孤臣白髮鏡中絲 외로운 신하는 백발이 되어 거울 속에 비치고

羞向山僧話亂離 제 말씀이 어지럽고 벗어나서 산승에게 부끄럽습니다

明日遼陽王事急 내일은 요양에서 임금의 일이 급하여

滿船楓葉渡江時 배에 가득 단풍잎을 채워 강을 건너야 할 때입니다


*요양 -중국 랴오닝성의 남서쪽에 있는 상공업 도시

'혜 스님에게(贈惠上人)' - 심희수(沈喜壽 1548~1622 광해군 때 문신)

심희수의 본관은 청송, 호는 일송(一松) 또는 수뢰누인(水雷累人)으로 광해군 때 좌의정을 지냈다. 시호는 문정(文貞), 저서로 '일송집'이 있다.

심희수는 선조 때 정여립 모반사건의 확대를 막다가 사직한 것을 보면 극단을 피하고 정도를 지킨 듯하다. 임진왜란 때는 의주에서 선조를 보필한 도승지로서 이여송의 명나라 군대를 접대했으며, 이이첨 등이 광해군의 형 임해군을 해치려 할 때 상소하여 탄핵을 당했다. 그리고 죽은 영창대군의 신원 회복에 노력하다가 인목대비를 폐하자는 논의가 일어나자 마침내 둔지산에 들어가 은거하고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위 시는 간결하지만 퍽 은근하면서 풍류가 엿보이는 작품이다. 나라의 일에 부지런한 늙은 신하지만 노스님 앞에서 스스로 부끄러워할 줄 아는 겸손한 인품이 시에서 묻어나온다. 늘 명분을 앞세우면서 자기 이름을 빛내고, 뒤에서 실속을 채우면서 백성을 속이는 벼슬아치들의 심중을 꿰뚫어 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왜 그럴까?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