風吹飛雨過城頭  바람이 불고 비 뿌리는 성문 옆을 지나치는데

瘴氣薰陰百尺樓  습하고 역한 공기가 높은 누각에 가득 차 있다

滄海怒濤來薄幕  너른 바다 성난 파도에 저녁 어스름이 내리고

碧山愁色帶淸秋  푸른 산 슬픈 기운이 맑은 가을 둘러싸는구나

歸心厭見王孫草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왕손의 풀을 또 보노니

客夢頻驚帝子洲  나그네 꿈속에는 임금의 도시가 어른거리누나

故國存亡消息斷  고국의 존망이 어떠한지 소식 끊긴지 오래고

烟波江上臥孤舟  안개 자욱한 강 위에 외딴 배만 누워 있구나


'바람 불고 비 뿌리니(風吹飛雨)' - 광해군(1575~1641 조선 15대 임금)

광해군의 이름은 혼(琿), 선조의 후궁 공빈의 둘째 아들로서 임진왜란 때 의병 모집과 군량미 수집 등 왕의 분신으로 활약하였다. 왕위에 오른 뒤엔 민생의 구제, 궁궐의 보수, 서적편찬 등 전란으로 피폐한 조선을 수습하면서 몰락하는 명나라와 신흥세력 청나라 사이에서 자주적이고 실리적인 외교를 펼치다가 인조반정으로 폐위되었다.

이 시는 강화도 교동에 유배되었던 광해군이 병자호란이 터지자 제주도로 귀양 가면서 지은 시로 〈광해군일기〉에 전해 온다. 음습한 분위기, 거친 세상, 한양에 대한 그리움, 전란에 대한 근심이 펼쳐진 이 시 결구의 나룻배는 폐위된 군왕의 외로움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광해군이 죽었다는 소식이 제주에서 10일 만에 한양에 전해오자 '이 시를 듣는 자마다 비감(悲感)에 젖었다'고 한다. 그처럼 이 시는 먼 제주도로 귀양 가서 죽은 왕의 참담함이 느껴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지주가 세금을 내야 한다는 혁신적인 정책을 추진하다가 당쟁으로 희생된 광해군은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의 모친 무덤 곁에 묻혔다. 그의 유언이었다는데, 세 살 때 죽은 어머니에 대한 콤플렉스가 느껴져 안쓰럽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