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기49년부터 8년 걸쳐 추진, 교단 새 기틀 마련

'역사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다'는 말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원불교100년기념성업회는 원기92년 11월4일 발족됐다. 그동안 진행됐던 성업봉찬사업과 반백년기념대회를 살펴보며 원불교의 발전 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1주 반백년기념사업 2주 소태산대종사탄생100주년기념사업 3주 정산종사탄생100주년기념사업 4주 원불교100년기념성업회와 대산종산탄생100주년기념사업 등을 소개하고 점검한다.

▲ 원기38년 제1대 성업봉찬대회 안내서.

원불교가 창립된 지 98년. 교단의 본격적인 발전은 원기38년(1953) 제1대 성업봉찬사업 이후로 볼 수 있다. 교단 초기에는 일제 강점기라 명맥만 유지하기에도 벅찼으며 이후 대종사의 열반과 8·15해방, 한국전쟁을 거치는 과정에서 발전을 하기가 어려웠다.

원기56년 거행된 개교반백년 기념사업은 제1대 성업봉찬사업의 연속선상에 놓여있었다고 볼 수 있다.

제1대 성업봉찬사업

대종사는 교단 창립의 한도를 36년으로 정하고 창립 제1대라 했다. 창립 36년 동안 교단 창립의 기틀을 대강 확립하려 의도했다고 볼 수 있다. 제1회 12년 동안에는 주로 교단 창립의 초석이 될 남·녀 제자를 만났다. 제2회 12년에는 교서편찬에 주력했다. 이 시기에 〈수양연구요론〉 〈육대요령〉 〈삼대요령〉 〈조선불교혁신론〉 〈신정예전〉 등 초기교서가 발간됐다. 제3회에는 교도훈련과 기관설립에 주력했다. 매년 동하선을 실시했고 각 교당에서도 교리강습을 개최했다.

대종사는 창립한도 제1대 성업봉찬사업의 결실을 보지 못하고 원기28년(1943) 6월1일 열반했다. 원기34년(1949) 4월 '대종사주 성업봉찬회'가 조직되었으나 이듬해 한국전쟁을 겪고 10월에 성업봉찬회가 다시 발족됐다.

제1대 성업봉찬사업의 추진 계획은 ▷성업봉찬 기념대회 개최 ▷소태산대종사 성탑·성비 건립과 원광대 교사 신축 등 건축사업 추진 ▷대종경, 창건사 창립유공인 역사, 교당 및 기관 연혁, 성가집, 기념문집 등 각종 편찬사업 ▷연극제, 체육대회, 웅변대회 등 이었다. 그러나 한국전쟁으로 인한 사회불안과 경제적 어려움 등 여러 가지 난관으로 계획한 사업을 다 추진하지 못하고 연기되거나 반백년기념사업에 까지도 연장됐다.

완성된 주요사업

건축분야에서는 소태산대종사성탑이 원기34년(1949)에 준공됐으며 성비는 원기38년에 완공됐다. 이때부터 성탑과 성비를 중심으로 한 총부 영모원 일대가 추모공간으로 바뀐 셈이다. 당시 성업봉찬사업비의 40% 이상을 투입하여 원광대 교사를 신축했으며 당시 신축된 석조 단층 건물은 원기49년(1964)에 철거됐다. 당시 신축한 교사는 원광대 발전의 디딤돌이 된 셈이다.

원기38년(1953) 4월26일 개교기념일을 맞아 원광대 운동장에서 5천 여 명의 재가 출가와 내외 인사가 참석해 교단사상 최대의 기념대회를 개최했다.

성업봉찬을 계기로 그동안 사용해 오던 시창연호를 원기(圓記)로 바꾸기로 결의했다. 또 6월1일에 하향(夏享)을 거행했다. 육일대재의 기원인 된 것이다.

법훈 증여 및 각종 경축행사도 진행됐다. 다만 교단의 어려운 경제 형편을 고려해 창립유공인 표창과 각종 경축행사는 4년 후인 원기42년(1957) 4월 총회 때 열렸다. 이때도 4천 여 명의 교도들이 총부에 모여 경축 체육대회, 예술제, 웅변대회, 합동 회갑식, 교화 및 연원상 시상이 거행됐다.

창립 유공인 표창은 교단 제1대를 결산한 결과 전무출신 258명, 거진출진 1498명이었다. 이때 교단 최초로 종사위 대봉도위 대호법위의 법훈을 증여했다.

제1대 성업봉찬 사업은 계획대로 추진을 못하고 개교 반백년기념사업으로 계승 추진됐다.
▲ 반백년기념대회 안내 리플렛.

개교반백년기념사업

개교반백년기념사업은 교단의 제2의 창립이라 할 수 있을 만큼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당시 교세가 양적으로 2배 이상 확대됐다. 한국 민족종교로 발전하기 시작하는 한편 종교연합운동과 해외교화에 적극 노력함으로써 세계종교로 발돋움할 터전을 닦기 시작했다.

