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세상을 사는 동안 어느 분야에서든 자신이 업적을 쌓은 후에 돌아오는 대우나 공에 대해 사양하는 마음을 내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임을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사양지심 예지단야 (辭讓之心 禮之端也)'라 표현하며, 맹자는 '사양하는 마음은 예(禮)의 시작이라고 했는데, 자신의 업적 앞에서는 도무지 그 예를 지키기가 어렵다'고 전한다.

인도품 58장에서 주(周)의 무왕(武王)이 자기의 군주(君主)인 주(紂)를 치고 천하를 평정한 후에 스스로 천자가 된 데 대해 대종사는 '나는 무왕의 경우를 당하면 백성의 원을 좇아 주를 치는 일은 부득이 행하려니와 그 위는 다른 어진 이에게 사양하겠노라'하며 진정한 양보를 깨우쳐 줬다.

무왕이 주를 치고 왕위까지 사양하는 심법을 지녔다면 어땠을까?

우리나라 역사에서 수양대군이 정치하다가 단종이 성장해 잘할 수 있게 될 때 양보했더라면 수양대군은 존경의 대상이 됐을 것이다.

도산 안창호는 일을 해놓고 그 위를 이승만 박사에게 양보했으므로 조용했다고 한다.

인도품 58장은 미래 정치가들의 지향할 바를 밝혀 놓으신 법문이면서 정의사회 구현에 큰 밑거름이 될 법문이다.

우리 교단의 선진들은 대종사의 '법은 일반 동지의 앞에 서서 세우고, 공은 일반 동지의 뒤에 서서 양보하는 알뜰한 일꾼들이 많이 나오게 하라'는 가르침을 직접 받았다.

양보하면 화합이 되고 화합은 곧 우리 교단의 상징이 되는 동시에 국가와 세계의 표준이 되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다.

일하고도 당대에 대우를 다 받지 않은 분들에게 진리는 어떤 대우를 했을까?

한 예로 정산종사는 '한울안 한이치'에서 공자와 요순임금을 말씀했다. 공자는 도덕 사업을 많이 하고도 그 당대에 대우를 다 받지 않고 아꼈기 때문에 그 여덕이 오늘까지 미쳐서 후인이 사당에 제사를 지내지만, 요순은 성군으로 당대에 온갖 부귀와 영화를 누렸기 때문에 오늘날 후의로만 받든다고 했다.

양보하고 아끼는 것은 마치 물이 아래로 흐르지만 대해 장강을 이루듯 일만 복을 한데 모아 영원토록 보존하는 길이며, 이길 능력이 있으면서도 져주는 것은 대인이라고 했다.

58장 끝에 더해 '어진 이가 없거나 그 위를 사양해도 천하 사람들이 듣지 아니할 때에는 또한 어찌할 수 없다'는 원만한 말씀을 해줬다.

일은 먼저 하고 볼 일이며 공은 끝까지 사양할 일이고, 대중에 밀려 어찌 할 수 없이 하게 되면 분수에 넘치는 바 없이 그리고 흔적 없이 할 일이다.

<담양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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