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전을 위시한 수요조절
궁극적인 해법

▲ 제10회 에너지의 날을 맞아 '플러그 뽑기'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매년 4월22일은 '지구의 날'이고 넉 달 뒤인 8월22일은 '에너지의 날'이다. 지구의 날은 미국 뉴욕에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지구환경을 지키기 위해 행동에 나선 날로 올해로 43회 기념일을 치렀고 에너지의 날은 에너지시민연대라는 시민단체가 제안해 지난 2004년부터 시민들의 에너지절약 행동을 조직하면서 기념해온 날이다.

2003년 8월22일 우리나라에 전봇대가 선 이래 가장 많은 전력 소비량인 4500만kW 정도를 기록했다.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예비율도 당연히 최악으로 떨어졌고 전력소비를 잘 조절하지 못한다면 대정전을 비롯한 사회적 불행이 현실화될 수도 있다는 자각을 시민들이 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시민단체인 에너지시민연대가 그날을 에너지의 날로 기념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 자각을 시민 행동으로 확산하고 더욱 근본적인 에너지 생산과 소비의 구조를 바로잡아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자는 목적 때문이다. 에너지 소비가 늘면, 공급도 늘리면 된다고 해법을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건 답일 수 없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기후변화와 화석연료 고갈이 그 이유다.

인류가 기후변화의 위기에 공감해 세계 각국 정상들이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 모여 기후변화협약을 통해 지구를 기후변화에서 지켜내자고 결의한 때는 지금부터 21년 전인 1992년이었다. 그 사이 기후변화는 점점 심각해져 올해에는 기후변화로 인한 파국을 부를 수 있는 이산화탄소 평균농도 400ppm 이상이 관측되기 시작했다.

기후변화가 그냥 온 게 아니고 산업, 상업, 생활 등 모든 인간의 활동에서 배출된 이산화탄소를 비롯한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아진 탓에 생긴 것이다. 가장 많은 온실가스 배출은 석탄, 석유 등 온실가스를 많이 내뿜는 화석연료 사용에서 나온다. 그리고 가장 중대한 온실가스 배출원은 바로 화석연료를 태워 에너지를 얻는 발전부문이다. 과다한 전력소비가 기후변화를 촉진하는 최대 주범의 하나이다. 게다가 화석연료는 이미 생산정점을 지나 미래에는 고갈될 부존자원이다.

전력 소비 증가를 전력 공급 증대로 대응하는 것은 그래서 지속 가능하지 않은 정책이다.

게다가 석탄이나 석유를 사용해 전기를 만드는 화력발전은 에너지 손실이 매우 크다. 화석연료 같은 1차 에너지가 전기로 변환되는 과정에서 발생 되는 에너지 손실은 60%나 된다.

100의 1차 에너지가 40의 전기로 바뀐다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원자력발전을 늘려 전력 소비 증대에 대응하는 정책을 오랫동안 유지했기 때문에 두 가지 위험에 직면하게 됐다.
▲ 제5회 에너지의날 기념 사전소등행사.

▲ 에너지를 절약하는 다양한 방법 및 캠페인.
전력공급과 수요의 탄력적 조절을 구조적으로 어렵게 만든다는 게 그 첫 번째 문제다.

우리나라 전력은 화력발전과 원자력발전이 대부분을 담당한다. 그 중 원자력 발전은 발전기를 끄고 켜는 게 쉽지 않은 특성을 가진다. 핵분열을 시작하고 핵분열을 막는 과정에서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이다. 그래서 원자력발전은 가동을 멈추기가 쉽지 않다. 멈추면 손해가 장기간 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력 소비가 많은 피크타임이나 전력 소비가 낮은 한 밤이나 똑같이 24시간 발전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소비가 늘 때마다 원전을 지어 대응하다보니 전력소비가 많은 피크타임 때는 전력 소비량 맞추기 좋았지만 밤에는 전기가 남아돌았다.