서울회관 건립을 계기로 교단은 사회적응의 능력과 경험을 쌓기 시작했다. 또한 교단 안으로 극복하고 해결해야할 많은 문제들에 대해 자각을 하기 시작, 여러분야에 걸쳐 교단은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된 것이다.

개교반백년기념사업회의 발족은 원기49년(1964)이다. 제1대 성업봉찬사업은 정산종법사의 지도로 추진되었으나 반백년기념사업은 원기47년(1962) 1월 정산종사의 열반으로 대산종법사가 추진했다. 사업 추진의 분위기 고조를 위해 '재가 출가 합력하여 일원성업 이룩하자'는 표어와 개교반백년기념가가 제정됐다.

주요 사업에는 ▷교화 삼대목표 추진운동 ▷교서 발간사업 ▷교도 법위향상 운동 ▷각종 문화사업 ▷건축사업 ▷기념대회 등이 진행됐다.

교화 삼대목표 추진운동은 연원달기, 교화단 불리기, 연원교당 만들기이다. 연원달기는 교도불리기 운동으로 이 기간에 약 8만 명에 가까운 교도가 증가했다. 교화단 불리기는 1457단이 증가했다. 연원교당은 약 90여 개의 새 교당이 창설됐다. 이 추진운동으로 교세가 2배 이상 확장된 것이다.

교서발간사업은 반백년기념사업을 계기로 더욱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당시 정산종법사는 정화사까지 설립해 교서편찬을 독려했다. 그러나 교전 발행을 보지 못하고 열반했다. 대산종법사는 취임 후 바로 교전 발행을 촉구했다. 원기47년(1962) 9월에 〈원불교교전〉이 발간됐고 이후 〈불조요경〉, 〈예전〉, 〈성가〉, 〈정산종사법어〉와 영문판 〈원불교교전〉이 발간됐다.

교도법위향상운동은 교단의 내적 충실을 도모한 운동이다. 대산종법사는 원기50(1965)년 10월 교도법위 향상에 관한 특별유시를 발표했다. 천여래 만보살의 배출을 위한 대법풍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각종 문화사업으로는 소태산대종사 유품 전시회, 기념사상 대강연회, 예술제, 교리강연대회 등 각종 행사가 열었다.

반백년기념사업에는 총부확장과 반백년기념관, 영모전, 종법원, 정산종사성탑 등이 건립됐다. 영산성지 노루목에는 대종사의 대각을 기리는 만고일월비가 건립됐다.

개교반백년기념대회는 원기56년(1971) 10월7~12일 중앙총부와 영산성지에서 열렸다. 교단 사상 최대의 행사로 거행됐다. 3만 여 명의 교도와 국내외 각계 인사 2백 명이 참석했다.

서울회관 건립

원기56년(1971) 10월에 착공해 12년 만인 원기67년(1982) 10월 완공을 보게된 서울회관은 반백년기념사업 중에서도 가장 많은 땀과 눈물을 흘린 결정체로 볼 수 있다. 서울회관 건립 과정에 있어서 남한강개발주식회사에 교산을 담보해 준 것이 회사의 부실로 교단이 빚을 짊어지게 됐다. 따라서 교단은 본의 아니게 어려운 문제에 휘말리게 된 것이다.

교단의 서울진출이라는 부푼 기대로 시작했던 서울회관은 전 교도가 일치단결하여 부채청산, 좌절, 실의, 포기, 중단 등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서울 흑석동 한강변 1945평의 대지에 지하 1층, 지상 6층의 회관을 건립했다.
▲ 당시 신축 중이었던 중앙총부 반백년기념관.

반백년 기념사업 이후의 교단 변화

반백년기념사업은 원기49년~원기56년 8년에 걸쳐 추진됐다. 이는 결실성업이라는 의미와 제1대 성업봉찬의 연장, 발전이라는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원기56년 끝난 사업이라기 보다는 개교2대말 또는 소태산대종사탄생1백주년 및 개교 1백년대를 향해 계속되어지는 사업이라 측량했다. 대종사가 예언한 '사오십년 결실'이라는 말씀에 근거해 반백년기념사업은 8년 동안 교세를 2배 이상 발전시켜 교단의 새 출발이라 할 수 있다.

교세의 발전과 출판문화의 활성화, 지속적인 법위향상 운동, 각종 훈련 강화, 봉공활동 활성화를 가져왔다. 또한 법치교단의 운영 강화 요청에 따라 각종 법규가 제정 또는 개정됐다.

현 시점에서 반백년기념사업의 대체를 살펴 볼 때 서울회관과 관련한 남한강사건을 제외한다면 상당히 고무적인 가운데 각종사업이 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교단 제2 창립기의 희망을 구성원 전체가 공감했기 때문이 아닐까.

원기100년은 앞으로 2년 남았다. 모든 재가 출가 교도들은 교화대불공과 자신성업봉찬에 치중하자는 첫 서원을 잃지 않는 가운데 세계주세교단건설과 대자비 교단, 보은대불사에 합력하는 자세를 보일 때이다.

원불교100년기념성업회 역시 원기100년 성업의 중요 사업이 잘 추진 될 수 있도록 독려의 메시지를 끊임없이 심어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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