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세생생 대종사님 법 받들고 살겠다"

▲ 신타원 김혜성 종사 가족들이 미주 원다르마센터 봉불식에 참석해 기념 촬영을 했다.
우리에게 하루 '3시간 선'과 '일원상서원문 50독 정진'의 주인공으로 알려져 있는 원남교당 신타원 김혜성 (90·信타圓 金慧性)종사. 노구임에도 지난해 10월 미주총부 원다르마센터 봉불식에 참석한 것은 진리와 스승에 대한 오롯한 신심의 결정체였으리라.

신타원 종사는 미주 원다르마센터에 이어 중앙총부 대산종사 성탑봉건에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최근 원남교당 교령 황대원 교무와 몇 몇 인연에게 신타원 종사에 대한 근황을 알아 보았다.

10년간 매일 일원상서원문 50번 독송

황대원 교무는 신타원 종사에 대해 "평소 신앙수행과 정진의 모습은 두말 할 것이 없다. 오직 그 생활로 일관해 오셨다. 대단하신 분이다"고 거듭 밝혔다. 기도 생활에 대해서는 따로이 말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기도를 마친 후에는 〈교전〉과 〈정산종사 법어〉, 〈대산종사 법어〉와 〈원불교신문〉을 보며 공부도 하고 교단 상황을 파악한다는 것이다.

그는 신타원 종사가 매일 일원상서원문 50독을 하게 된 동기에 대해 "서울대 병원에 입원했을 때 복수가 차는 등 많이 아프셨다. 당시 훈타원 양도신 종사가 문병을 하며 '눈이 참으로 맑네. 혜성씨 눈을 보니 병으로 갈 것 같지는 않아. 하루에 일원상서원문 50독씩 하면 좋아질 것이네'하고 말했다. 그 말씀을 듣고 신타원 종사는 일어나지도 못하고 식사를 못하는 상황에서 사람을 시켜 작은 수첩을 사오라고 했다. 일원상서원문을 한 독 한 독 독송하며 수첩에 바를 정(正)자를 새겼다. 일심으로 했으면 한번, 하다가 잡념이 들어갔으면 처음부저 다시 시작했다. 그 힘든 시기에 주문 수행을 지금까지도 일관하셨다"고 자세하게 설명했다. 몸이 아파도 아픈 경계에 빠지지 않고 신앙심으로 자신을 일으켜 세운 것이다.

신타원 종사는 52세 때 간이 좋지 않아 발병했다. 이후 7년간 계속된 투병생활을 지내기도 했다. 황 교무는 "신타원 종사는 병중에 정진한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흘리셨다. 말할 수 없이 힘들었던 시기였다"고 말했다.

황 교무는 "일원상서원문을 열심히 독송하는 신타원 종사를 본 주위 사람들은 '그렇게 순진한 사람이 어디 있느냐. 50독 하면 병이 낫는다고 하니 그대로 믿고 행했다. 아프면서 일어나지도 못하면서 일원상서원문만 했다. 흔히 하는 말로 일원상서원문이 밥 먹여주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고 말하자 신타원 종사는 '그래도 나는 좋다. 나는 할란다'하며 정진심을 놓지 않았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정진공부로 10년 동안을 일관하며 병을 이겨낸 것이다. 지금도 그 마음 잃지 않고 생활화가 되어 몸은 비록 일어나지 못해도 마음만은 절로 되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투병 중 법회에 나가지 못할 때는 설교를 녹음하여 공부할 정도로 정성스러웠다. 황 교무는 "설교를 들을 때도 꼭 작은 수첩에 필기를 했다. 그냥 듣지 않았다. 선진님들 방송 법문 등 테이프를 통해서도 공부를 쉬지 않았다"고 밝혔다. 메모를 즐겨하는 신타원 종사는 법문을 실천하는 일도 중히 여겼다.