결국 프리미엄 에너지인 전기가 등유 같은 1차 에너지보다 싼 기형적인 가격구조가 만들어졌다. 비싼 연료 태워 싼 전기를 만드는 상태가 된 것이다. 너도나도 싼 전기를 이용해 냉난방을 하고 갖가지 전기를 사용하는 생활가전제품, 산업시설이 늘어나게 되자 전기 부족사태가 오게 됐다.

그러다가 2000년대 중반 이후 고유가시대가 되자 원자력 외에도 화력발전량이 많은 우리나라 전력생산구조에서 원가 압박이 심해졌다. 전력을 생산할수록 적자가 생기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우리가 최근 경험하는 전기부족 사태의 원인이 이것이다.

전기가 부족해졌으니 원전을 더 짓자는 게 현재까지 우리나라 정책이다. 오늘날 전력의 26%를 원전이 담당한다. 정부 계획은 앞으로 2030년까지 원전을 더 많이 지어 원전이 전력을 공급하도록 '핵전기'를 늘린다는 것이다.

두 번째 원전의 문제는 그래서 더욱 커지게 된다. 그 두 번째 원전의 문제는 바로 후쿠시미와 체르노빌에서 알려준 '핵의 위험성'이다.

원전은 핵이 분열할 때 나오는 열을 이용해 발전하는 시설이다. 그런데 핵분열시 나오는 방사성물질은 생체조직을 투과해 지나며 생명을 죽이는 힘을 가진다. 그래서 원전은 여러 겹의 안전장치를 가지고 있다. 10만년에 한 번 사고가 날 확률이라고 원전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나 정부는 국민들을 안심시키지만, 실제 사고율은 그와 다르다.

1956년 세계 최초로 영국에서 원전의 상업발전이 시작된 이래 오늘날 운전 중인 세계 원전의 수는 434기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에서 최고위험등급인 7등급의 사고가 발생했고 구 소련에서 6단계 사고도 있었으며 미국 스리마일 원전에서 5단계 사고도 발생했다. 5단계 이상은 원전 밖으로 방사능이 오염돼 인명 피해를 부르는 수준의 큰 사고들을 말한다. 이론적 사고율은 이미 허구가 된 지 오래다. 문제는 사고가 난 뒤 피해가 상상 이상이라는 것이고 피해 영향이 인간이 인지할 수 있는 시간을 벗어날 정도로 오래 지속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원전은 갈수록 안전보장비용이 높아져 미국과 유럽에서는 풍력과 같은 재생가능에너지원보다 비싼 전력생산수단이 되었다. 원전은 안전성과 발전 유연성이 낮은 불안한 에너지인 것이다.

원전이 답이 아니라면 답은 무엇일까? 그것 또한 두 가지다.

먼저 핵이 아닌 다른 연료로 발전을 하는 것이다. 햇빛과 바람으로 대표되는 자연에너지, 즉 재생가능에너지를 이용한 발전량을 늘리는 것이다. 재생가능에너지를 확대하면 에너지 수급만 좋은 게 아니라 기후변화 대응에도 좋다.

햇빛과 바람은 온실가스를 발생시키지 않는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풍력발전기나 태양광패널을 만들고 이를 설치하는 산업은 아직 발전 여지가 많아서 많은 신규 인력을 채용할 수 있다. 이는 이미 늙고 포화된 화력발전이나 원자력발전 산업과 시장이 가지지 못한 이점이다.

두 번째 해답은 가장 기본적이며 근원적인 해법이다. 바로 수요를 조절하는 것이다. 에너지시민연대는 에너지의 날 '불 끄고 별을 켜다'라는 소등행사에 각계의 참여를 이끌어내어 작년에 120만kW, 그리고 올 에너지의 날에도 87만kW의 전력 소비를 감축했다.

건물들의 불빛이 사라진 몇 분간 원전 1기는 불필요해졌던 것이다. 만일 에너지의 날 행사에 참여한 기관과 단체, 시민들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상시적인 절전체제로 전환한다면 어찌 될까? 절전을 위시한 수요조절이 궁극적인 에너지 해법인 이유다.
▲ 홍혜란/에너지시민연대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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