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가면서 시작한 타지생활로 10년 가까운 시간동안 학교가 있는 대구에서 마산에 있는 집을 가기 위해 기차를 애용했다. 항상 읽을 책을 가지고 타지만, 기차의 커다란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워 책은 짐만 되기 일쑤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책을 보는 시간이 길어져갔다.

사계절에 맞추어 저절로 변화되는 한 폭의 그림 같았던 아름다운 자연풍광은 조금씩 꾸준히 사라져갔다. 대신 인간만 직선으로 평탄한 길을 달리기 위해 생겨나는 도로들과 초록을 가려가며 생겨나는 건물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갔다. 자연의 아름다운 곡선 속에서 점점 영역을 확장해 나가는 도로와 건물의 직선이 칼날처럼 매섭게 느껴지는 순간들이었다.

최근에는 이런 경험도 있다. 남편이 갑자기 이직을 하게 되어 생전 처음 가는 동네로 이사를 하게 됐다. 나는 주거지를 고를 때 항상 고려하는 네가지 조건 산, 교당, 도서관, 생협매장이 가까운 집을 찾고 있었고, 그런 곳을 찾아내 집을 보러갔다. 그곳은 20년이 다 되어가는 오래된 아파트였다.

그러나 아파트 앞 인도 변에 키가 빌딩 만해 최소 20~30년은 되어 보이는 플라타너스 나무가 숲 터널을 이루고 있었고 그 무성한 초록에 반해 단번에 이사를 결정했다. 그 나무 길은 봄이면 새잎의 싱그러움을,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을, 가을에는 낙엽의 낭만을 주었고, 겨울에도 나름의 쓸쓸함으로 운치가 있었다.

나는 정말 그 길을 사랑했다. 많은 주민들도 그 길에서 산책을 즐겼다. 그런데 작년 그 길을 따라 흐르던 하천에 자전거길을 조성한다는 명목으로 한쪽 편 나무를 모두 베어버렸다. 벌목 현장처럼 통나무가 되어 쌓여있는 나무를 보며, 나는 정말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미리 알았더라면 영화 '춤추는 숲'(서울의 성미산을 지키기 위한 동네주민들의 고군분투를 그린 영화)속의 사람들처럼 어떤 방법으로든 저항이라도 해보았을 텐데 말이다. 어쨌든 그 길은 반쪽짜리가 되었고 나는 급한 일이 아니면 반대편 산 아래 길로 돌아서 다니는 습관이 생겼다.

신록이 푸른 5월은 베토벤의 6번 교향곡 전원을 감상하기 참 좋은 계절이다. 이 곡은 베토벤이 주로 활동한 오스트리아 빈 근교의 하이리겐슈타트라는 작은 전원마을의 풍경을 담고 있다. 누가 들어도 시골마을의 소박함과 그대로 간직된 자연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새의 지저귐과 시냇물소리가 들리는 듯한 명곡이다. 대인관계가 원활하지 못했던 베토벤은 자연에서 많은 위안을 얻었다.

이 곡은 그런 자연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만든 베토벤의 헌정곡과도 같다. 실제로 이 곡에 붙인 전원이라는 제목은 베토벤의 많은 곡들 중 유일하게 직접 제목을 붙인 곡이다. 작은 시골마을이었던 하이리겐슈타트는 베토벤이 사랑한 곳이었고 나중에는 이곳에서 유서를 쓰기도 해 지금은 많은 사람이 찾는 곳이 되었다고 한다. 베토벤 뿐 아니라 많은 음악가와 화가들은 자연에서 영감을 얻었고 그것은 훌륭한 작품을 탄생시키게 했다. 그런 예술작품들을 접할 때 나는 이 작품에 영감을 준 그 장소는 그 때 모습 그대로 있을까? 혹시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파괴되지는 않았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곤 한다.

이번 대각개교절 경축사에서 종법사께서는 "그동안 사람들은 자연으로부터 너무 많은 자원을 가져다 썼다"고 지적하시고 "이제는 덜 개발하고 덜 생산하고 덜 소비하여 자연을 원래대로되돌리는 환경운동을 펼치자"고 했다. 이에 교단에서는 9가지 천지보은 실천운동을 한다고 하니 관심을 가져야 할 일이다. 이제는 정말 개발과 발전만이 인간의 살길이라 생각하는 어리석음을 이겨낼 지혜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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