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일깨워 주신 스승

▲ 장덕원 교무/이리자선원
나는 어린 시절 대산종사와 같은 마음의 스승을 만나게 된 것을 큰 행운으로 여기고 있다. 영산에서 태어나면서부터 직접 법명을 친필로 써주시고 가셨다는 말을 듣고 그때부터 인연을 걸어 주셨음을 알게 됐다. 중학교 2학년 때 대산종사께서 영산을 방문하셨다.

그때 영산 대각전에 학생들을 다 모아놓고 절을 받으시고 구간도실 상량문에 대한 법설을 해주셨다. 그때 '왜 하필 구간도실 상량문을 설해 주셨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범산 이공전 종사에게 해석해 주라고 하시면서 "이 가운데 알아들을 놈도 있고 먼 훗날에 '아하' 하고 깨칠 놈도 있을 테니" 하시면서 대종사는 천지를 끌어다가 수 놓아 인간에게 맞는 법을 만드신 성자요, 새시대, 새 세상의 부처이심을 깨우쳐 주셨다. 그날 "각자 소원이 있으면 다 써서 내라" 라고 하셨는데 나는 그 자리에서 "전무출신을 하겠습니다"고 서원을 올렸다.

간사 시절 대산종사 방에 불을 지피는 일을 맡기도 했다. 그때 손가락을 다쳐서 "이렇게 돼도 전무출신 할 수 있겠습니까?"하고 물었더니 대산종사는 "걱정마라. 다섯 손가락 없이도 할 수 있다. 네 삼세 업장이 다 녹아났다"고 하시며 다시 살려주셨다.

대산종사는 내가 선가의 경전을 접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이미 꿰뚫어보시고 삼동원에 방 하나 정해 주시면서 밤마다 백산 이용정 교무를 모시고 〈옥추경〉, 〈음부경〉을 공부할 수 있게 보살펴주셨다.

"어떻게 해야 큰 깨달음을 얻을까요?"라는 당돌한 질문에 대산종사는 "겨울 야밤에 강물 위로 기러기가 날아 가니라. 끼룩 해봐라. 너도 끼룩 해봐라"고 화두를 주셨다. "아는 것 말 안하기가 죽기보다 힘들다. 육조 스님은 16년간 스승의 인가를 받고도 보림 했다"며 나의 공부심도 일깨웠다. 일생과 영생의 스승으로 이런 분을 만난 것은 나에게 큰 행운이고 복이라고 생각된다.

대산종사는 내 인생에 세 번 생사의 고비를 넘겨주신 스승이시다. 훈련교무시절 장티푸스에 걸려 잠시 쉬어야 했다. 완도 소남훈련원에 계시는 대산종사를 찾아뵈었더니 "너 올 줄 알았다"며 "완도에 있으면서 저녁은 여기 와서 먹도록 해라"고 하셨다. 그리고는 당시 대산종사를 모시고 계신 관타원 김관현 교무에게 병을 빨리 회복할 수 있도록 저녁마다 특식을 해주게 하는 자비를 베풀어 주셨다.

두 번째는 재무부 근무 당시 크게 교통사고가 났다. 거의 의식이 오락가락 할 때 원광대병원에 입원해 인공호흡기를 하고 있을 때이다. 꿈결에 대산종사가 나타나셔서 "나를 따라오너라"고 하시면서 엄청난 큰 서재로 안내했다. 가는 도중에 신기함이 있었다. 찢어진 우산을 받고 가는데 비를 맞지 않았고 진흙탕을 지나는데 발에 흙이 묻지 않았다. 대산종사는 "여기 있다"며 나에게 무엇인가를 주셨다. 받아보니 '너 나 활생(活生)'이란 네자가 적혀 있었다. 그걸 받고 깨어났다. 다시 태어난 것이다.

그리고 전세를 살다가 11월 추운 날 주인이 집을 비워달라고 했다. 너무도 막막해 총부 대종사성탑에서 기도를 하는데 대산종사께서 나타나시어 빈 봉투를 주셨다. 너무나 역력하고 신기하여 몇 군데 부동산을 갔더니 급매물이 나왔다. 내 생에 참으로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법신이 아니 계신 곳이 어디일까? 아니 보고 계신 곳이 어디일까? 항상 옆에 계심이 바로 법신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항상 호렴하고 도솔천이 멀리 있지 않고 바로 내 옆에, 내 원을 발하는 곳이 부처님께서 머무는 도솔천이란 것을 깨달았다.

내 영생의 스승님을 만난 인연을 홍은으로 여기고 이날까지 어디서든 무슨 일을 하든 하루하루가 보은의 나날이 되기를 다짐하면서 영생을 따라 다닐 것이다. 이 교단이 있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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