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파급효과 증대, 대중화 가능성 타진

'역사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다'는 말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원불교100년기념성업회는 원기92년 11월4일 발족됐다. 그동안 진행됐던 성업봉찬사업과 반백년기념대회를 살펴보며 원불교의 발전 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1주 반백년기념사업 2주 소태산대종사탄생100주년기념사업 3주 정산종사탄생100주년기념사업 4주 원불교100년기념성업회와 대산종산탄생100주년기념사업 등을 소개하고 점검한다.

▲ 소태산대종사100주년기념대회장 .

원기76년 열린 소태산대종사탄생100주년 기념사업은 교단 창립 2대말과 함께 교단의 힘을 응집시키고 역량을 강화한 기회였다. 원기56년 열린 개교반백년 기념사업 이후 20년만에 열린 교단 대대적인 행사였으며, 2대 성업봉찬인 원기72년과 4년 간격을 두고 교단 전반의 혁신과 발전이 이뤄졌다. 당시 1986년 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올림픽 등을 앞두고 국가적으로도 경제·문화 수준이 전반적으로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 분위기에 발맞추어 교단내적으로는 총부·성지 장엄과 함께 학술편찬으로 내실을 다졌으며, 문화와 복지·봉공사업을 다양하게 펼쳐 종단의 위상을 끌어올렸다. 또한 중앙중도훈련원을 비롯한 전국 각지의 훈련시설 건립을 지원하고 해외교화 개척도 확대함으로써 향후 교화의 기반을 닦아가기도 했다. 외적으로는 ACRP(아시아종교인평화회의)의 주력 멤버로 제3차 아시아종교인평화회의 서울 총회를 최초로 유치해 현재까지도 KCRP(한국종교인평화회의) 활동의 주축을 담당하고 있다.

교단내외적인 역량 강화 기회

교단 2대말과 함께 총 9년의 준비기간을 거친 소태산대종사탄생100주년기념사업은 초대회장 박광전 종사, 2대회장 이공주 종사와 함께 박장식 성업봉찬회장과 김인철 교정원장이 이끌었다. 규모나 예산, 활동 영역 등 기존의 행사와는 확연히 다른 대대적인 준비를 위해 원기68년 제96회 임시수위단회에서 성업봉찬회 발족이 결의됐다. 하지만 성업봉찬회가 정식 출범하기까지 3년의 시간이 소요됐다. 이는 원기55년 발생한 서울회관 건립 문제의 마무리와 시기가 겹쳤던 것이 주된 이유 중 하나였다. 일명 '남한강 사건'으로 불리는 이 일은 갑작스러운 공사 중단으로 서울회관을 포기하자고 결의할 정도로 교단적으로 큰 시련이었다. 이에 출가 재가교도들의 혈심어린 노력으로 완공, 운영하는데 12년이 걸렸다. 12년동안 교단의 가능 자금이나 노력 등이 이 사건에 결집되어 있어 성업봉찬에의 규모나 예산을 책정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9년의 준비와 교단 2대말·소태산대종사 백주년 기념사업의 역사를 담은 〈성업봉찬휘보〉에 따르면 크고 작은 사업은 1백여개, 총 결산액은 80여 억원에 이른다. 원기69년 처음 종합사업계획을 수립할 때 25개 사업 총 21억원의 예산을 책정한 점이 교단적인 고난과 무관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성업봉찬회 10개 사업 6개 분과

성업봉찬회는 처음부터 교정분야와 성업봉찬분야를 구분해 사업을 꾸렸다. 교정원에서는 공부 사업의 결산과 교정의 합리화, 교세확장, 교정 현안문제 해결을 목표로 했다. 성업봉찬회에서는 ▷총부건설 개발 ▷영산성지 성역화 ▷아시아 및 국제종교인회의 개최 ▷국제훈련원 및 해외교당 설립 ▷기념대회 및 각종 경축행사 ▷문화 편찬사업 ▷사회봉공사업 ▷영모원사업 ▷대전권 개발 ▷기타 사업 총 10개의 사업을 목표로 추진해 가기로 결의했다. 이후 성업봉찬회는 이 10개 사업을 성격별 분류, 조정해 재정·건설·학술편찬·문화홍보·행사·봉공 분과로 총 6개의 분과로 운영했다.

재정분과에서는 각 교구·교당에 배정된 성금의 목표달성과 특별희사를 추진했다. 특히 '성업봉찬 탑쌓기운동'을 전개해 10탑이상 방명회원 2만여 명을 달성했다. 동참회원까지 포함해 3만여 명을 모집한 이 운동으로 소태산대종사기념관의 2탑이 세워졌다. 건설분과는 교단적으로 가장 시급하고 중대한 사업인 총부와 영산성지 장엄사업을 추진했다. 총부로는 대종사성탑을 장엄하고 정산종사성탑을 준건했으며, 소태산대종사기념관을 건립했다. 영산성지에서는 성지사업회 주관으로 대각지 장엄, 구간도실터 등 사적지 기념시설, 순례객숙소 신축, 성지진입도로 포장 등이 이뤄졌다. 이 시기에는 특히 학술편찬이 많이 이뤄졌는데 여섯 차례의 국내·국제 학술회의를 통해 원불교의 교리와 소태산대종사의 생애, 사상을 드러냈다. 이 학술대회에 있어 원불교교수협의회와 원불교사상연구원, 종교문제연구소, 원광대학교 등이 공동 개최하는 것으로 교단 내 모든 학술단체와 기관이 합력했다. 또한 원기 72년까지의 2대의 교단 자료와 역사를 집대성한 〈원불교 72년 총람〉은 기획부터 발간까지 총 5년이 걸린 기념비적인 사업이었다.