본지 1583호 인터뷰에서 신타원 종사는 "실천을 하면서 기도를 해야 한다. 실천이 있어야지 기도를 믿고 간절한 염원만 있으면 안된다. 법문 실천과 더불어 실지불공도 이뤄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100일 기도 발심으로 신앙 일관

신타원 종사는 교단과 스승관에 대해서도 투철했다. 황 교무는 "신타원 종사는 자녀들에게 '너희들은 이렇게 큰 회상 만났으니 좋을 일 해야 한다. 특히 대산종사탄생100주년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데 불효하면 큰 일 난다'며 원불교100년성업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늘 전했다"고 밝혔다. 대산종사를 통해 원불교의 참 진리를 알 수 있었기에 은혜에 최대한 보은하고자 하는 것이다.

원남교당 황덕규 교무는 "부교무 시절 신타원 종사를 뵈었다. 당시 아들 4형제를 교당에서 결혼식을 할 만큼 신심이 대단했다"며 "운영하던 신라호텔 다 놓아두고 주차시설도 불편한 교당에서 그렇게 훌륭한 집안이 결혼식을 한 것이다. 물론 하객을 받을 생각도 안하셨다"고 말했다. 자녀들에게 자신을 있게 한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고 싶은 속내일 것이라 본다.

신타원 종사가 신앙심으로 불타오르는 계기가 궁금했다. 이에 대해 향타원 박은국 종사는 "처음 원남교당에 부임해서 100일 기도를 결제했었다. 신타원 종사가 100일 기도에 발심이 나 새벽마다 참석했다. 그때 마다 아들들이 함께 오기도 했다"며 "교당 100일 기도를 마치고서는 집에서 홀로 기도생활을 이어갔다. 그리고 교당 새벽 좌선에도 빼 놓지 않고 참석했다"고 밝혔다. 당시 국가 요직에 근무하는 남편 국산 홍인천(호적명 진기) 명예대호법의 내조를 기도생활을 하며 해 낸 것이라 짐작된다.

또 기도를 통해 6남매를 키워낸 것이다. 신타원 종사는 평창 휘닉스파크에도 개인 법당 겸 기도실을 마련해 두고 기도생활을 쉬지 않는다. 황대원 교령은 "원남교당 교도들이 교도훈련을 할 때는 꼭 함께하면서 힘을 줬다"며 "자녀나 만나는 인연에게는 '오늘 법문을 보니 이런 말씀 하셨더라. 어디서 이런 법문 받들겠느냐. 나는 세세생생 대종사님 법 받들고 살겠다' 는 신맥을 더욱 굳건히 했다"고 밝혔다.

해외를 가더라도 신타원 종사는 교전과 대종사영정을 먼저 챙겨 가방에 넣는다. 호텔에서도 늘 머리맡에 놓아두고 기도 정성을 쉬지 않는다.

향타원 종사는 "신타원의 시어머니 초종장례도 교당에서 치렀다. 당시 홍인천 회장도 어머니 천도재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며 "당시 인연으로 부산배내청소년훈련원에도 자주 내방을 했다. 배내골이 좋다며 신타원이 법당을 짓고 딸 이름으로 조실을 짓는 신심도 대단했다"고 회고했다. 신타원 종사는 '전신전수(全信全受) 반신반수(半信半受) 무신무수(無信無受)한다'는 진리의 거래법을 이미 통달한 것이다.
▲ 신타원 김혜성 종사와 원남교당 황대원 교령.

원남교당 신축 계획

신타원 종사가 즐겨 부르는 성가는 98장 발분(發忿)의 노래이다. '사람되기 어려운데 이미 되었고, 불법듣기 어려운데 이미 듣나니, 이내 몸을 이생에 제도 못하면, 어느 생을 기다려서 제도하리요.'

불사에 관한한 다음 생을 기다릴 수 없는 이유에서 일까. 최근 신타원 종사의 원남교당 신축계획을 딸 홍도전(호적명 라희·삼성리움미술관 관장) 교도가 서둘러 가설계를 진행 중이다.

황덕규 교무는 "500여 명이 법회를 볼 수 있는 교당 규모로 가설계 과정이다. 교당 진입로 6미터를 내야하는 과제가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계획하는 있는 교당 규모는 1155㎡로 지상 5층, 지하 4층 정도이다. 지상도 차츰 줄여가면서 짓는 형태가 될 예정이다.

취재를 하며 간절한 염원 하나가 품에 안겼다. '신타원 종사가 원불교100년 기념대회를 교도들과 기쁘게 맞이할 수 있도록 건강을 허락해 달라'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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