靜處觀群動 고요한 곳에서 여러 움직임을 살피면
眞成爛漫歸 진실로 어지러움이 사라지게 될지니
湯氷俱是水 끓는 물과 얼음이 모두 같은 물이고 
裘褐莫非衣 가죽옷과 베옷도 다 같은 옷이니라
事或歸時別 혹 일이야 때에 따라 달라질지라도
心寧與道違 마음이 어찌 도에서 어긋나리오
君能惜斯道 그대 능히 이 도리를 아낄 수 있으면
語黙各天機 말없이 각자 하늘의 이치를 지켜 나가게


'심양의 감옥에서(在瀋獄和金淸陰韻)'-최명길(崔鳴吉 1586~1647 조선 중기 문신)

최명길의 본관은 전주, 호는 지천(遲川)으로 김류 등과 함께 인조반정에 가담하여 1등 공신이 되어 정치 사회개혁을 추진했다. 문장과 글씨에 뛰어났으며 시호는 문충(文忠), 저서로 '지천집' 등이 있다.

최명길은 1627년(인조 5년) 정묘호란 때 강화도로 왕을 호위하고 후금과 형제의 관계를 맺는데 참여한 주화론자(主和論者)였다. 1636년 병자호란 때 청 태종이 10만 대군으로 남한산성을 포위하자 척화론자(斥和論者)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최명길은 이조판서로서 항복문서를 초안하여 왕이 청 태조에게 무릎 꿇고 세 번이나 절하는 수모를 함께 겪었다.

이 시는 최명길이 영의정일 때 조선이 명나라와 내통한 사실이 밝혀져 심양에 잡혀가 1642년부터 3년간 억류되었을 때 쓴 작품으로 감옥에서 정좌하고 사색하여 세상의 이치를 터득하자는 양명학자의 자세가 엿보인다. 그러나 성리학과 당파싸움, 그리고 두 번의 전쟁으로 절단 난 조선이 과연 망해가는 명나라에 대한 의리가 그리도 중요했던 것일까. 더구나 청나라를 세운 여진족은 자기들을 '죠션'이라고 불렀다는데, 조선의 사대부는 왜 오랑캐라고 업신여기고 사대주의(事大主義)에 집착한 것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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