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종단 어우러진 '아름다운 순례길'

수많은 도보 여행길에는, 아니 길이란 원래부터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걷는 이마다 그 목적이 무엇이든 누구나 걸음을 멈추는 곳에서 무언가를 얻어갈 수 있도록 길은 어느 한 곳으로 이어져 있다.

'아름다운 순례길'은 원불교 천주교 유교 불교 개신교 민족종교가 함께 손잡고 분열과 갈등을 뛰어넘어 대화와 소통을 하자는 의미로 2009년 만든 길. 이제는 종교인이 아닌 사람도 길을 걸으며 역사를 되새기고 자신을 돌아보는 명상과 치유의 길이 됐다. 총연장 240㎞에 이르는 이 장대한 길은 전주 한옥마을 한국순례문화연구원에서 시작해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는, 시작과 끝이 같은 여행이다.

아무래도 순례길의 백미는 김제의 모악산이 아닐까 싶다. 아름다운 순례길 중 제7코스 모악산 순례길을 찾아 나섰다. 이 길에서 소태산대종사의 회원상송대를 가슴에 담고 싶었다.

회원상송대(繪圓相松臺)

모악산은 원불교(원평교당), 불교(금산사), 천주교(수류성당), 개신교(금산교회) 등 다양한 종교의 성지가 자리하고 있다. 그 외에도 미륵신앙이나 지리도참사상의 영향을 받아 증산교와 대순진리교 등 여러 신흥 종교가 흥망성쇠를 함께 한 곳이기도 하다.

모악산 순례길은 금구면 산동교회에서 시작해 귀신사-금산사-금산교회-증산법종교-대순진리회당-원불교 원평교당-수류성당을 잇는 40㎞ 코스의 종교순례길이다.

귀신사의 독경소리가 고독하리만큼 청아했다. 순례길 방문객의 마음도 일순 입정에 든다. 오전예불을 올리는 비구니 스님은 그대로가 한 폭의 선경이었다. 잠깐 마음을 모으고 합장 예를 올린 뒤 금산사로 향했다.

모악산은 어미가 아이를 안은 형상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했다. 모악산의 넉넉한 품에 안긴 김제의 천년고찰 금산사는 과거, 현재, 미래의 부처가 공존한다는 곳으로 다양한 보물과 유물이 보관되어 있다.

'소태산대종사는 원기4년 법인성사 후 정산 송규를 변산 월명암 백학명 선사 문하로 보낸 후 김광선을 대동하고 휴양차 전라북도 김제 모악산 금산사를 찾았다. 소태산대종사와 김광선은 미륵전 뒤 송대에 거처를 정하고, 휴양하며 짚신을 삼아 원평시장에 내다 팔며 생활했다. 어느날 소태산대종사는 머물고 있던 송대 방 출입구 문미에 '○(일원상)'을 그렸다.' -소태산대종사의 60가지 이야기 중 -

금산사는 '소태산대종사가 자신이 깨달은 진리의 형상을 '○'으로 처음 그려 보인 곳'이다. 일원상을 정식으로 불단에 봉안하기는 그로부터 15년 뒤인 원기20년 4월 익산총부에 대각전을 준공하고 목판으로 모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비록 짚신을 삼기는 하나 범할 수 없이 기상이 늠름하고 눈에서 빛이 나고 얼굴에 광명이 발하는' 소태산대종사의 덕화에 감복해 제자가 된 이도 있었다. '금산사에 생불님이 나셨다'는 말이 퍼져나가 당시 민심을 현혹한다는 미명아래 김제경찰서에 구금당하셨던 일화는 유명하다.

금산사는 임란 때 승병이 훈련했던 사원답게 넓은 마당이 인상적이다. 그로 인해 왜란의 화는 면했지만 정유재란 때 그 보복으로 80여동의 건물과 40여 암자가 전소되는 비운을 겪었다.

3층짜리 미륵전(국보 제 62호)은 현재 공사 중이라 그 위엄한 모습을 볼 수 없어 아쉬웠다.
그러나 배롱나무 꽃이 만개한 넓은 마당 가득 대종사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죄 짓고 있으면 자기 안방도 무섭지."
▲ 금산사는 소태산대종사가 진리의 형상을 '○'으로 처음 그려 보인 곳이다. 금산사 미륵전(국보 제62호)은 현재 공사 중이라 그 위엄한 모습을 볼 수 없어 아쉬웠다.

4대 종단이 어우러진 길

절을 둘러보고 나와 금산사 마실 길을 걷는데 울창한 송림 속에 연리지가 나타났다. 곧은 두 그루의 소나무 가지가 중간에 붙어있어 마치 팔짱을 낀 느낌이다. 놀란 것은 이 나무가 태풍 볼락으로 인해 부러진 것이다. 울창한 나무가 따가운 햇빛을 양산처럼 가려주고, 시원한 물줄기가 흘러내리는 편백나무 우거진 숲속 길은 그대로가 더 이상 바랄 것 없는 명상도보길이다.

모악산에서 강증산의 증산교가 태동했고, 현재도 대한증산선불교(大韓甑山仙佛敎)의 본부와 강증산의 유골을 모신 증산법종교 본부영대, 삼청전이 순례길 주변에 자리하고 있다. 더불어 대순진리회의 성지도 있었다.

한적한 길을 따라 얼마를 더 가다보면 수류성당도 나온다. 백여년 간의 박해를 벗어난 후 당당히 십자가를 높이 올린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할 정도로 작지만 위세가 당당했다. 19세기말 호남 3대 성당 중 하나인 수류성당은 갖은 박해를 견뎌낸 신자들을 넉넉히 안아주려는 듯 언덕위에서 너른 들을 굽어보며 당당히 서있었다.

수류성당에서 나오면 1908년에 지은 오랜 '예배당'인 금산교회가 있다. 1905년 미국 선교사 데이트가 설립한 교회는 당시 ㄱ자 한옥 건물 모습 그대로 보존돼 있었다. 예쁜 종탑과 나지막한 옛 교회의 모습이 오롯이 남겨져 있다.

4대 종단이 진정으로 어우러지길 바라며 혼자라도, 아님 동행인과 함께 느리게 호흡하며 걷는 '아름다운 순례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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