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오수(午睡)를 방해하는 전화 벨소리가 요란했다. 예전에 근무했던 직장 비서실에서 초대장을 보내려는데 주소가 변하지 않았는지 확인하고 싶단다.

왜 하필이면 이 시간에 전화를 하냐고 짜증을 부렸다. 당황해 하며 미안하단다. 아차, 또 실수를 했구나 싶었다. 그녀는 상황을 납득하거나 이해하려는 생각도 없이 선배와 다투어 무엇하랴 하는 마음에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즉시 사과는 했지만, 아직도 수행이 부족함을 느꼈다. 유무념 공부가 더 절실하다.'
일 전에 쓴 심신작용 처리의 건이다.

생리적 현상인지 오찬을 하고 나면 잠이 쏟아진다. 참으면 머리가 지끈거리고 아프다. 잠깐이나마 자고나면 머리는 물론 온 몸이 가뿐해지며 입에는 달콤한 침까지 고인다. 길게 자지도 않는다. 10분 정도면 충분하다. 습관이 잘못 들었겠지만 생체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설도 있어 그냥 고치지 않고 있다.

부득이한 때에는 참지만, 그 졸음이 방해를 받게 되면 그 부작용은 극에 달한다.

그래서 예전에도 가끔 짜증을 부리곤 했는데 또 그런 상황이 일어났던 것이다.

이런 나의 습성을 아는 주변 사람들은 양해하며 그 시간대에는 찾거나 전화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를 잘 모르고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지도 못하는 상대방은 내 입장을 어찌 알겠는가. 참으로 어이가 없었으리라. 각성하고 사과를 하여 다행이기는 하나 찜찜했다.

유무념에 대해서는 잘 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나는 매년 초가 되면 연간 계획을 세우고 해야 할 과제와 일정을 짠다. 월초에는 그 달의 계획과 일정을 다시 정리한다. 주초엔 구체적인 일정과 세부적인 추진 방안을 정한 다음 처리할 과제를 미리 연마한다.

매일 아침에는 하루 일과를 살펴보고 문제점은 무엇이며 어떻게 취사할 것인지를 마음에 새긴다. 저녁에는 하루를 정리하면서 성찰과 다짐도 하며 필요한 사항은 기록으로 남긴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못 견뎌했다. 직장에서 직원들은 숨이 막힌다고 하소연을 했고 가정에서 아내는 유연성이 없다고 핀잔을 주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철저하지 못한 그들의 핑계로 여겼다.

인생사가 어찌 마음먹은 대로만 되는가? 움직이면 경계이고 항상 상대가 있는 것을. 모두(冒頭)의 일도 예상하지 못했고 상대도 잘 모르는 사람이 아니었든가. 내가 주인공이 되어 세상사를 내 마음대로 이끌어갈 수 없는 이상, 계획했던 일만 가지고는 안 된다. 그래서 유무념 공부는 꾸준히 해야 하는가 보다.

마음을 맑히고 닦으며 응용해가는 수행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어떤 경계에서도 올바른 취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내 위주로만 계획하고 연마하며 일을 추진하려고 했다. 그러면서 좁은 소견으로 유무념이 안 되어 일을 그르치면 마음 상해하며 말이다.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경계에 대한 대처가 제대로 안 된 것이다. 수년 전 법회에서 유무념에 대한 설법을 받든 적이 있는데, 교무님이 제시한 경계 대처법이 마음에 파고들어 꽂혔다.

이른바, 'STAR'이다. "멈추고(Stop) 생각하여(Think) 행동한(Action) 다음 판단(Review)하라"는 요지로, 각 단어 머리 자의 합성어다. 경계를 당하면 일단 대응하기 전에 생각을 해본 다음 취사를 할 것이며 연후에 잘 했는지 되짚어 보라는 가르침이다.

얼마나 간결(Simple)하고 포괄적(Total)이며 응용하기(Application) 간편하고 기억하기(Remember) 쉬운가?
이도 'STAR’네. 우선 멈추는 것이 어렵기도 하거니와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멈추기만 하면 다음 단계는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나에 비추어 보아도, 성질이 급하여 진심이나 치심 때문에 일을 그르친 적이 많았다. 멈추는 여유로움, 각성하고 닦아 지켜야할 덕목이다. 경계를 접할 때에 이 대처법이 많은 도움이 됐는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오, STAR! 내 마음의 별이여!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