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 휘어잡는 표현력과 흡입력

올해 5회째 열린 영산선학대학교 음악회를 본 사람이라면, 숨막힐 듯 객석을 휘어잡는 피아노 독주를 기억할 것이다. 표현력과 흡인력이 뛰어나 라흐마니노프 곡에 특히 잘 맞는 김도영 교수. 국립 경상대, 국민대, 콘서바토리에서 강의하고 있는 그는 일찌감치 '악바리 연습'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그는 "공부와 연주만큼은 완벽을 추구한다. 악기 중에 가장 연습량이 많이 필요한 게 피아노다. 하지만 연습만이 아닌 나만의 개성을 찾는 과정을 겪어야 손가락에 영혼을 담는 특별한 피아니스트가 된다"고 말했다.

한번 들으면 좀처럼 잊을 수 없다는 그의 연주. 그의 음악 인생은 스물다섯에 떠난 미국유학시절이 정점이었다. 그런데 피아노를 전공했다니 집안이 부유하지 않을까. 그는 단호히 고개를 젓는다. 클래식을 좋아했던 여고시절 '피아노를 전공하겠다'고 했을 때 경제적인 이유로 반대가 컸던 것. 더구나 고등학교 2학년에 뒤늦게 시작했던 차였다. 아버지 김연성 교무(퇴임)와 어머니 정현주 교도(정토회교당)는 공부 잘하는 막냇딸이 내심 약대에 진학하길 바랐다. 그러나 '피아노 전공만 할 수 있으면 서울로 안 가도 좋다'는 딸의 서원을 깨닫고 끝도 없이 먼 음악인의 길을 지지해줬다.

그는 "전액장학금으로 원광대학교에 들어갔다. 학교문 열리면 들어갔다가 문 닫을 때 나오는 생활을 계속했다. 한의대 오케스트라 등 학교 음악활동에 다 참여했는데, 그런데도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과정을 설명했다.

그의 음악적인 갈망을 알아본 은사들이 서울과 외국에서 연주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줬고, 눈과 손은 이미 더 큰 세상을 향하고 있었다. 대학시절부터 꿈꿨던 미국유학, 그녀는 이론과 실기 성적을 갖춰 정부장학금을 받고 떠났다.

그는 "레슨이나 연주 아르바이트하는 거야 남들 다 하는 일이다. 그런데 나는 참 복이 많았다. 어느 무대에서 연주하는 걸 본 현지 미망인이 저렴하게 홈스테이를 하게 해줬다. 젊은 음악인의 전 세계 연주활동을 후원하는 프로그램에도 뽑혀 큰 무대도 많이 섰다"고 덧붙였다.

이게 다 부모의 은덕이라고 얘기하는 김도영 교수, '밥먹고 잠자는 시간 빼고는 오로지 연습'이던 학교 생활은 그에게 행복 그 자체였다. 지금도 매일 1억짜리 피아노로 연습했었던 연습실-강의실-집 생활이 가장 그립다는 그다. 스물다섯에 미국땅을 처음 밟던 그 마음 그대로 흐트러짐 없이 지낸 유학생활. 그러다보니 이제야 결혼 생각이 든다는 속내를 밝혔다.

University of North Texas 에서 학사과정부터 다시 시작해 석박사를 마치고 나니, 그에게 서서히 외로움과 지루함이 밀려왔다. 마침 변호사를 잘못 만나 영주권 문제가 꼬여버린 상황. 그녀는 2010년 7월 예술의 전당 귀국 독주회로 고국에 돌아왔다. 미국행 비행기를 탄지 14년만의 귀향이었다.

그는 "늘 늦게 시작했다는 핸디캡으로 이를 악물었는데, 미국 유학을 떠나서야 내게 끼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됐다. 그런데 힘들기보다는 마음을 돌리게 됐다. 클래식을 어떻게 대중화하고, 훗날 피아노를 어떻게 쉽고 재밌게 가르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지금도 현장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선배 음악인, 교수로서의 나를 채찍질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후진을 양성하는 한편, 국내 연주 활동의 지평도 넓히려는 김도영 교수. 교당이나 교단 행사를 통해 교도들과 만나는 바람도 크다. '연습하기 딱 좋은 날씨'라는 장마철, 그가 원불교신문 독자들을 위해 추천한 곡은 스트라우스의 'Die Fledermaus(오페라 '박쥐')' Op.56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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