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교당 오경원 교도
24년간 〈원불교전서〉 14번 사경

화순교당 오경원 교도는 특별하다. 친정 식구들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기 위해 선택한 결혼, 이별, 그리고 새로운 출발. 그 사이에 세 딸과 아들 하나를 둔 삶에서 느껴지는 아픔. 평범하지 않았던 삶에 또 하나의 특별함이 더해졌다.

그는 "45세 되던 해 어느 날이었다. 그 날은 2년 동안 정성들여 원불교를 권하던 박성관 교도님을 따라 교당에 처음 가서 학처럼 아름답고 고고한 교무님을 보았다. 그 순간 긴장감이 풀리며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렇게 원기72년 입교를 하고 교당에 다니던 그는 또 한 번 특별한 날을 맞이하게 됐다. 바로 사경을 시작하던 날이었다. 그 때는 몰랐다. 사경이 폭풍 전야 같았던 고달픈 삶을 평정 시켜 줄 끈이 되리라는 것을.

그는 "처음에는 교무님께서 하라고 하니까 시작했다. 교전을 쓰면서 생긴 주인 정신으로 살다보니 교당에서, 교무님께서, 봉공회에서 어디서든 나를 불렀다. 그러면 언제든지 달려 가다보니 광주교당 여성회가 발족될때 여성회장을 하게 됐다. 화순교당에서 자연 염색을 배우러 회원들과 갔다가 몸도 가녀린 교무님께서 고생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염색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교당 주변을 둘러 싼 잡초가 눈에 들어 와 잡초를 뽑았다. 그 후 틈나는대로 화순교당 목요법회도 보고 교당 일을 돕다가 원기91년 아예 화순으로 이사를 가서 최희경 교무님을 모시고 사는 교도가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던 그는 얼마 전 화순교당에서 처음으로 법호수여식을 하던 날 '법호인으로 제대로 살고 있는가?' 라는 의구심이 들어 다생 겁래에 알고도 짓고 모르고도 지은 죄업을 소멸하고 싶어 참회문을 쓰기 시작했다. 1000번을 완성하던 날 모든 업장의 찌꺼기가 소멸 됐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그는 "그날 이후로 정말로 진심으로 모든 사람이 모든 것이 다 부처로 보였다. 지금은 봉공회장을 맡아 하는데, 교도님들에게 집에서 버리는 모든 것을 가지고 오라고 부탁하여 모여진 재활용품이 한 트럭 정도 되면 판다. 작게는 40,000원에서 100,000원 정도 된다. 그리고 내가 사는 아파트 청소 미화원 반장을 맡아 여섯 분과 함께 청소를 한다. 그곳에 버려지는 쓰레기도 분류하여 판매한 금액을 원100성업회 성금으로 내고 있다"고 강조했다.

쓰레기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은 그를 보고 사람들은 냄새나는 쓰레기를 만지며 고생한다 하기도 하고, 냄새 난다고 멀리하기도 하지만, 쓰레기마저 부처로 보였다. 생함도 멸함에도 냄새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로인해 쓰레기에서 나오는 냄새도 자연의 향기요 생명의 향기로 느껴질 뿐이었다.

그는 지금도 교전을 하루에 평균 다섯 장 쯤 쓴다. 〈대종경〉을 쓸때면 '대종사님 가르침대로 헛되지 않게 실천하는 교도가 되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를 올린 후 사경한다.

그는 "밥은 한 끼 안 먹어도 배고프지 않는데 교전을 안 쓰면 허기가 진다"고 말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24년 동안 50권의 노트에 전서를 14번 쓰고 참회문을 1000번 쓰던 그는 자신을 힘들게 한 모든 사람들이 나를 이 자리에 있게 만든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모두 다 고마운 인연이요, 생불님이라는 것이다.

그는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올 해 부임하신 교무님 모시고 교도들과 열심히 봉공회 활동을 하며 천일기도를 올리고 사경을 꾸준히 해서 다 함께 행복하게 원100성업을 맞이하는 것이다. 자식들에 대한 바람은 시집가서 교당과 어쩔 수 없이 멀어진 딸들이 다시 교당을 다니게 되고 아들이 원불교 교도와 결혼하여 일원 가족을 이뤘으면 한다. 교도님에게는 100주년을 향한 1000일 기도는 부처가 되는 가장 빠른 길로 인도해 주는 유일한 방법임을 알게하고 함께 동참하여 힘을 합하자"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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