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복락의 길, 우리가 만들어 갑시다

▲ 이문성 교무 / 원불교학과 서원관

좋아하는 낙(樂)은 사고, 싫어하는 고(苦)는 팔고

"사람 사람이면 다 싫어하는 것은 고요, 좋아하는 것은 낙"이라 했습니다. 어떠한 것이 우리가 싫어하는 고가 될까요?"

고의 종류에 대해서 가장 잘 표현하신 것이 바로 우리 잘 알고 있는 여덟 가지의 고통이 있습니다. 즉 생·로·병·사의 사고(四苦)와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고통, 구하되 얻지 못하는 고통, 미워하고 싫어하는 사람과 만나게 되는 고통, 오음이 치성한 이 심신자체가 고통입니다.

이러한 고통의 원인은 바로 집착에서 생겨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영생의 문제로 접근해 볼 때 집착은 영원히 윤회의 고리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는 죄업의 근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낙에도 세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이 세상의 낙을 크게 인간락과 천상락, 그리고 극락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인간락이란 형상 있는 세간의 오욕락(부귀·권속·지위·명예 등)을 의미합니다. 다음은 천상락입니다. 도로써 즐기는 마음락이라 하셨습니다. 도문에 입문하여 신앙과 수행을 통해 마음의 안정과 평화를 얻는 것입니다. 다음은 극락입니다. 극락이란 무엇일까요? 극락이란 고와 낙을 초월한 궁극의 경지를 의미합니다. 즉 괴롭다 즐겁다 하는 상대적이고 한정적인 상태를 넘어서는 영원한 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천상락도 우리 공부인들이 추구해야 할 낙도이지만 그 낙도 다하면 타락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다시금 육도윤회에 떨어질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공부인은 낙도생활의 표준을 극락생활로 잡아야 할 것입니다. 영원히 즐길 수 있는 참다운 낙으로써 고와 낙을 초월한 자리요, 영원히 변치 않을 극락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연한 고락이 어디 있겠습니까!

대종사께서는 우리 공부인에게 고락에 대한 설명을 해 주시면서 우리가 받는 이 고락은 모두 우리가 지어서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정산종사께서는 "하늘은 짓지 않은 복을 내리지 않고, 사람은 짓지 않은 죄를 받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짓지 않고 받는 복은 내 것이 아니요, 짓지 않고 받게 되는 죄도 또한 나의 것이 아닙니다. 고락도 정당한 고와 낙이 있으며 부정당한 고와 낙이 있습니다. 정당한 고락이란 먼저 그 행하는 바의 목적이 선행(善行)을 위한 결과를 얻고자 할 때입니다. 어떠한 결과를 이루려할 때 그 과정 속에는 많은 고충이 따릅니다. 이 고충이란 장차 낙으로 변하게 되는 고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정당한 낙이란 정당한 행동을 통해 그 결과로 얻어지는 낙이므로 장차 고로 변하지 않을 낙을 의미합니다. 반대로 부정당한 고락이란 지금 잠깐의 눈속임으로써 즐거움을 얻고자 부당한 취사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시적인 향락이나 거짓으로 벌여놓은 죄업은 순간은 넘길 수 있으나 그렇게 오래 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장차 죄고로 변하여 고통의 결과를 보게 되는 낙을 부정당한 고락이라 합니다.

우리 공부인들은 정당한 고락과 부정당한 고락을 자상히 알아서 항상 온전한 생각으로 취사를 하여 정당한 고락으로 영원한 극락을 수용하는 삶이 돼야 하겠습니다.

전일의 굳어진 악습 고쳐야
정법으로 단련, 기질변화 공부


고(苦)의 세계로 들어가는 원인에서 벗어납시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고 짓지 않으면 받을 수 없는 것이 세상의 진리입니다. 그러한 이치를 알면서도 우리는 세상을 살아갈 때 원인보다는 결과에 대해서 더 관심을 갖게 되며 짓지 않고 바라는 마음이 앞서는 것은 아직 공부가 덜 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람이면 누구나 고를 버리고 낙을 얻고자 하는데 우리의 모습은 낙을 버리고 고에 들어가는 생활을 할 때가 더 많습니다. 그러한 원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첫째는 고락의 근원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 하였습니다. 고를 불러오게 되는 원인과 낙이 어디로부터 오는가 그 근원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고락은 누가 주어서 오는 것이 아니요, 내 자신의 온전한 생각으로 정당한 고락을 취사선택할 수 있게 됨을 명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둘째는 알지만 실행하지 못하는 원인입니다. 죄와 복, 고와 낙이 어떻게 오는 것인가는 알지만 바라는 낙과 복을 장만하는데 실천력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대종사께서는 "세상 사람들이 복을 받기는 좋아하나 복을 짓는 사람은 드물고 죄를 받기는 싫어하나 죄를 짓는 사람은 많으니 그러므로 이 세상에 고 받는 사람은 많고 낙 받는 사람은 적다"고 하셨습니다. 진정으로 원하는 바가 있으면 실행을 통하여 복락을 수용해야 할 것입니다.

셋째는 철석같이 굳어진 습관으로 자행자지 하여 심신(心身)을 예산없이 양성하기 때문입니다. 공부심이 없이 오랜 동안 방종의 생활과 전일의 굳어진 악습을 고치지 못하고 끌려 다니기 때문입니다. 근본적으로 고를 버리고 복락의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굳어진 악습이 무엇인지를 알아서 정당한 생각과 행동이 나오도록 정성을 들여야 할 것입니다.

넷째는 정신과 육신을 정법(正法)으로 단련하여 기질변화가 분명히 될 때까지 끊임없이 공부를 해야 합니다. 영원히 고의 생활을 면할 수 있으려면 적당히 공부를 해서는 되지 않습니다. 부지중의 악습이 나오지 못하도록 완전한 기질 변화가 될 수 있을 때까지 정진을 해야 합니다. 선천적으로 타고 났건 후천적으로 익혀진 것이건 간에 도에 맞지 아니하고 고를 불러들일 건에 대해서 기질변화를 확실히 시켜야 합니다.

다섯째로는 응용하는데 수고 없이 속히 이루고자 하는 데서 우리는 고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그냥 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고 모든 일을 하는데 있어서 과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힘들인 만큼 공들인 만큼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속히 이루려는 그 마음은 거짓의 마음이요, 욕속심 만으로 세상일을 이루게 된다는 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파란고해의 일체생령들이 모두 다 이 고락의 원인을 분명히 깨쳐서 당하는 모든 일마다 모두 죄과로 화하지 않고 복락을 장만하게 되는 그러한 세상이 되었으면 합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이승에 태어났으니 이왕지사 영원히 누릴 수 있는 참된 낙도의 생활을 수용할 수 있도록 늘 깨어 있는 마음으로 세상을 맞이해야 겠습니다. 영원한 복락의 길은 바로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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