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규 교도 / 분당교당
지난 (4월 5일자) 원불교신문에 세계교화를 위한 사업에 관한 기사와 함께 우리교서 번역에 몰두하고 있는'풴들링'(D. Fuendling, 한국명 빈도림)박사 내외의 사진을 크게 싣고 있었다. 반가웠다. 오랜만에 그들을 보니 수년전 우리 〈정전(正典)〉의 독일어번역을 놓고 함께 씨름하던 이야기들이 바로 엊그제 일처럼 다시 생생하게 떠오른다.

풴들링 박사 팀을 만난 것은 참으로 행운이었다. 내가 그에게 더욱 깊은 신뢰와 확신을 갖게 된 것은 번역작업을 착수한지 두 달 째인 그해 여름 서울 이태원에서였다. 그 때 풴들링 박사는 번역작업에 앞서 착수한 두 달여 간의 우리말 〈교전공부〉를 통해 어느새 독실한 소태산대종사의 제자가 돼 있었다.

우리는 그때까지의 번역작업과정 중 난해했던 교리와 용어의 해석 및 바른 독일어 어휘선정 등의 문제를 놓고 의견을 나누어갔다. 그러다가 마침내, 〈대종경〉 서품 12장에 나오는 '사원기일월(梭圓機日月) 직춘추법려(織春秋法呂)'의 한문 문단 중'법려(法呂)' 두 글자에 대한 해석을 놓고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나도 이 대목에 대해서는 미리 원로교무으로부터 사사를 받았던 바라 어느 정도는 나름대로 그 대의를 설명해 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한발 더 앞서 나가고 있었다. 대체적인 이해정도만으로는 안 된다고 했다. 원전(原典)을 정확하게 파악해야만 그에 맞는 독일어 어휘선정이 가능하다면서 한 글자 한 글자 그 어휘의 문법적 분석과 구문의 해석에 시간가는 줄을 몰랐다.

나는 이 날의 토론과정에서 그들 독일사람 특유의 끈질긴 논리적 접근자세, 또 한국문화 특히 불교철학에 관한 폭넓은 이해와 해박한 실력에 실로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소태산대종사에 대한 진지한 존숭(尊崇)의 태도와 한 글자라도 원전에 충실하려는 그들의 열의와 책임감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참으로 고마웠다.

풴들링 박사는 "소태산대종사님은 정말 크게 깨우치신 성자이시다. 바로 그 성자의 가르침이 이 교전 안에 들어있다. 이 교전은 우리만 읽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아들 손자, 또 손자의 손자들이 대대로 읽어나갈 것이다.

그러므로 절대로 한 글자라도 틀려서는 안 된다"라면서 몇 번이나 힘주어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진지한 열의와 태도가 얼마나 미덥고 고맙던지, 그리고 이들이야말로 어느 누구보다도 가장 최상의 번역을 해 주리라는 굳은 믿음과 확신으로 절로 두 주먹에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

결국 그 '법려'에 대한 쟁점은 다음날 자쎄(Sasse.독일 함부르크대학 한국학과)교수가 직접 그가 잘 아는 대학도서관을 찾아가 가장 권위가 있다는 중국의 중문대자전(中文大字典)을 통해 특히'려(呂)'자도 역시 앞의 법(法)자 보다 더 큰 대우주의 법을 함의(含意)하는 글자로서 문법적으로도 완벽하게 사용된 것을 확인해 냄으로서 마침내 득의(得意)의 마무리를 짓게 되었다.

번역은 고도의 지식과 소양, 학문적 깊이를 요구하는 언어실력, 그리고 열정과 책임감이 없이는 결코 해낼 수 없는 힘든 작업이다.

특히 교서번역은 더욱 더 그렇다. 종교에 대한 각별한 인식과 신념, 사명감이 없이는 불가능한, 참으로 외롭고 고통스러운 작업인 것이다. 오죽하면'그것은 차라리 업(業)이었다,'라고까지 술회하겠는가.

한마디로, 번역이'반역(反譯)'이 되어서는 안 된다. 원전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통찰, 깊은 학문적 소양과 뛰어난 언어감각이 없이는 자칫 원전의 본의를 왜곡하고 훼손시킬 수가 있는 것이다. 결국, 정역사업은 무엇보다도 이른 바 총합적'역량'을 갖춘 인재(번역자)의 확보가'전부'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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