교단 1대가 고난 속에 뜻을 지키고 이어가는데 중점을 두었고, 교단반백년기념사업에 이르러서야 교세 2배 확대, 세계종교로 발돋움할 터전 마련을 완성했다. 교단반백년 이후 20여 년만에 열린 소태산대종사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은 '문화부흥'이라는 시대적인 사명을 선도해 갔다고 평가된다. 특히 '남한강사건'의 종료와 맞물려 '원불교문화'에의 요구가 커졌던 시기였다. 이에 문화홍보분과는 대종사 생애와 사상, 경륜을 판소리와 춤으로 엮어낸 '개벽의 북소리'와 전통 창무극 '창극 소태산'을 무대에 올렸고 전국 순회공연을 통해 문화교화에 나섰다. 또한 원미술인회가 주관한 '원상징의 예술혼전'과 '원디자인전', 원불교와 가톨릭, 불교의 여성성직자 모임 삼소회의 '삼소시화전'이 열린 것도 이 시기였다. 사진초대전과 꽃꽂이 전시회 역시 다양한 원불교문화 창달에 기여했다. 봉공분과로는 안구기증과 시술, 은혜의 헌혈, 심장병어린이 시술, 은혜의 한가족되기, 은혜의 물건나누기 등 구체적인 목표와 다양한 방법이 활용됐다. 또한 원로원신축, 익산수도원 증축과 함께 한국보육원과 원광장애자복지관 지원이 이뤄져 이후 원불교청운회의 '유린원광장애인종합복지관' 건립과 운영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행사분과에서는 3대 주요행사를 펼쳤다. '교단 창립 제2대 성업기념대회'와 '소태산대종사 탄생백주년 기념대회', 그리고 '제 3차 아시아종교인평화회의(ACRP) 서울 총회'였다. 원기73년 11월4일부터 나흘간 열린 교단2대 성업대회에는 2만여 교도가 운집한 가운데 대산종사 재추대와 법호·법훈인 수여식이 진행됐다. 원기76년 대각개교절에 맞춰 열린 소태산대종사 탄생백주년 대회는 교단안팎의 모든 역량과 힘이 모인 역사적인 행사였다. 소태산대종사기념관개관 및 성상봉안식과 전야 경축기원식, 기념경축식, 민족통일 세계평화기원식 등 주요행사 뿐 아니라 화동잔치, 국제학술대회, 세계종교자대화의 모임, 종교 헌다의식시연회, 젊은이한마당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인 수준있는 종합예술축제로 펼쳐졌다.

또한 앞서 원기76년 6월 17~21일 제 3차 아시아종교인평화회의(ACRP) 서울 총회를 주관해 국내 6개 종단과 22개국 종교대표 등 총 1천여 명이 참석하기도 했다.
▲ 소태산대종사100주년기념대회 포스터들.

새 시대, 새 종교 이념 제시가 가장 큰 성과

현재 교단의 모습과 이미지, 위상의 기틀을 잡은 소태산대종사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는 교단의 위상을 확연히 드높인 기념비적인 사업이었다. 지금의 총부나 영산성지의 모습을 갖춘 것이 이 때였으며, 새롭게 창조한 다양한 분야의 행사로 이후 발전 및 심화해갈 수 있는 기틀이 되었다는 평가다. 특히 세계주세교단으로서의 새 시대, 새 종교 이념을 제시한 점이 높이 평가된다. ACRP 총회와 UR운동의 저력을 인정 받은 결과 국제기구, KCRP, 남북 종교인대화 등에 주축멤버로 활동하게 되기도 했다.

하지만 성업봉찬회 조직 당시부터 교단 2대말 성업행사와 소태산대종사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가 혼합되어 혼란을 야기했다는 평가도 뒤따른다. 원기76년 11월 6일 총부에서 열린 성업봉찬 총평가회에 따르면 6개분과 대표위원들은 '향후 이와 같은 교단적 행사를 진행할 때 교정원장이 대회장과 회장을 맡아 총괄해야 할 것'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동시에 만약 특별기구가 생긴다면 다양한 사업들의 진행, 책임을 성업봉찬회와 같은 특별기구의 몫으로 할 것인지 현 집행부인 교정원이 맡을 것인지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당시 대회만 교정원과 합력했고 나머지는 성업봉찬회의 독주로 볼 수 있는데, 이를 점검하는 기구가 없다는 점이 아쉬웠다는 평가다.

또한 총평가회에서는 사고, 자료실, 문헌실 마련이 시급함과 함께 시시각각 소실되는 자료나 노후되는 유공자 선진들에 대한 기록이 부족하다고 지적됐다. 출재가 교도들의 교단과 하나된 역사를 기록할만한 기구가 필요하다고도 밝혔다.

원기98년 현재, 과거 거룩한 성업 결과와 함께 실무자들이 참여한 날카로운 평가를 귀담아들어야 한다. 총평가에 의하면, 소태산대종사탄생100주년 기념사업을 통해 문화의 파급효과가 증대했고, 대중화의 가능성을 타진해볼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됐다. 9년 동안의 준비과정동안 예측하고 추진해왔던 결과 이상의 성과였다. 당시 이 가능성을 보고 후속작업을 할 수 있는 재원과 이론적 정리가 시급하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20여년이 흐른 현재까지도 원불교문화의 정체성이나 수준에 대한 의문이 여전하다. 원불교100년이 흐른 뒤에는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현재 박차를 가하고 있는 원불교100년기념사업의 중간 평가 뿐 아니라 재가 출가교도 개개인들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준비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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