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는 민족혼을 깨우는 영물

▲ 성인 키와 비슷한 크기의 '대호 병풍'호랑이와 윤 관장이 묘하게 어울린다.
종남산은 해발 663m로 밀양의 남산으로 불린다. 밀양 8경 중 하나로 손꼽히는 종남산은 영남루와 더불어 영원히 지지 않는 망향의 표상이다.

여름이면 각종 야생화 꽃길이 펼쳐져 있다. 그 자락의 끝을 고즈넉하게 따라가면 밀양시 부북면 후사포리에 위치한 전국 유일한 호랑이미술관을 만날 수 있다.

미술관으로 들어가는 외길을 따라 올라가니 오른편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소나무가 빼곡하게 심어져 있다. 한국인의 의식 깊숙하게 자리 잡고 있는 호랑이와 소나무가 묘하게 어울린다.

호랑이 미술관 입구에 들어서자 윤성지 (70) 관장이 미소를 띠며 반가움을 표했다. 그의 얼굴 형상은 호상(虎相)이었다. '작품은 작가를 닮는다'라는 말이 있지만, 작가가 작품 속 주인공을 닮아가는 형상이다. 미술관 내부에는 이미 소개된 것보다 많은 천여 점의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호랑이 미술관답게 내부는 호랑이 그림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수묵화, 유화, 서각 등 표현 재료도 다양했다. 작품 한 점씩 소개를 받으면서 든 의문은 '왜 호랑이 인가?'였다.

그는 "사람들에게는 '메시아 콤플렉스'가 있는 것 같다. 구체적인 뜻은 해석에 따라 다르다. '자기 스스로 신이 되고. 왕이 되고 싶어 하는 의지'가 있는 것 같다. 나도 왕이되고 싶은 것이다"며 "인생은 내가 몸담고 있는 곳에서 왕이 되려는 포부와 희망을 갖고 살아야 한다. 특별한 목표 없이 삶을 살면 안된다. 이런 생각으로 호랑이를 그렸다. 이 분야에서 최고가 돼야한다는 각오로 그림을 그려왔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1968년 우연히 찾은 서울 삼각산 도선사에서 산신을 모신 그림을 보게 된다. 이에 영감을 얻은 그는 40여 년을 넘게 호랑이 그림만을 그리게 됐다. 스승에게 직접 사사 도 받지 않고 독학의 외길을 걸었다. 지금도 그 노력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는 "시간이 나는 대로 반야심경, 금강경, 법성게, 심우송 등 불경을 연구하고 공부했다. 자기 연마를 위한 것이다. 그림은 기술이 아닌 정신과 혼이 담겨 있어야 한다"며 "지금도 40여 년 전 맨 처음 그린 그림이 제일 좋다. 하고자 했던 혼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림을 보면 손끝에서 나온 것인가. 정신에서 나온 것인가. 혼에서 나온 것인가를 알게 된다. 표가 난다. 손끝에서 나온 그림은 절대 감동을 주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작가의 혼이 들어가 있는가에 따라 보는 사람에 따라 감동을 줄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40여 년 동안 작품 활동을 통해 소위 '제도권'이라 일컫는 공모전, 단체전 등에 출품을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88올림픽기념관에 '맹호기상도(猛虎氣象圖)'가 전시되고 있을 정도로 작품에 대한 소문은 퍼졌고 제자를 청하는 이들도 찾아왔다.

그는 "가끔 소문을 듣고 제자들이 찾아오기도 한다. 그러면 스스로 터득하라고 돌려보낸다. 스승 없이 터득한 기술이기 때문에 내 기술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수할 수 있는 방법을 못 찾았다"며 "한편으로 스스로 해야 자기 것이 된다. 남에게 도움을 청해 쉽게 이루려 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자기 것이 나온다. 제자도 스승 밑에서 10년이면 스승 것만 나오지 그 틀을 못 벗어난다"고 일침했다.

제자로 스승에게 배움을 청하면 자신의 작품 세계로 시작하지만 스승의 틀을 못 벗어난다는 것이다. 피나는 노력의 세월 속에 자기 재주가 여문다는 철학이다.

잠시 후 그는 최근 작업한 작품을 보여줬다. 캔버스 틀 작업도 없이 벽에 접착 테이프로 붙어져 있었다. 흰 눈밭에 백호 한 마리가 하늘을 바라보며 울부짖고 있는 모습이다. 파란 눈이 더욱 빛이 났다. 그림의 제목은'무제'란다.
▲ 최근 작업한 작품 '무제', 윤 관장은 청아한 마음을 모으고 붓을 잡았다고 자부했다.

그는 "이 작품에는 청아함을 담고 있다. 옛 말씀에 '속기(욕심)를 제거해야 한다'고 했다. 인간은 속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속기를 제거하기 쉽지 않다. 선이 없고 색이 없는 경지이다"며 "김홍도의 그림을 보면 '대상은 있는 데 배경이 없고, 선이 있는데 색이 없다' 이것이 우리 그림이다. 서툰 사람들이 그린 그림은 선이 많고 색이 많다. 욕심을 못 버렸기 때문이다. 자기 속에 맑은 혼이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 기술만 가지고 청아한 작품은 불가능하다"고 전했다. 그는 "작품에 제목을 정하지 않은 것도 비슷한 이유이다. 제목에 보는 사람이 붙들려 버린다. '맹호', '백호' 등 이름을 붙이면 보는 사람의 사고를 붙잡아 버린다"고 거듭 말했다.

그에게 호랑이와 호랑이를 그리는 작품 활동은 그 자체가 의미가 있었다. 그러는 사이 호랑이 그림으로는 그를 따라올 사람이 많지 않게 됐다. 혼을 담고, 속기를 제거하며 스스로 피나는 노력의 시간이었다.

그는 "호랑이에는 우리민족의 기상과 혼이 담겨 있다. 우리나라의 지형도 호랑이다. 우리는 백수의 왕으로 호랑이의 혼을 이해하고, 기상을 자기 것으로 삼을 때 우리 민족혼이 살아남을 수 있다"며 "이 생각으로 호랑이를 그려왔다. 항상 그림을 그리며 '짐승을 그린다'가 아닌 '또 하나의 우리 민족'을 그린다고 생각하며 작업한다. 내 그림이 어떤 곳에서 어떤 사람에게든 민족혼을 깨울 수 있으면 좋겠다"가 소망을 말했다.

예부터 우리 민족은 호랑이를 좋아하고 무서워했지만, 우러러봤다. 이는 '호랑이의 나라'를 자처하는 모습에서 볼 수 있다.
▲ 대문을 조심스럽게 여니 호랑이가 잠이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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