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형화 / 성지 송학중학교
"선생님. 배고파요. 다리아파요. 얼마나 더 가야돼요? 얼마 남았어요?"

40명 남짓의 아이들이 돌아가며 똑같은 대사를 가지고 벌떼처럼 내 주위를 돌며 앵앵거린다. 그 중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도대체 왜 걷는 거예요?'이다.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지만 가장 답하기 모호한 질문이다. 나 또한 왜 걷는지 의문이 들었다.

5월 지리산둘레길 종주 프로젝트 계획서에는 공동체 정신과 협력, 배려 등을 기른다는 취지였다. 막상 힘겹게 걷는 순간, 교사인 나마저도 힘들게 걸으며 꼭 공동체를 느껴야하나 의심이 들기도 한다.

지리산둘레길 종주 프로젝트 첫날 오전부터 희망이란 아이가 말썽이다. 걸은 지 얼마 안 됐는데 벌써 발을 삐어 절뚝거린다. 짐은 교장선생님과 학부모님이 번갈아 가며 들고 오신다. 평소에도 꾀부리는 걸로 유명한 희망이라 절뚝거리는 다리나 다른 사람에게 짐을 맡기는 모습이 곱지 않다. 힘들어도 끝까지 자기 몫은 책임지고 가길 바랐는데, 초반부터 이러니 참 마음에 안 좋다.

힘겹게 걷던 희망이가 "도대체 이거 왜 걷는 거예요?"라며 드디어 기다렸던 질문을 한다. 왜 안 물어보나 했다. 희망이는 "인성교육이라고 하시겠죠"라고 자문자답했다. 판에 박힌 대답인 '공동체 정신'을 꺼내기도 전에 희망이가 먼저 말을 해버린다. 할 말을 잃었다. 지금 이 아이에게 공동체 정신이며, 협력, 배려라는 말이 귀에 들어올까 싶었다.

아이들에게 '지리산둘레길을 걷는 목적을 뭐라고 설명해야할까' 교사로서 이러한 활동을 통해 아이들이 서로 위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지만 과연 아이들이 그걸 느낄 수 있을까. 힘들고 지겹다는 안 좋은 기억으로만 남으면 어떡하나.

5월 팀프로젝트를 통해 이루고자했던 목적달성이 무산될까 덜컥 겁이 났다. 아이들에게 걷는 목적을 어떻게 설명할까 고민하다가 '그래! 어려운 말이 아닌 쉬운 이유를 찾자!'라는 결론을 내렸다. '자연을 느끼기', '힘든 경험하기', '사색할 시간 갖기' 등 이런저런 의미를 생각하는데, 몇몇 학생들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순간 '아차!' 싶었다. 아이들이 "선생님! 오면서 예쁜 꽃 많이 봤어요", "선생님! 걸으면서 교통수단의 소중함을 알았어요. 옛날엔 진짜 힘들었겠어요", "선생님. 제가 코펠에 밥을 이렇게 잘 지을 줄 몰랐어요. 저를 김쉐프라고 불러주세요", "선생님. 집에 가고 싶어요. 집이 제일 편해요" 등 지저귀듯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말을 들으며 처음엔 웃기만 했는데, 내가 아이들에게 거창한 이유만을 손에 직접 쥐어주려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자기 나름의 이유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느끼는 감정 그대로가 그들의 걷는 이유가 된 것이다. '공동체 정신', '배려', '협력' 등이 한순간에 뚝딱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아이들에게 한 번의 활동으로 모든 것을 알아가기를 욕심냈던 것이다.

걸으며, 경험하며, 느끼며, 생각하며 하나씩 만들어가는 것을 욕심 부렸다. 지리산둘레길 종주를 마치며 돌아가는 버스에서 아이들에게 "2박3일 동안 힘들었죠? 걸으며 어떤 큰 목적을 가질 필요는 없어요. 여러분이 느낀 그대로가 목적이고, 그거면 충분합니다. 즐거웠든, 힘들었든 느낀 것으로 충분합니다"라고 마무리 말을 했다.

나 역시 2박3일 동안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배웠나 되짚어본다. 아이들의 목적만 생각하다 내 목적은 뒷전이 된 것 같은 걱정이 든다. 나는 아이들을 더 많이 알아가는 것이 큰 목적이고 큰 성과인 것 같다. 그것만으로도 나의 목적은 충분히 달성했다. '희망아, 이제는 너의 질문에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널 자세히 보기 위해 걸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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