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교당 지선양 교도

제 친정은 무종교이지만 결혼하기 전까지 열심히 교회를 다녔다.

결혼 전 좋은 인연을 만나기 위해 '저의 인연은 기독교 집안이게 해 주십시오. 혹~ 나의 인연이 불교집안이라면 부담스러운 첫째가 아닌 사람을 주십시오'하고 기도했다. 첫째가 아니면 교회에 다닐 수 있을 것 같아서 이런 기도를 정말 많이 했다.

그런데 그 간절한 기도는 어딜 가고 그냥 원불교도 아닌 원불교 골수집안을 인연 맺게 해 줬다. 남편을 처음 보는 순간 "개종하지 뭐"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쉽게 결정을 내린 이유를 지금도 모르겠다.

결혼과 동시에 어머니의 거역할 수 없는 그 어떤 분위기 때문에 교당을 나갔다. 바로 입교도 했다. 그때 처음 본 교무님께서 "세계 모든 종교는 하나다"며 "성경책과 교전을 비교해 가면서 읽어보라"는 말씀과 함께 교전을 선물로 줬다.

사실 기독교는 타 종교에 대해 배타적인 면이 많은데 교무님의 말씀에 큰 거부감 없이 교당에 다녔다. 나는 법력이 높으신 어머니과 큰 시누이도 교무님, 작은 시누이 남편도 교무님이다. 그리고 외아들인 남편과 어머니를 10년 넘게 모시고 살면서 감사하는 마음보다 원망하는 생활이 더 많았다.

나는 결혼 전 교회를 다녔기 때문에 급한 마음에 어머니께서 나를 다그치신 것이 아닌가 싶었다. 간단한 예로 일요일 교당을 가지 않으면 어머니 안색이 좋지 않고 찬바람이 쌩쌩 분다. 또 내가 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표정이 차가워지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나는 '내 마음이 움직여야지, 몸만 가면 무슨 소용이 있나? 법력이 높으신 분이 왜 저러실까?'하는 생각이 들어 원불교에 대해서 부정적이었다.

어떤 계기로 2년 전에 유성교당으로 옮기게 되었다. 교무님과 단장님의 도움으로 원불교 마음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사은님이 계심을 믿습니다.

저에게 깊은 믿음과 신심을 주십시오"


2년 전 처음 공부를 시작 했을 때 원불교 교법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교무님께서 우선 먼저 심고와 좌선부터 해 보라고 권했지만 매일 5시에 일어나 심고와 좌선을 한다는 것이 정말 어려웠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저절로 일어나 좌선을 하고 있다. 처음 좌선을 할 때 "개미가 기어 다니는 듯한 가려움"을 체험했다. 그러면서 "진리가 있구나"하는 신기한 일도 경험해 보았다.

하루는 청수를 올리고 늘 그랬듯이 "사은님이 계심을 믿습니다. 저에게 깊은 믿음과 신심을 주십시오" 하는 마음으로 잠시 졸음을 떨치기 위해 눈을 떴다. 그런데 양쪽 촛불 주위에 뚜렷한 일원상이 한참을 밝히고 있었다. 몇 번을 떴다 감았다 하는 동안에도 계속 밝게 빛나고 있었다.

정전 좌선법에서는 '좌선을 하는 동안 혹 그러한 경계가 나타난다 할지라도 그것을 다 요망한 일로 생각하여 조금도 마음에 두지 말라'했다. 그때부터 사은님께서 나에게 "나를 믿고 공부든 성불이든 열심히 한번 해 봐라" 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때 뭔지 모를 가슴 뭉클함을 느꼈고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운동, 모임 등을 줄여가면서 열심히 공부했다. 원불교 교법을 조금씩 이해하고 깨달으며 또 실천해 가면서 내 자신이 풍요롭게 변해가는 것을 느꼈다.

그때부터 조금씩 마음이 움직였다. 아! 나는 모든 게 부족하구나! 모든 게 다 내 잘못 이구나! 모든 게 다 내 탓이구나! 돌리고 돌리자! 모든 걸 참회하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마음이 편안해지고, 모든 것이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어머니와 관계도 "내 잘못이 더 많았구나!!" 참회하며 하나씩 하나씩 돌려졌다.

요즈음은 절 수행으로 유무념공부를 하고 있다. 유성교당에서는 3월부터 매주 수요일에 절수행을 하는데 108배 절수행이 힘은 들지만 수요일 하루가 아니라 매일 집에서 빠지지 않고 하고 있다. 1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한다. 절 수행을 하면 참회도 되고 잡념도 없어지고 동시에 운동도 되니 아주 좋다.

앞으로 조금 더 진급하기 위해서는 어느 때든지 마음공부를 놓지 않고 열심히 해야겠다. 또 어떤 행동을 하기 전에 좋은 마음먹기에 노력할 것이다. 이것을 이번 기회에 '나의 유무념 공부'로 정하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아직도 좋지 않은 경계가 닥치면, 치솟는 화를 바로 내리지는 못하지만 늘 마음속으로 '수행을 잘 해서 죽기 전까지는 무념의 상태에서도 모든 일이 잘 되어지는 경지까지 가야지'하는 서원을 세웠다.

수많은 경계속에서도 내가 공부하는 사람으로 변화하게 된 것은 나를 이 회상으로 이끌기 위해 많은 기도를 했던 어머니의 공덕이 가장 컸다는 걸 늦게나마 깨닫게 되었다. 어머니께 마음깊이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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