과거 성인이 추축(樞軸)시대를 열었다면 대종사는 재추축시대를 열고 있는 것이다.

그런 대종사의 구세교법은 고농도의 처방이다. 운도(運度)를 기다리지 않고 개척해 나가며, 신비와 권위를 버리고 사실을 주장한다.

교리도에서 보듯이 신앙문과 수행문을 아울러 복과 혜를 갖추며, 한 지역 한 가르침을 고수하던 과거의 가르침을 두루 망라하여 통합활용하며, 인류의 거듭남을 훈련으로 자리잡도록 지도하고 있다.

오늘날 종교다원주의가 유행하고 있는데, 대종사 대각의 견지에서 보면 차원이 달라진다. 종교간에 서로를 인정하는 정도가 아니라 세계평화, 인류구원을 위해 사상과 문화와 실천을 공유하면서 서로 도와나가야 상생한다. 그런 의미에서 원불교는 두 가지 주체성(identity)이 나타난다.

하나는 이 법은 너른 세계의 많은 생령을 모두 건지는데 가장 수승하다. 다른 하나는 구세이념을 나누어 가진 모든 종교·사상이 협력하면 효과가 더욱 커진다. 그러므로 타종교가 아니라 이웃종교이다. 타종교가 서로 이기려하고 질시하며 배타하는데 대하여 이웃종교는 서로 돕고 이끌며 공존상생하는 특징이 있다.

민중성의 끊임없는 회복

대종사 대각의 의미를 오늘에 되새기는데 있어서 잊어서는 안될 사항은 또 있다. 민중성(民衆性)의 끊임없는 회복이다.

대각 당시는 누천년 이어오던 사직이 외침에 의해 끊어진채로 생민은 내버려져 삶의 용기도 희망을 잃고 있었다. 자국이 지켜주지 못한 생민을 침략한 외국이 지켜줄 리 만무하지 않은가? '전쟁이 영웅을 낳고, 성인도 세상따라 난다'는 격언처럼, 구제를 갈구하던 민중 속에 선각자들이 나왔으니, 민중에게 삶의 보람과 용기와 희망을 일깨워 준 것이며, 대종사도 그 민중속에서 일어나셨다.

민중의식은 개벽시대를 알리고, 민족주체와 인간존중을 강조하며, 원융회통과 사회개혁의 실천으로 나타나고 있다. 다만 원망이 아니라 생존 그 자체를 감사하면서 자강(自彊)을 실천해 온 모습이 교단의 뿌리내려 있다.

큰 깨달음은 결국 인식의 전환이다. 갖추어진 힘, 뭉쳐진 힘을 갖지 못한 민족이 일제를 원망으로 대하면 무너질 수밖에 없지 않는가?

대종사는 민중에게 강(强)과 약(弱)의 원리를 깨우쳐 나가면서 일제에까지 교화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강·약은 고·락(苦樂)과 같아서 부당한 강은 변해 약이 되고, 강으로 변할 약은 정당하게 받는 슬기를 가르쳐 주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변하는 민족은 금강산을 가진 주인으로서 장차 세계정신의 지도국 인류도덕의 부모국이 될 것이라 전망하며, 용기를 북돋고 있다.

일정한 구세이념과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종교는 본질적으로 조합적인 성격을 띠지만, 대종사는 애초부터 조합형태로 교단창립을 주도했다.

초창기의 허례폐지 등을 외친 저축조합과 언답을 막아 옥토를 장만한 방언역사가 그러하고, 도운의 회생과 생민의 구제를 위해 살신성인한 구인기도가 그러하다. 그런 교화사업을 시작한 1918(원기3)년 10월, 처음으로 구간 도실을 마련하던 시절 대종사는 매 12년을 1회로 하고 36년을 1대로 하는 창립한도(創立限度)를 발표하신다. 교단창립의 중·장기 계획을 수립한 것이다. 그리고 열반에 가까운 1940(원기25)년대에 들어 교화·교육·자선이라는 교단3대사업목표를 제시하여 사업분야를 획정하고 있다.

창립한도가 교단의 모습을 보기 전이었다면 사업목표는 분야별 제도·기관이 확립되기 전의 일이니 신비롭다.

오늘날 창립 제3대에 접어들어 사업목표에 따른 틀이 갖추어진 교단상황을 생각하면, 미래를 내다보신 대종사 안목에 저절로 숙연해진다.

경산종법사는 개교100년의 성업봉찬사업을 추진하면서 대종사께서 전해준 제생의세·낙원건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대 사회적으로 교화대불공하고 스스로 거듭나는 자신성업봉찬을 강조하였다.

대종사는 4~5십년 결실(結實)이요, 4∼5백년 결복(結福)이라는 가르침을 주셨으니, 반백년기념사업을 통해 한국의 민족문화사에 교단의 존재를 확인했다면, 개교100년은 결복기를 향한 새로운 장을 마련하는 시기요, 대종사의 가르침이 인류구제에 분명한 대안이라는 목표가 설정된 것이다.

대종사의 법을 이은 정산종사의 삼동윤리(三同倫理)나 대산종사의 종교연합운동, 그리고 좌산종사의 남북화해의 실천이념은 이러한 가르침의 구체적인 전개의 사례이다. 이제 우리 모두가 나설 차례이다.
▲ 양현수 교무 / 원광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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