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길 교무의 '수심결'

過去諸如來도 只是明心底人이며 現在諸賢聖도 亦是修心底人이며 未來修學人도 當依如是法하리니 願諸修道之人은 切莫外求어다 心性이 無染하야 本自圓成하니 但離妄緣하면 卽如如佛이니라.

과거의 모든 부처님도 다만 이 마음을 밝힌 사람이며 현재의 모든 현성들도 또한 이 마음을 닦은 사람이며 미래에 공부하는 사람들도 마땅히 이 법에 의지하여 수행할 것이니 원컨대 모든 수도하는 이는 간절히 마음 밖을 향하여 구하지 말지어다. 심성이 물듦이 없어서 본래에 스스로 두렷이 이루었나니, 다만 망연만 여의면 곧 여여한 부처니라.

수심결 1장과 2장에서 보조는 마음밖에서 부처를 구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고 있다.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우리가 구하고자 하던 것을 먼저 성취하셨던 과거 부처님이나 모든 성현들도 마음을 밝히고 닦았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불교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마음은 인간의 감정과 욕망을 도외시하고 오직 청정한 본성만을 진짜 마음이라고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부처가 되기 위한 여덟가지 길 가운데 첫 번째가 바로 정견(正見)이다. 정견을 가장 앞세운 이유는 마음을 보는 관점을 바르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보조는 〈진심직설(眞心直說)〉에서 참마음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요, 마음바탕에 거짓 마음 참 마음 악한 마음 선한 마음 더러운 마음 깨끗한 마음이 둘로 나뉘거나 본래 두가지 갈래로 다르게 작용을 하여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무명실성(無明實性)이 곧 불성이요, 환화공신(幻化空身)이 법신이라고 하였다. 중요한 것은 고정된 관념이나 분별 망상을 벗어나는 것이 핵심이라는 것이다. 심성이 원래 물들어 있는 것이 아니요, 망연만 벗어나면 곧 여여한 부처라는 것이 이 말이다. 승찬대사의 〈신심명(信心銘)〉에도 유혐간택(唯嫌揀擇) 단막증애(但莫憎愛) 통연명백(洞然明白)이라 하였으니, 곧 분별하고 증애에 끌리는 집착만 놓으면 환하게 밝아지는 것이라 하였다. 마음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온갖 사념망상과 분별집착과 희로애락의 감정과 오욕번뇌를 따로이 폐기처분하거나 없애야 할 대상으로 파악하여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다만, 바른 견해를 가지고 마음을 고요히 바라보아야 참마음을 깨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마음을 이야기하면서 인간의 욕망은 참마음과 거리가 먼 것이며, 또 멀리하고 극복해야 부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욕망의 밑바닥에는 본능이 자리잡고 있어서 오직 그것은 조복받고 초탈해야 도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억지로 마음을 한마디로 정의해 보라고 한다면 나는 욕망이라고 이야기하고자 한다. 인간은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동물이지만 생명의 법칙은 본능에 따르는 것이다. 배고프면 먹어야하고, 잠이 오면 자야하는 것이 인간의 삶이다. 마음은 동정, 선악, 호오, 염정 등 모든 것을 내포하고 있다. 본능도 있고, 본성도 있다. 그래서 부처찾기는 내 마음에서 출발할 수 밖에 없다. 모든 인연의 출발선인 동시에 종착지다. 한마음이 일어나니 만상이 창조되는 것이다. 이것은 곧 내마음에서 하고자 하는 욕망이 일어나니 모든 인연이 시작된다는 말과 같은 것이다.

소태산도 사은의 존재를 논리적으로 설득하기 위하여 천지 없이, 부모 없이, 동포 없이, 법률 없이 살 수 있는가를 생각해보라고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러면 나의 생명을 유지시켜 주는 외적 존재기반이자 타자인 그 대상과 없어서는 살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는 존재는 오직 살아있을 때라야 그 대상과 함께 의미가 생기는 것이다.

살아있다는 것은 욕망체로 존재하는 것이다. 살되 더 잘살고 더 행복하게 살기를 인간은 욕망하는 것이다. 그래서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단지 본능만으로 존재하는 동물과 차별화되어 어떻게 존재해야 행복할까를 고민하는 본성도 함께 마음속에서 욕망의 싹을 틔우고 있다. 욕망의 바다를 건너 저 언덕에 닿으면 이미 그 욕망과 늘 함께 있었던 부처(如如佛)를 만나게 될 것이다. 이제 이 시대의 불교는 인간의 욕망을 충분히 긍정하고 건전하고 건강하게 해소가 될 수 있는 사회적 환경과 윤리적인 토대가 이루어질 수 있는 담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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