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의 '텅 빈 그 자리'

▲ 김화종 교무 / 국제마음훈련원
초등학교 때의 기억이 먼저 스쳐 지나간다. 방학이 되면 우리 가족은 아버지 친구분들의 가족들과 함께 대산종사께서 정양하고 계신 곳으로 휴가를 떠나곤 했다. 한번은 완도에 갔을 때 일이다. 아이들끼리 놀다가 크게 싸움이 일어났다. "종법사님은 우리 할아버지야" 라고 한 아이가 말하자 서로 "아니야, 우리 할아버지야. 우리 할아버지라고 했어"라고 하면서 다툼이 일어났던 것이다. 기억에 나도 거기에 껴서 한 목소리를 했던 것 같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 출가를 결심하고 인사를 드리러 갔는데 첫 질문이 "너 부모님이 출가하라고 해서 하는거냐?"라고 물으셨다. 나는 "아니요, 제가 마음공부를 해서 서원을 세웠습니다"라고 당당히 말씀드렸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무언가 대답을 잘못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였다. 나는 정말로 스스로 서원을 세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출가를 하고 공부를 하면서 내가 서원을 세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점점 깨닫게 됐다. 대산종사의 첫 말씀처럼 부모님께서는 나를 출가시키기 위해 모든 정성을 다하셨다. 밥을 먹으면서도, 텔레비전을 볼 때에도 생각만 나면 나에게 출가하라고 노래를 부르시곤 하셨다. 그런데도 전혀 반응이 없는 나를 부모님께서는 스승님들께 출가할 수 있도록 지도를 부탁하셨다는 것을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 알게 됐다. 결국 부모님과 스승님들의 은혜와 지도로 서원을 세우고 출가를 하게 됐던 것이다.

영산선학대에 편입해 공부하면서 방학이 되면 항상 상사원에서 지냈다. 매일 아침마다 대산종사와 함께 차를 타고 수계농원으로 갔다가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것이 하루의 주요 일과였다. 차 안에서 대산종사께서는 한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나도 대산종사의 부드러운 손을 살며시 잡고 옆에 앉아 가면서도 한 번도 질문이나 말씀을 올려 본적이 없었다. 그러나 어린 마음에도 대산종사의 기운이나 마음을 읽을 수 없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하지 않아도 그 사람에 대한 느낌이나 기운이 있는데 대산종사는 그 어떠한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철벽이 하나 서 있는 것처럼 전혀 대산종사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가 없었다. 그때 이것이 바로 절대의 '텅 빈 그 자리'가 아닐까 하는 감상을 얻게 됐다.

그 이후에도 나는 방학이면 늘 상사원에서 보냈다. 그러나 여전히 대산종사는 한 말씀도 없으셨고 나도 한 말씀도 드리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가을 대산종사님의 열반소식을 접하고 깊은 슬픔에 빠져있는데 며칠이 지난 새벽, 좌선을 하다가 허공에서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눈도 없고"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사람의 눈이 사라지고, "귀도 없고"하니 귀가 사라지고, "입도 없고"하니 입이 사라지면서 사람의 얼굴이 사라지고 둥그런 실선만이 남아있는 장면이 보였다. 그리고 바로 이어 대산종사의 성안이 금빛으로 찬란히 빛나는 모습이 보였다. 좌선을 하다 너무나 놀라 눈을 떴으나 그 목소리와 얼굴의 이목구비가 사라지고 둥근 일원상만 남아 있는 장면이 생생히 떠올랐다. 나는 이것이 대산종사께서 나에게 주시는 마지막 가르침이라 여기고 마음에 새겼다.

나는 대산종사의 옆에서 몇 년을 모시면서 많은 법문을 받들지는 못했지만 대산종사의 무언의 법문을 통해 진리의 첫 길을 대중 잡으며, 삶의 여정 속에서 끊임없이 공부심을 놓지 않고 육근의 작용을 살피고 반조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자각하게 됐다. 그리고 종법사께 법맥과 신맥을 대고 제생의세의 뜻을 이 세상에 실현하기 위해 오롯이 노력하는 것이 보은의 길이며 내가 가야 할 길임을 다시금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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