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광익 교무의 '반야바라밀다심경'

▲ 숭악원규선사.
舍利子사리(舍利)는 산스크리트어의 음사이다. 추로자(秋露子)·추로자(鶖鷺子)·구욕자(鴝鵒子)라 번역한다.

그의 어머니는 마가타국 왕사성 바라문 논사(論師)의 딸인데 출생할 때에 눈이 사리조(舍利鳥)와 같았음으로 이름을 사리(舍利)라 하였다. 사리불(舍利佛)이란 이름은 '사리의 자식(舍利之子)'이라는 의미이다. 또한 이름은 우바저사(優波底沙[梵Upatis!ya,巴Upati^s!ya]), 우바제사(優波提舍), 우바제수(優波帝須) 등으로 '큰 광명'이라는 뜻이다.

부처님의 십대제자(十大弟子)의 한 사람으로 마가다(magadha) 국의 수도 왕사성(王舍城) 근처의 바라문 출신으로 지혜가 뛰어나 '지혜제일(智慧第一)'이라 일컫는다. 원래 목건련과 함께 육사외도(六師外道)의 유명한 논사(論師) 중 한 사람인 산자야의 수제자였으나 붓다의 제자인 아설시(阿說示)로부터 그의 가르침을 받게 됐다.

하루는 목건련과 함께 길을 가다가 저 멀리서 노란색 옷을 입고 아주 점잖고 품위가 있으며 기품이 흐르는 모습으로 걸어오는 사람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 사람이 바로 부처님 제자인 마승(馬勝)이다. 두 사람은 마승에게 어떤 스승을 섬기며 가르침을 받느냐고 물었다. 이에 마승은 "나는 싯달 태자가 출가해서 수행한 뒤에 깨달음을 성취했는데 그분을 우리들은 석가모니부처님이라 부른다." 그래서 그분에게 귀의해서 공부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 부처님은 어떤 가르침을 베푸느냐의 물음에 "제법종연생(諸法從緣生) 제법종연멸(諸法從緣滅) 아불대사문(我佛大沙門) 상작여시설(常作如是說)"이라 대답했다. 즉 '모든 법은 인연으로 쫓아서 생기고, 인연으로 쫓아서 소멸된다는 것이다. 우리 부처님 큰 사문께서는 항상 이와 같이 말씀을 하시니라'는 마음에 환희심이 생겨 문도 250여명과 마승을 따라 부처님 문하에서 25년을 살았다. 특히 사리자는 기원정사(祇園精舍)를 설계하고 감역하여 완성시킨 인물로 기록이 되어 있다.

사리자와 목건련은 절친한 사이로 두 사람의 이야기를 해 보려 한다. 우선 사리불이나 목건련은 부처님보다 먼저 입멸(入滅)했다. 하루는 비구들이 모여서 사리자와 목건련이 3개월 뒤에 열반을 한다하니 부처님께 허락을 받은 것이냐고 물었다는 이야기가 〈대방편보은경(大方便報恩經)〉 5권, 〈현우인연경(賢愚因緣經)〉 5권 등에 실려 있다.

장아함(長阿含) 8권 〈중집경(衆集經)〉 9권과 10권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면 다음과 같다. 목건련은 과거의 숙업으로 말미암아 외도들에게 장대와 기와와 돌에 맞아서 열반에 들었다. 이 일을 안 사리자가 먼저 열반하고자 하여 부처님과 사별(辭別)을 하고 제자들과 고향 나라다(那羅陀)에 돌아와서 우연히 질병을 얻어 열반에 들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월광보살경(月光菩薩經)〉에는 사리자와 목건련 두 사람이 부처님께 입멸(入滅)을 청구하니 부처님께서 옛날의 인연을 설해 주었다. 두 상족(上足) 제자는 부처님보다 먼저 열반에 들었다.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18권에 사리불이 말하기를 "(중략) 또한 내가 여래로부터 이런 말씀을 들었는데 과거나 당래나 지금 모든 부처님의 상족 제자는 먼저 열반을 취한 연후에 부처님이 열반을 취하게 된다"고 했다.

〈지도론(智度論)〉40에 '사리자는 이에 오른편 제자요 목건련은 이에 외편 제자이다'고 했다.

〈살바다비니비바사(薩婆多毗尼毗婆沙)〉7권에 사리자와 목건련이 차마 부처님의 열반을 볼 수가 없어서 먼저 열반에 들었으니 먼저 열반에 듦으로 인하여 7만 나한도 또한 함께 열반에 들었다고 했다.

〈천태정명소(天台淨名疏)〉 1에 '의하건대 승렬신자는 왼쪽이 되고, 의하건대 정혜신자는 오른 쪽이 된다(若據勝劣身子爲左 若據定慧身子爲右)'고 했다.

〈잡어(雜語)〉에 '목건련은 신통이 제일이었으니 신통은 정력이 쌓여 부려지는 것이라 그러므로 왼쪽에 배치되어 부처님의 왼편 제자가 되었다(目連爲神通第一 神通爲定力所使然 故配之于左方 爲佛左面之弟子)'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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