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의 탈 벗고 부처의 경지 도달케 해

▲ 조법전 교무 / 경기인천교구 서용인교당
솔성요론이란 성품을 거느리는 요긴한 길, 방법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솔성이란 무엇인가? 솔성이란 성품을 거느린다는 뜻이니, 성품이란 무엇인가?

"성품이란 우주만물 허공법계가 하나라는 것으로, 그러나 이 하나도 없는 자리, 분별이 없는 자리, 언어도가 끊어지고 심행처가 멸한 자리, 불변하고 여여자연한 자리가 성품의 본체요, 과거 현재 미래에 영겁으로 나열해있는 일체만물이 성품의 묘용이며 무비성품이니라."라고 정산종사께서 표준 잡아주셨고 또한 "솔성에 세 가지 단계가 있으니, 첫째, 바른 마음이 들어서 육근을 거느리니 솔(率)이요,

둘째, 원만 구족하고 지공무사한 자성을 따르니 순(循)이며, 셋째, 자성 본원을 깨쳐 희로애락을 중도에 맞게 쓰니 용(用)이다. 솔성요론의 솔은 첫 단계에 해당된다." 라고 간이 명료하게 밝혀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정전의 솔성요론을 공부하는데 세 가지 요령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첫째는 〈정전〉스타일로 솔성요론 16조를 자주 읽고 연마하며 한 조항 한 조항 실천이 되느냐 안 되느냐 무조건 평떼기대조하는 방법입니다.

주세불 대종사께서 일체생령을 제도하기 위해 내놓은 정전은 총100페이지가 못되는 간략한 내용이기에 정전의 낱자 한 자 한 자는 뜻이 깊고 활용할 길이 풍부한데 솔성요론에는 따로 설명이 없습니다. 작업취사의 연장선이며 하자는 조목들로 구성되어있기에 단순해보이지만 참으로 마음을 알지 못하면 죽기로써 실천하고자 하는 마음이 일관되게 나오지 않는 내공이 들어있습니다. 오직 신분의성을 추진하신 혈심제자들만이 법의 실행을 차지하게 되어 극락으로 이끄는 교법입니다.

흔히 성품을 얘기할 때 고요하고 분별주착이 없는 자리를 능사로 삼기 쉬운데 솔성요론16조를 보면 간단없는 심락과 사생일신의 심법과 한없는 자비심과 생명을 내놓는 결단력이 없이는 넘어설 수 없는 조항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비로소 마음이 한갓 중생의 마음이 아니며 솔성이 솔성이 아닌 대원솔성의 기틀이 보여 지고, 대종사님의 교법이 중생의 탈을 벗고 불보살로 변화하게 하는 무서운 내재의 힘이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성품을 거느리는 범위에 있어 초, 중, 상 단계에 따라 심법의 그릇이 달라지는데 16조를 그대로 토를 뗄 것 같으면 성품을 종횡 무진하는 솔성의 만능과 제생의세의 대기대용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바른 마음이 들어 육근을 거느림
솔성은 중(中)과 화(和)의 표준


두 번째는 정산종사님 솔-스타일입니다.

솔성의 세 단계 중 '바른 마음이 들어서 육근을 거느리는 솔' 법문에 기준하여 정심취사로 밀어붙이는 솔성요론입니다. 정전의 일원상법어는 각자의 육근에 원만구족과 지공무사함을 둘러씌워 깨달음의 표준이 되는데 이 때 지공무사는 지극히 공정한 도와 상통하는 뜻으로 핵심은 바른 마음입니다. 정산종사께서 '솔성을 바른 마음이 들어 육근을 거느린다.' 하신 것은 성품의 용자리인 인과의 세계에서 바른 것이 핵심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현실에서 정치, 경제, 사회의 제반 문제들이 잘못 되었을 때 원인은 바르지 않은 것이 되며 가족관계, 자녀문제, 인간관계 또한 솔성이 되지 않은 데에서 기인한 것이니, 바르지 않은 모든 용심법은 성품의 낙원을 등에 지고 고해로 치닫는 지름길이라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솔성요론과 개인, 국가, 인류의 행복관계가 둘이 아님이 증명이 된다고 하겠습니다. 성품이란 언어도단하고 유무를 초월하기에 원래 청정하고 고뇌가 영멸한자리라고 대종사께서 서원문과 염불법에서 밝혀주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성품을 거느리는 솔성요론을 실천하게 되면 고뇌가 영멸하고 청정한 자성에 머무르게 되니 현실의 순역경계에 시달리는 우리들에게 영원한 피안의 세계로 이끄는 공부법이요 소선소지에 머무르기 쉬운 우리들에게 대인이 되게 해주는 공부법이며 가정, 사회, 국가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근본단초라 할 수 있습니다.

셋째는 대산종사님의 중화(中和)스타일입니다.

"솔성을 잘하기 위해서는 중(中)과 화(和)의 표준(標準)이 있어야 합니다.

중(中)이란 희로애락(喜怒哀樂)의 감정(感情)과 분별(分別)이 발(發)하기 이전(以前)의 소심(素心)의 상태(狀態)로서, 우주(宇宙)의 대진리(大眞理)와 합일(合一)한 무한동력(無限動力)이요, 「화(和)」란 이러한「중」에 바탕 하여 희로애락의 감정과 분별을 나타내되 절도(節度)에 맞아 일체만물(一切萬物)이 하고자 하는 바를 다 얻게 하는 활생(活生)의 덕을 말합니다." 이 법문에서 보여주시는 바는 솔성과 중화의 표준입니다 솔성을 잘하기 위해서는 솔성의 바탕이 되는 중의 표준이 있어야하며 그러한 바탕이라야 일체만물에 대한 사사불공의 솔성 즉 활생의 덕이 가능함을 밝혀주셔서, 사사불공의 사사무애 대법계가 솔성의 극치임을 알게 해주셨기에 한없는 경외심으로 중화(中和)의 솔성표준을 다시 세우게 됩니다. 또한 정산종사님의 솔성의 단계 세 가지를 하나로 중간 잡아 실천할 수 있도록 해주셨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솔성요론이라는 교법으로 마음의 표준을 다시 세우게 해주신 대종사님!

한류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음식과 음악, 영화가 뜨고 있습니다. 주세불이 나신 나라이고 후천 오만년을 향도해갈 한반도의 어변성룡기를 맞이하여 전 세계로 한류가 드러나듯 솔성요론16조로 각자의 내실을 다지고, 대기대용의 전법사도가 되어 경산종법사님의 경륜이신 교화대불공의 밀알이 되고 고해에 헤매는 일체생령의 가슴에 일원대도의 자비훈풍이 낱낱이 닿아 제도의 은을 입는 기연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세계정세에 있어서도 강약의 도가 점차 상호존중의 대세로 돌아서고 있고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편협한 이기주의는 발 디딜 자리가 없어져 가는 것이 눈에 띄는 현상입니다. 이러한 후천의 대진급기에 솔성요론이라는 교법으로 마음의 표준을 다시 세우게 해주신 대종사님의 대은에 감사 올리며 다함께 정진 적공하여 일원세계 건설의 보은자 되길 염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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