嶺已過兮 청석령은 이미 지났는데

草河溝何處是 초하구는 어느 곳인가

胡風凄復冷兮 오랑캐 땅에 부는 바람 차고도 차갑구나

陰雨亦何事 궂은비는 또 무슨 일인가

誰畵此形像兮 누가 이 처량한 모습을 그려서

獻之金殿裡 이를 임금님 계신 궁전에 바칠까



'청석령을 지나며(過靑石嶺)' - 효종(孝宗 1619~1659 조선 17대 임금)

효종의 이름은 호(淏), 인조의 차남으로 왕이 된 후 군사제도를 개혁하고 군비를 강화하여 북벌계획을 추진하였으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위기에 빠진 조선의 경제를 살리려고 노력했다.

이 시는 효종이 봉림대군 시절에 심양으로 끌려가면서 지은 시조를 한시로 번역한 작품이다. 겨울 모진 비바람 속에 패전국의 왕자로서 볼모로 잡혀가는 참담하고 황당한 심정을 간결하게 고백했지만, 1636년 병자호란 때 봉림대군은 아우 인평대군을 비롯한 왕족들과 함께 피신한 강화도에서도 패전하여 포로가 된 쓰라린 경험이 있었다. 그리고 남한산성에서 고립된 채 버티던 인조가 청나라에 항복하자 봉림대군은 형인 소현세자, 홍익한, 윤집, 오달제 등 강경파 주전론자(主戰論者)들과 함께 청나라로 끌려가 심양에서 8년 동안이나 볼모로 잡혀있었다.

서양 문물과 청나라에 우호적이었던 소현세자가 귀국 후에 갑자기 죽어서 소현세자의 원손 대신 왕이 된 봉림대군은 치욕을 씻고자 김자점 등 친청파(親淸派)를 축출하고 김상헌, 김집, 송시열, 송준길 등 서인들을 등용하여 북벌계획을 추진했다. 그것이 명에 대한 의무라고 여겼지만 양반의 신분질서와 지배체제가 무너지고 있다는 위기의식이 더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마흔을 갓 넘겨 죽은 효종은 당나라 100만 대군을 격파한 고구려의 기상을 이으려던 것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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