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광익 교무의 '반야바라밀다심경'

▲ 지위선사
苦厄1. 공도리(空道理)를 깨치자.

〈반야심경〉의 전 내용이 공(空)이다. 공이란 '텅 빈 것' '없는 것' '어려 있지 않는 것' '아닌 것' '아무리 찾으려 해도 찾아지지 않는 것' '무엇을 대비시켜도 얻음이 없는 것'등의 뜻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이런 상황에 어찌 고액(苦厄)이 있겠는가? 고액이 없다면 감지(感知)하는 물건도 없을 것이요 감지하는 물건이 없다면 소멸한다거나 건너는 과정도 역시 없어서 수행의 몸부림을 칠 필요가 없다.

2. 오온(五蘊)은 가상(假像)이다.

우리는 인간이란 물질과 정신이 결합해서 만들어졌다고 생각을 하기가 쉽다. 즉 색(色)이라는 물질적인 형체와 수·상·행·식(受想行識)이라는 정신적인 마음이 합하여 이루어진 오온(五蘊)의 뭉치라고 하는데 이렇게 생각하고 믿는 것이 큰 잘못이다. 절대로 인간은 오온의 뭉치가 아니요 오온의 가상(假象)이며 현상되는 실체(實體)가 아니므로 집착(執着)하거나 애착(愛着)을 가지지 말고 수용하는 기간만 잘 활용을 해야 한다.

3. 생사(生死)를 수용하자

원효대사(元曉大師617∼686)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막생혜(莫生兮)여 기사야고(其死也苦)요 막사혜(莫死兮)여 기생야고(其生也苦)로다" 즉 '태어나지 말지니 그 죽는 것이 고통이요, 죽지 말지니 그 태어나는 것이 고통이라'고 했다.

생사가 과연 고통일까? 부처님이나 성자들도 생사에 대해서 고통을 느낄까? 이런 현상이 고통이라면 즐거움은 없을까?

아마 남(生)에서 시작하여 죽음(死)까지 가는데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차이에 따라 고통이 될 수도 있고 즐거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생사를 하나의 과정으로 보자.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은 물의 과정이요, 소나무가 공간을 향해 뻗어나는 것은 소나무의 과정이 아니겠는가. 이와 같이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지는 생사의 문제를 꼭 괴로움으로만 인식하지 말고 인생으로서 거쳐가는 과정이라고 인식을 해 보자.

4. 인생지사(人生之事)는 새옹지마(塞翁之馬)이다.

새옹지마라는 고사를 알아보자. 회남자(淮南子)의 인간훈(人間訓)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옛날 중국 북방 국경 근처에 점을 잘 치는 노인이 살고 있었다. 하루는 그가 기르는 말이 도망쳐 오랑캐들이 사는 국경 너머로 가버리니 마을 사람들이 모여 노인을 위로했다. 그러나 노인은 "이 일이 무슨 복이 될는지는 알 수 없소"라며 조금도 실망하지 않았다. 몇 달 후 도망갔던 말이 돌아왔는데 오랑캐 땅에서 좋은 말 한 필을 데리고 왔으니 경사가 났다. 사람들은 부러워 노인에게 축하를 건너자 "이 일이 무슨 화가 될는지 알 수 없소"하면서 기뻐하지 않았다. 그런데 말 타기를 좋아하던 노인의 아들이 그 말을 타다 땅에 떨어져 다리가 부러지니 사람들은 안쓰럽게 여기며 아들과 노인을 위로했다. 그러자 노인은 "이 일이 혹시 복이 될는지 누가 알겠소?"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 후 오랑캐들이 쳐들어와 젊은이들은 모두 전쟁터에 나가 전사했지만 노인의 아들은 다리가 불편해서 전쟁터에 나갈 수 없게 되었으니 무사하여 결국 화가 복이 되고 복이 화가 되는 변화무쌍한 세상살이를 표현한 성어이다. 항상 인생사에 고락(苦樂)은 쌍반(雙半)이라 지나친 낙관(樂觀)도 금물이요 비관(悲觀)도 심하게 갖지 말고 중도(中道)를 잡아 살아간다면 고액을 벗어날 수 있다.

5. 계획은 짧게, 원력(願力)은 길게

옛 사람이 이런 시구를 남겼다.

생년불만백(生年不滿百) 사는 해 백년 채우지 못하거늘 상회천세우(常懷千歲憂) 항상 천년의 근심을 품음이어라. 사람이 어떤 일에 계획은 자신이 일생에 할 수 있을 만큼만 세워야 한다. 감당 못할 계획을 세워 그 계획에 눌리고 끌려 다른 일을 하지 못한다면 종점에 다다라 후회를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실현 가능한 계획으로 고통이 따르지 않도록 해야 한다. 반면에 원력은 크고 길게 세워야 한다. '모든 일이 하나의 원력에 합하고, 모든 행이 하나의 원력에 모아지며, 모든 마음이 하나의 원력에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諸事一願合 諸行一願集 諸心一願歸)' 그리하여 어떤 고액이라도 하나의 원력으로 승화(昇華)가 되어 진다면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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