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실천해야 묵지 않는다
나는 대학을 중도에 포기하고 전무출신을 서원했다. 간사생활도 안 하고 곧바로 교학대 서원관에 들어가게 됐다. 다행히 입학동기 중에 종법실 간사를 한 주성균 교무가 있어서 그 형을 따라 틈만 나면 종법실을 찾아 다녔다. 주말이나 연휴라든지 방학 때 그리고 군입대 전의 공백기에 원평 구릿골로 완도로 왕궁으로, 대산종사의 행가를 따라 종법실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대산종사께서 나를 부르더니 심지를 뽑으라 하셨다. 법무실장이신 장산종사께 그 연유를 여쭈니 내 법명 '도성'이 주산종사의 법명과 발음이 같아서 대산종사께서 너를 부르기가 거북스럽다는 것이다. 그러니 새 법명으로 바꾸자는 것이었다. 심지는 바로 법명이었다. 나는 갑작스런 일이라 당황했고 평소 내가 별칭으로 부르던 이름이 있어 나중에 바꾸겠다고 했다. 며칠후 "길튼" 이라는 한글법명을 올리니 말씀이 없으셨다.
그 뒤에 나의 형 '길터' 교무(그 당시 법명은 '도기')가 대학을 졸업하고 전무출신을 서원했다. 그 때 나는 군입대를 며칠 안 남겨놓은 상황이었으나 법타원 김이현 종사와 장산종사께 상의 하여 형은 종법실에서 간사 근무를 하게 됐다.
그런데, 바야흐로 이 시절인연이 한글법명 탄생의 운명이요 재발화의 부싯돌이 됐다. 나와 형은 2년여 뒤 군생활과 법무실 간사근무를 각각 마치고 교학대 복학과 입학을 준비하게 됐다. 형은 정말 열심히 그리고 성실히 간사생활을 해서인지 종법실에서 선물을 주기로 했고, 형은 '한글법명'을 교학대 입학선물로 주시길 거듭거듭 간청했다.
학창시절 한글 사랑에 빠져서 온갖 단어를 한글로 바꾸어 보곤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 때 어느 순간 길을 이룬다는 뜻의 '道成'이 '길튼'으로 풀어졌다. "길을 트고 길을 튼튼히 하자"는 의미이다. 형 이름 "도기"도 '길터'로 풀었다. '길 道, 터 基'를 한글로 옮긴 것이다.
아무튼 대산종사의 인연으로 내가 요청했던 한글 법명을 몇 년 뒤에 형이 다시 간청했고 결국 심사숙고의 과정 끝에 허락을 받게 된 것이다. 법명을 개명하고 보니 교단 최초의 한글 법명이었다. 기분이 묘했고 새로웠다. 생각해보면 철없는 행동이었으나 사명도 느낀다. 이처럼 '길터', '길튼'의 한글법명은 대산종사의 인연으로 생긴 것이다.
한글 법명을 얻게 된 시기에 인연된 법문이 있다. 신입생 훈련 때, 대산종사께서 벌곡 삼동원 가건물 자리에 법석을 잡고 계실 때였다. 주변 산야에 산책길을 내시고 주변에 철쭉을 옮겨 심어놓으셨다. 함께 산책을 하시면서 그 때 신입생인 우리들에게 "철쭉을 옮겨 심으면 처음은 시달리듯 너희들도 훈련을 처음 받을 때는 힘이 드나 착근이 되면 생생해 지고 꽃도 피게 된다. 그리고 내어 놓은 산책길을 너희들이 자주 다녀야 탄탄한 길이 되듯 삼학팔조 사은사요의 법을 너희들이 실천해야 묵지 않고 여러 사람이 다닐 수도 있게 된다"며 자비스런 눈길로 우리를 챙겨주시고 북돋아주셨다. 법음이 내 마음에 울려 퍼졌다.
하루는 왕궁 영모원에서 야단법석을 벌이기 위해 숲에 계단정리하고 있을 때였다. 대산종사께서 점검 차 나오시어 의자의 높이가 다르고 의자 지지대가 불안하게 설치된 것을 보시고는 "건너편에 있는 큰 돌을 갖다 놓으라"며 "무엇을 하든지 책임을 져야지, 교도님들이 다치기라도 하면 어찌 되겠냐"며 불호령을 내리셨다. 크고 작은 일에 반석이 되는 책임을 지라는 뜻으로 여겨진다.
책상위에 대산종사님과 함께 찍은 사진이 놓여 있다. 한글법명 값 잘하라고 하시는 것 같다.
방길튼 교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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