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휴식에는 용기와 훈련이 필요하다
휴가나 휴식의 의미
다시 생각해 봐야할 시기
* 국민여가활동조사, 문화체육관광부, 2010년

▲ 낮잠(밀레, 1866년)
▲ 정오의 휴식(빈센트 반 고흐, 1890년)
바야흐로 휴가철이 절정을 이루고 있다. 오랜만에 가족과 함께 떠나는 직장인들, 바다로, 산으로 떠나는 연인과 친구. 공항은 해외여행자로 만원을 이루고, 휴가철 고속도로는 그야말로 교통체증을 넘어 휴가 기간 동안의 즐거움마저 다 가져가버리는 듯하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는 광고 카피처럼 모두가 어딘가로 떠나고 있다.

기록적으로 오래 가는 장마와 폭염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시원한 곳으로 떠나는 우리 모두에게 누가 뭐라고 할 수 있겠는가? 사실 원고를 쓰고 있는 필자도 남들처럼 편히 4박5일의 휴가를 마치고 난 시점이다.

그런데 문득 드는 생각. 왜 우리는 특정 시간을 정해 미친 듯이 휴가를 보내야 하는가? 그것도 길어야 일주일이 넘지 않는 시간 속에서….

휴가나 휴식에 대해 처음 생각을 해 보게 된 계기는 1990년대를 캐나다에서 보내고 있을 즈음이다. 그 곳에서 공부를 마치고 일을 하게 된 첫 번째 직장의 첫 휴가는 약 2주일이 넘는 기간이었다.

나로서는 외국기관에서 일을 하게 된 터라 2주일이라는 휴가를 잘 보내고 싶었지만 그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캐나다인처럼 일 년 내내 휴가를 위해 돈을 모아 휴양지로 떠나는 것도 아니었고, 늘 공부와 일을 하는 습성이 몸에 밴 나로서는 1주일이 지나고 나서야 다시 직장에 돌아가고 싶다고 느낄 정도였다.

딱히 뭘 해야 할 지 잘 모르겠고, 차라리 주어지는 일이 있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았다. 휴가가 끝나 직장에 돌아가 보니 가장 보람찬 휴가를 보낸 사람은 직장에서 사람을 맞이하는 일을 하는 60세가 다 돼는 할머니 비서(receptionist)였다.

그녀는 남자친구와 크루즈를 타고 알래스카 구경을 다녀온 후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다시 일에 전념하는 것이었다.

복지가 잘 되어 있는 캐나다에서 노후는 국가가 보장해 주기 때문에 건강하게 일하다 노년기를 맞이하면 되는 비서의 눈에는 열심히 일만 하던 당시의 한국인이 이상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이때 느낀 것은 나를 포함한 한국인들에게는 휴식이나 휴가는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체계적인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그 할머니 비서의 휴식은 일과 분리된 것이었고, 그런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비용이 드는 것이었지만 최소한 주어진 시간에 여유를 부릴 수 있었으니까.

과거와 달리 현대 자본주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휴식은 두 가지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첫째, 가정에서 수공업을 하던 옛날 사람과 달리 공장이 들어서며 일과 가정의 공간적 분리가 일어난 것이다. 휴식은 일터가 아닌 가정이나 친구들과 이루어지는 행위가 된 것이다. 둘째,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노동과 여가가 분리되었다는 점이다. 산업혁명을 거치며 노동은 기계에 맞춰졌고, 따라서 노동하는 시간과 노동하지 않는 시간이 뚜렷이 구분되었다. 일하다 쉬거나 다른 활동이 함께 이루어졌던, 공동체의 활동과 일이 어우러졌던 그런 시간혼합은 사라지고, 노동시간과 여가시간의 구분이라는 획기적인 결과를 낳았다.

여가는 노동에 대한 보상으로 주어졌고, 여가는 다시 노동을 하기 위한 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한 중요 기제로 작동했으며, 노동의 대가로 받은 임금은 여가를 즐기기 위한 비용으로 지출되기 시작했다. 현재도 아시아에 진출한 한국기업들이 "월급을 받으면 돈 다 쓸 때까지 사라졌다, 돈 떨어지면 다시 돌아 와 일을 해서 어려움이 많다"고 고충을 털어 놓기도 하는데 이들 국가에서는 아직 노동과 여가가 효율적으로 분리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서양의 노동사를 보면 노동과 여가의 분리를 통해 작업시간의 엄수, 작업 중 금주, 작업 중 최소한의 효율적 휴식이 강조되었다. 작업장에서는 '합리적이고 건전하며 생산적'인 행위와 놀이가 적극적으로 권장 또는 강요됐다.

산업혁명이 시작될 때만 했던 관행이었던 '성 월요일(St. Monday, 토요일 오후부터의 과음으로 인해 월요일에 쉬고 화요일에도 거의 일을 하지 않다가, 수요일부터 일하기 시작하여 목요일과 금요일에는 그 주의 목표량 달성을 위해 정신이 나간 것처럼 격렬하게 일하는 습관의 관행)'은 전근대적인 노동습관의 대표적인 사례였다. 이러한 노동관행을 유지하고자 하는 당시 숙련공들의 저항은 대단히 강하였기 때문에 산업자본가들도 19세기 초까지는 이에 대한 별다른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부를 축적하고, 안정된 생활을 원하는 노동자의 증가로 '성 월요일'은 '속박의 날'로 불리며 토요일 반휴일제의 완전한 정착과 함께 몰락한 역사적 경험이 있다.
현재 한국사회는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 기록을 유지하며 여가시간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10 국민여가활동조사〉에 따르면 응답자는 현재 여가시간과 여가비용이 각각 50.3%, 66.0%가 '부족하다'고 밝혔다. 여가활동 유형은 TV시청·목욕 등의 '휴식 활동'이 36.2%로 가장 많았고 이어 쇼핑·외식·인터넷 등의 '취미 및 오락 활동'이 25.4%, 종교·봉사 등의 사회 및 기타활동, 스포츠 참여 활동(7.3%), 문화예술 관람 활동(6.0%,), 관광활동(4.7%), 스포츠 관람 활동(2.2%) 등이었다. 대부분의 여가활동이 TV 시청이나 오락활동에 소요되고 있다. 한편 주 5일제의 도입으로 여가시간의 활용과 관리가 양적 차원에서 질적 차원으로 바뀌고 있다. 주 5일제가 정착된 지금 사람들은 휴일(이틀)을 활용하여 자기계발, 재창조, 이중직업, 취미활동 등을 하며 '가만히' 있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진정한 의미의 휴식이란 무엇일까?

울리히 슈나벨은 〈휴식〉에서 "시간에 쫓기며 허덕이는 일상의 느낌은 상당 부분 끊임없이 더 나아지기를 원하는 갈망과 이미 주어진 것에 만족할 줄 모르는 무능에서 비롯된다. (중략) 선택 가능한 것들의 가짓수를 줄임으로써 어떤 만남이나 활동의 순간을 오롯이 완전하게 맛보아야 한다"고 했다.

즉 나와 시간이 일체감을 가질 수 있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 충분한 시간은 필요조건이지만, 소비와 욕망 덩어리로 뭉친 우리의 생각 바꾸기, 정보와 기술(특히 스마트폰)의 홍수에서 벗어나기, 휴식시간에도 계획을 짜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기 등을 실천하다 보면 순간의 시간과 내가 일체감을 느낄 수 있는 휴식에 도달하지 않을까?

노동과 휴식의 분리를 지양하고 진정한 휴식을 취하는 길은 주류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길과 일맥상통할 것이다.
▲ 정진주/사회건강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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