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산 이공전 원정사 열반
뛰어난 필력과 문화의식

정산종사 전문시자로 새회상 법보편찬의 '정화사'실무자로서 〈원불교교전〉을 비롯 〈정산종사법어〉, 〈예전〉, 〈불조요경〉, 〈성가〉 등 원불교 7대 교서를 완간하는데 불멸의 공훈을 세웠던 범산 이공전 원정사가 9월24일 원요양병원에서 거연히 열반에 들었다. ▷ 관련기사 8·17면

경산종법사는 "원정사는 불연 깊고 유수한 가문에서 13세 어린나이에 출가해 주세불 대종사의 총애를 받으며 성직의 기초를 다졌다"며 "천부적으로 출중한 문필능력과 해박한 지식으로 교단 언론창달에도 큰 역할을 했고, 〈원광〉 주필, 〈원불교신문사〉 사장 등을 역임하며 교단 역사를 올바르게 기록하는 한편 성지찬가, 운수의 정 등 주옥같은 성가를 작사해 격조 높은 일원문화를 형성하는데 일가를 이뤘다"고 축원했다.

이어 "'이 한생 안 난폭 잡고 정남(貞男)으로 봉사하라'는 정산종사의 부촉을 받들어 두마음 없이 구름에 달 가듯 풍류의 멋을 즐기며 오롯한 한 생을 살으셨다"고 회고했다.

출가교도를 대표해 고사를 한 정숙현 부산울산교구장은 "40여 년 전 정화사에 근무할 때 스승님의 훈증으로 전무출신의 기초를 단단히 다졌다"며 "뛰어난 필력과 유창한 언변으로 대중을 크게 감동시켰던 원정사는 설교는 초입자라도 알아들을 수 있도록 초안하셨다. 대종사께서는 어린아이까지라도 알아들을 수 있도록 진리를 쉽게 풀어주셨다고 강조하며 설교 안을 몇 번이고 고쳐 쓰시곤 하셨다"고 추모했다.

서문성 교무는 "원정사는 전무출신할 때 대종사께서 공전(空田)이라 개명한 후 '마음 밭에는 아무 것도 없이 텅 비어버려야(大空心) 무궁무진한 온갖 조화(大公心)가 나온다. 공전이가 큰 공부해서 부처님 같은 인격자가 되어 천하를 위해서 큰 일을 해야만 이름값을 잘하게 된다'는 법문을 받들었다"고 회고했다.

원정사는 중앙문화원장 재직시 변산, 만덕산, 성주 등 성지의 장엄과 역사적 의미를 자리매김하는 데에도 큰 사표가 됐고, 한국종교인협회의 설립 발기인으로 종교연합운동의 바탕이 되어 교단을 드러냈다.

부친 항산 이호춘 정사의 연원으로 입교한 원정사는 주산 송도성 종사의 추천으로 전무출신을 서원, 원기34년 서원승인을 받았다.

〈원광〉 주필로 교역을 시작한 범산 원정사는 원기36년 조실 비서 겸 〈원광〉 주필, 〈대종경〉 편수위원·전문위원 겸직, 법무실장, 법감, 원불교신문사 주필, 감찰원 부원장 겸 사무처장, 하섬수양원장, 봉래수양원장, 원불교신문사 사장 겸 문화원장, 중앙문화원장 겸 원광사 사장, 중앙남자원로수양원장으로 봉직했다. 원기67년 정식법강항마위에 승급한 원정사는 원기73년 대봉도, 원기76년 종사 법훈을 수훈했다.

범산 원정사의 세수는 87세, 법랍 73년1개월, 공부성적 정식출가위, 사업성적 정특등 4호, 원성적 정특등으로 원불교교단장. 종재식은 11월11일 오전11시 중앙총부 반백년기념관에서 거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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