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연성 교도·상동교당(논설위원)
출가교화단에서 경산종법사는 '원불교 100년의 약속' 이란 내용의 법문을 했다. 100주년 행사를 하는 것보다 행사 이후 교단과 교도가 원불교 교법으로 어떻게 무장되어 새롭게 거듭날 것인가와 실천하는 공부인이 되어야함을 강조하셨다. 맞다. 원불교정비의 외형겉치레도 필요한 부분이 있지만 그보다 내실의 기틀을 100년 안에 재가 출가가 합심하여 원불교의 훈풍을 불러 일으켜야 할 것이다. 아울러 교단혁신으로 원불교가 거듭나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총부가 비상인 듯 중앙교의회 및 교구 교의회의장들이 모여 육영기금 손실등 교단의 총체적 문제와 혁신을 위한 대안을 찾는 소통의 장이 이루어질 것 같다. 원불교 100주년 성업에 전 재가출가교도가 함께 뜻을 모으고 있는 이때가 교단 개혁의 기회인 것 같다. 늘 위기가 기회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출가 재가 모두 모여 노력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일선의 교당 교도들은 100년 성업 바람을 체감하고 있는가? 매주 예회에서 사회자의 기도문에 나오는 성업봉찬에 대한 내용 외에는 교도 개인이 노력하는 성업봉찬 바람은 미풍도 못 느끼고 있다.

100년 바람의 열기는 몇 도인가? 왜? 한국사회와 교도들은 체감하지 못하고 있는가? 무엇이 문제인가? 교화 대불공을 위해 2만 단장양성을 하자고 했는데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자신성업봉찬을 위한 4대 정진운동을 하자고 했는데 교당과 각자 자신은 어떻게 정진하고 있는가? 성업봉찬추진위원회에서 시행하고 있는 사업들이 우리 가정과 교당과 사회에서 어떻게 연계되어 가고 있는가?

현대를 사는 현대인들은 물질만능사회가 될 수록 정신은 피폐해지고 외롭고 어렵고 고독해진다. 사람 만나기 싫어하고 혼자만 지내는 외톨이가 되어 간다. 주변에 관심도 가지지 않아 노인이 죽은 지 5년이 지난 후 백골이 되어 발견되기도 한다. 이렇게 힘들고 어렵고 고독할 때 사람들은 종교를 찾는다.

상처받은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해주는 것이 종교의 역할이다. 과연 이런 어려운 사람들이 원불교의 문턱을 넘어 오면 맞이할 수 있게 준비되어 있는가?

최근 읽은 틱낫한 스님의 명상에서 살만한 세상만들기에 대한 대목이 있었다. 먼저, 우리 가족, 학급친구들, 동료들, 우리가 속한 공동체 구성원 같은 좀 더 친숙하게 느껴지는 사람들에게 눈을 돌리고 그들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만일 우리가 그들을 위해 살지 못한다면 다른 누구를 위해서 살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맞다. 우리 원불교의 100년 성업도 우리 주변의 어려운 사람과 더 친숙한 사람들을 반기고 챙기는 교당이 되고 있는가? 점검해봐야 할 것이다.

교법실현과 종법사의 경륜, 교정원의 비전실행으로 성업봉찬이 구체화되고 재가 출가가 하나의 목표를 공유하고 그 의지가 결집 돼야 한다, 백년 성업도 이러한 큰 틀에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재가 출가가 함께하는 전문 역량을 집결하고 논의하는 상시 기구를 도입하고 교법정신에 바탕하여 장단기 비전을 제시하고 철저한 평가에 따른 추진 동력을 돌려야할 것이다.

교단 전체의 문제를 수합하고 실행 방향을 제시 할 때는 출가교무들만의 의사결정으로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교무들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성직자인 교무들은 재가들 보다는 현실감각이 떨어진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육영기금의 손실문제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교정원장 혹은 각 부장의 개인적 역량만으로 중요한 정책이 결정되는 시스템은 개선되어야 하고 각 부서의 추진 사업은 연속성이 있어야 하고 평가가 합리적으로 이루어져야할 것이다.

원불교 100년 성업봉찬은 세계 인류의 나아갈 방향과 남북통일 후 한반도의 한국사회와 정치경제문화의 변화에 대한 대응과 전략을 기획하고 전 교도가 공유하고 공감하는 장단기 비전을 제시하고 그 꿈과 이상을 실현해 나가도록 희망의 바람을 일으켜야 한다. 원불교 백년 성업은 눈에 보이는 불탑을 쌓는 것을 넘어서서 보이지 않는 우리안의 불탑을 조성하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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