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성의 교도/서울교당
'24'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햇수의 절반을 넘는 숫자이다. 원기74년 학생회에서 진급하여 청년회에 발을 들여놓은 햇수이기도 하다.

'12'
원기80년부터 원기92년까지 서대연(서울교구 대학생 연합회) 지도간사로서 활동한 기간이다.

'6'
서울교당 청년회, 서원회, 서대연, 원대연(원불교 대학생 연합회), 대원회(서원회 졸업생 모임), 원청, 현재 나의 준거집단이다.

'3'
원기98년 교당에서 1인1역으로 법회에 출석하여 수행하고 있는 3분 교리 강습, 나의 지난 공부를 돌아보는 시간이다.

'1'
무슨 일을 할 때에나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일심(一心)'으로 하고 있는지….

'∞'
나와 원불교, 그리고 모든 법연들과의 인연이다. 영생토록 이어질 것이기에.

어느 유명한 야구 해설가가 말했다. "야구~~ 몰라요~~!" 나의 결론이다. "청년 교화~~ 몰라요~~!"

오랜 기간 청년 교화에 관계된 집단에서 활동하였다고 청년 교화를 잘 할 것이고, 잘 알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종종 청년교화를 어떻게 해야하나? 라는 질문을 받을 때는 명확하게 답을 줄 수 없어 멋쩍어진다. 하지만 다른 마음으로 보면 잘 하지 못했고,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도 아쉬움에 이렇게 몸부림치고 있다.

청년교화의 황금기는 내가 대학생이 됐을 때 이미 한창이었다. 기본적으로 서른명 이상 법회를 보는 서울교구 청년회들이 십수개였고, 교구 행사엔 2~3백이 훌쩍 넘었다. 자기 교당 청년회에 대한 소속감이 컸고 프라이드가 높아 단결도 잘됐다. 하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경쟁이나 갈등이 생겼고, '불합리한 사회 구조, 내 식구만 생각하는 이기심 등 원불교라고 별다른 게 없다'는 실망, 환멸을 느낀 사람들이 떠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청년교화는 무너져갔다.

내 옆에 있던 법연들이 어디 있는지 반성을 해본다. 내가 남아 있다고 모든 일들이 옳았다고 할 수 없다. 오히려 나만 남아 있다는 반성과 모르고 지은 업은 없는지 참회 · 반조해 보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지금 시시때때로 일의 시비를 따지지 않고, 내가 하는 행동의 모습을 따져 보고 있다. 내 행동으로 인해 소중한 법연과의 관계에 업이 쌓이는가, 은혜가 쌓이는가를 말이다.

우리는 이야기한다, 청년 교화를 부활시킬 방법들에 대하여.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계속 이야기할 것이다. 그 방법들을 이야기하며 대상이 되는 사람, 청년들을 객체로 대하였는지, 주체로 대하였는지 한번쯤 고민하는 것은 어떨까.

지금까지 많은 청년 교화를 위한 이벤트의 기록은 남아 있지만, 그 때 참여했던 사람들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참석인원, 행사 규모 등 늘 결과에 치중한 나머지 이벤트의 참 의의나 인간관계 등 과정에 소홀했던 탓이다. 몇 명이 참여했는지 보다 한명 한명이 얼마나 만족했는지를 봐야한다. 단 한 시간 한 프로그램을 한다해도 바쁜 청년들이 어렵게 낸 시간이 아깝지 않아야한다.

그리고 교당, 교구 행사를 통해 청년 한명 한명의 진정한 모습을 재발견하고 응원해줄 수 있어야 한다. 학교나 직장에선 하기 힘든 이야기, 보이기 어려운 모습을 알아주고 안아주는 도반들이 프로그램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좋은 프로그램 하나가 청년 여럿을 교당으로 이끌 수 있다.

오랫동안 청년교화의 흥망을 지켜본 나는 '지금은 사람을 발견하고 이야기해야 할 때'라고 얘기하고 싶다. 이제는 자기를 드러내기에 목마른 시대다. 특히 청년의 경우 그 갈증은 더 심하다. 나를 드러낼 수 있는 좋은 프로그램 하나, 청년교화 부활의 핵심이요, 내 삶의 청년교화에 대한 숫자 '24, 12, 6, 3, 1'이 ∞로 수렴할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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