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를 원경고등학교로 전학시키면 다 해결될 줄 알았던 나의 생각은 여지없이 무너졌고 학부모 학교가 있다는 연락을 받고 참석하게 됐다.

박영훈 교장으로부터 마음공부 강의를 들으며 요인훈련 때 한 번 들은 강의로 버티어 오다가 대조하는 공부에 서툴러서 시들해졌던 마음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학부모 학교에 참석한 것이 다행스러웠다. 마음 대조하는 공부를 다시 배우는 기회가 왔다는 기대감으로 몇 년 동안 시달렸던 모든 경계들의 체증이 싹 사라지는 느낌을 받았다. 이미 나는 방금 목욕하고 나온 개운한 기분으로 내 마음은 하늘을 훨훨 날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일기를 메일로 보내면 감정을 해주실 수 있겠느냐는 내용으로 선생님께 메일을 보냈다.

환영한다는 답 메일을 받은 즉시 일기를 보내며 문답감정을 받게 됐다. 내 마음을 다 드러내 놓고 감정을 받았지만 공부한다는 일념 하나만으로 부끄럽고 창피한 줄 몰랐다.

선생님의 감정은 따뜻한 마음과 함께 마음원리에 바탕을 두고 또 다른 나를 만나 볼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딸아이도 학교에서 마음 원리를 배우고 공부하며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는 것 같았고 딸아이와 마음으로 만나지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며 아이도 많이 안정이 됐고 무엇보다 내가 변화되어져 가는 것을 스스로 느낄 수 있었다.

일 년에 두 번 정기적으로 학부모 학교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게 됐고 선생님께서는 수계농원 정전 마음공부 정기 훈련을 권해줬다.

딸아이를 데리고 서너 차례 마음공부 훈련을 나며 이 좋은 공부를 나 혼자 한다는 것이 너무 아까워서 교도들과 가까운 인연들께 권하기도 하며 함께 훈련을 나기도했다.

여동생과 함께 성주 삼동연수원으로 정전 마음공부 훈련에 참석했다가 여동생은 장산종사에게 중원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주재원으로 근무하게 된 제부와 중국으로 이사를 간 동생 가족은 중국 북경교당에서 가족 모두가 입교해 교도로서의 역할도 잘해줘서 자랑스러웠다.

임기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동생 부부는 여의도교당에 잘 다니고 있다.

선생님께 문답감정을 받으며 경계에 부딪치고 무너지고 엎어지고 깨지며 해도 해도 끝없는 마음공부가 지겨워서 '선생님 언제쯤 끝이 날까요?' 하는 메일을 보낸 적이 있는데 그 때 선생님께서 '죽을 때 까지 평생'이라는 답을 보내왔다.

정말 죽을 때까지 평생 해야 하는 공부는 마음공부라는 것을 하면 할수록 확인돼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죽기 살기로 4년 동안을 선생님께 매달려 문답감정을 주고받으며 포기하지 않았더니 조금씩 마음에 힘이 쌓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자신감도 생겼다.

끝이 보이지 않으니 사량계교심을 내기도 하며 힘들어 하다가 어느 날 문득 마음이 조금 밝아지니까 보이지 않았던 것까지 보게 되며 세밀한 공부가 됐던 것을 알게 됐다.

마음이 편안해지니 게으름이 나서 잠시 동안 일기기재를 하지 않고 마음만 보고 따라 다닌 적도 있었다.

인터넷 공부방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또 다른 방법을 찾아 헤매기도 했었지만 일기를 기재하며 더 세밀하게 나를 보게 됐고 되도록 일기를 기재하려고 노력하며 요즘도 그 노력은 쉬지 않고 있다.

주착된 마음으로 나누고 분별하며 주위 인연들을 탓하고 괴롭히고 나 자신을 볶아댔던 지난 시간들이 떠오를 때마다 참회를 하게 된다.

'하고 또 해서 안 해도 될 때 까지'하라는 대산종사의 법문을 가슴깊이 새기며 나는 오늘도 사실적 도덕의 훈련으로써 정신의 세력을 확장해서 낙원을 찾아가는 마음을 훈련시키는 공부에 정성을 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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