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에서는 교리의 바탕이 됨에도 표현하기를 주저하는 몇 가지가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육도(六途)이다. 사람이 죽음에 이르면 천도, 인도, 수라, 아귀, 축생, 지옥의 여섯 가지 길로 간다. 그런데 30여 년 전부터 육도는 이 세상 밖, 다른 곳에 있지 않다는 법문과 심상 육도에 대한 설명을 강조해왔다. 반면 현실육도에 대한 설명은 소홀했다. 죽음 후의 여섯 길 가운데 가장 좋은 곳은 인도라 하고, 천도는 호텔 같아서 그 곳에서 복이 다하면 다시 인간계로 내려와야 하는 곳쯤으로 여겼다.

그러나 진리와 교리 인식에 심각한 부작용이 생겼다. 서울 청년훈련에 강사로 갔을 때이다. 그곳의 한 청년이 교무가 되고 싶다고 해서 "왜 교무가 되고 싶냐"고 하니 "교무가 되면 많은 복혜를 쌓을 수 있고, 복혜를 쌓으면 가장 좋다는 인간 세상에서 최고의 복인 재벌의 아들로 태어나려고 합니다. 재벌이 되기까지 힘드니 재벌 아들이 더 좋습니다."고 한다. 그 동안의 교리 설명을 나름 잘 정리해서 가치관과 삶의 방향을 정한 나무랄 수 없는 생각 아닌가. 다만 교무로서의 책임감에 심각하게 자책이 들뿐이었다.

천도는 하늘 위에 우주의 어느 공간에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세상과도 겹쳐서 존재하는 부분도 있지만 다른 차원이다. 시간과 공간에 익숙한 3차원의 생각으로는 이해와 설명이 어렵기에 나타난 해프닝으로 여겨진다. 심상육도를 강조하는 것은 인간의 마음가짐이 육신을 떠난 영혼에도 그대로 미치기 때문에, 인간 세상에 살면서 마음가짐 하나하나를 잘 갖는 것이 크고 바른 수행이라는 것을 일러주기 위함이었다.

육도는 현실적으로 존재한다. 인도보다는 천도가 좋은 곳이고 대부분 고급 영혼이 존재한다. 그런데 천도재에서는 인간세상에서 정법회상을 만나 이 공부 이 사업을 하도록 원력을 세우고 착(着) 없이 떠나라고 한다. 법마상전급 이하에 초점을 둔 의식이다. 항마부터는 천도법문과 설명기도를 하지 않는다. 길이 다르기 때문이다. 항마 이상의 도인이 열반하면 종법사님 법문 내용은 법계에 머물다가 교단에 일이 있을 때에 오셔서 일을 해달라고 한다. 좌산상사께서도 자연장지에서 법타원 김이현종사 영전에 "조금만 쉬셨다가 오세요." 라고 부촉했다.

육도는 대략 구분한 개념이다. 천도만 하여도 천층만층인데 항마는 힘 있는 레벨의 영혼이라 자력으로 왕래할 수 있다. 그래서 가는 곳을 법계라 이름 한 듯싶다. 이 정법회상을 만나 수행에 게으르거나, 소꿉장난 같은 자리와 이름에 속아서 오롯한 항마가 되지 못하면 얼마나 억울할까. 항마부터는 착에 의해서 업이 덧붙는 식이 아니다. 자기의 모자람을 공부하는 차원에서 업을 활용하거나 상황을 설정해간다. 교단의 상서로운 일은 참 도인이 나오는 데에서 비롯된다.

<삼동연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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