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화 교도/이리교당
요즘 TV 에서 법을 주제로 다룬 한 법정 드라마가 인기다. 그 드라마에선 두 유형의 변호사가 나온다. 그 중 한 유형은 의뢰인과 동화되어 의뢰인의 마음으로 흥분하고 감정적으로 함께 싸우는 변호사이고, 다른 한 유형은 의뢰인을 철저히 타인으로 보고 이성적이다 못해 심할 땐 무성의하게까지 느껴지는 변호사이다.
필자는 아직 초심이라 그런지 첫째 부류의 변호사가 왠지 더 정의감 있는 것 같으며 그런 변호사가 돼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드는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경험 많은 변호사를 보면 절대 법정에서 감정적으로 흥분하지 않고 남 일처럼 변호하는 경우가 많다. 둘 중에 어떤 변호사가 더 잘한다고 판가름 할 수는 없고 유능한 변호사가 되기 위해서는 위 두 가지 점을 모두 지녀야 한다고 생각된다.

첫째 변호사는 의뢰인과 하나가 되어 철저히 의뢰인의 마음으로 사건에 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변호사가 되기 전에 면접을 준비하며 답변하기 아주 고민이 되는 질문이 하나 있었다. 만약 모든 사람이 손가락질하는 사람을 변호하라고 한다면 그 사건을 수임할 것인지 거부할 것인지이다. 그때는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준비하며 아주 고민을 많이 했는데 지금은 망설임없이 답변할 수 있다. 당연히 수임할 것이라고…. 이것은 돈 문제가 아니다. 찾아온 사람들과 상담을 하며 느낀 것은 이 사람이 가해자든 피해자든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고 고민이 있었다는 것이다. 설령 의뢰인이 아주 나쁜 사람이라고 해도 이 사람의 인생에 그를 이렇게 만들 수 밖에 없었던 인과관계가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의뢰인 뿐 아니라 내 주위의 사람들을 볼때 나쁜 사람이든 한심한 사람이든 못난 사람이든 짜증나는 사람이든 그 사람에 대해 분별심이 들지않고 그 사람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입장에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사람도 그런 행동을 한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이해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둘째 변호사가 중도를 잡으며 변호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사 소송에서는 변호사를 대리인이라고 칭한다. 이 의미에는 두 가지 뜻이 내포되어 있는 듯하다. 본인을 대신하는 권한을 부여함과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은 아니고 대리인 이라는 뜻이다. 사건을 진행할 때 당연히 의뢰인의 입장에서 변호를 하고 대리를 해야 하지만 그게 그렇다고 해서 상대방과 본인처럼 싸우고 감정적으로 흥분하고 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법정에 가보면 재판 중에는 서로 상대방측을 변호하는 변호사들이라도 재판이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형 동생하며 나중에 술 한 잔 하자고 헤어지는 경우를 종종 본다. 처음에는 이런 모습들이 신선한 충격이었다. 법정에서는 서로 공격하고 방어하면서 돌아서서는 아무렇지 않은 듯 본래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을 보며 꼭 무시선법에 '응하여도 주한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 라는 대목이 생각이 났다. 이것은 변호사가 본인의 입장에서가 아닌 의뢰인을 대리하는 제 삼자의 입장에서 일을 하기에 그럴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인생도 법정과 같다. 변호사가 어떤 사건을 맡아 법정에서 열심히 변호하지만 법정에서 내려오면 다시 내 삶으로 돌아오고 그 사건이 끝나면 또 다른 사건을 맡아 다른 사건 변호를 하게 되는 것처럼 내가 지금 이번 생에서 어떤 역할을 맡아 열심히 하고 있지만 이번 생이 끝나고 내 역할이 다하면 그 인생은 막을 내리고 또 다음 생에서 또 다음 역할을 맡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이번 생에 필요 이상으로 욕심내고 흥분할 필요는 없고 항상 법정에서처럼 담담하게…· 돌아서면 평상심으로 돌아오는 연습을 할 필요가 있다. 다시말해 사람을 대할때는 타인과 내가 둘이 아닌 하나라는 생각으로 대하고, 모든 일을 대할때는 응하여도 주한바 없이 그 마음을 내는 연습을 부지런히 해서 이번 한 생애의 드라마를 멋지게 살아보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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