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씨를 새길때 정성 기울입니다"
작품으로 생각하며 최선 다해
30여 년의 내공, 중요 사적지 기념비 작업

왕궁 영모묘원 한켠에 마련된 작업실. 화강석에 글자를 새기고 있던 익산교당 김선권(63) 교도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번졌다. 평소 하는 작업이지만 열반한 재가 출가교도들의 법호와 법명을 새기면서 자신을 가다듬고 있기 때문이다.

"원불교에서 의뢰가 들어오면 정성을 다합니다. 묘비작업은 손작업 보다 자동 기계를 사용합니다. 하루에 2벌 정도 묘비 작업을 하고 있고 이 분들이 교단에 끼치신 공덕을 생각하곤 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영모묘원을 쳐다 보았다. 그는 그동안 각자(글자를 돌에 새기는 작업)를 했던 묘비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 많은 묘비를 보면서 자신의 일생을 되돌아 보는 듯 했다.

"영모묘원이 19년 전에 개원할 때부터 묘비 작업은 계속했습니다. 초창기에는 글씨를 갖다주면 각자를 해서 용달차로 실어다 주었습니다. 영모묘원에서 몇 년간 금마에 있는 공장에 작업을 의뢰했으나 글씨가 좋지 않다고 고객들이 이야기 하니 다시 제가 작업을 하게 됐습니다."

그는 묘비 각자에만 매달리지 않는다. 어디든 의뢰가 들어오면 작업을 하는 것을 철칙으로 삼고 있다. 석재 공장에서 의뢰를 하면 글씨를 성의껏 파 준다.

"각자를 할때의 마음자세는 작품으로 생각하고 최선을 다합니다. 그러니 좋은 글씨가 나오는 것 같아요. 저는 다른 사람들이 10자를 팔 때 8자를 팝니다. 누가 봐도 차이가 나죠. 돈벌이 보다는 보람으로 알고 열심히 하는 편입니다."

그러다 보니 석재 공장 사장들이 그를 즐겨 찾는다. 그가 명함이 없어도 알음알음으로 그에게 주문을 한다. 그는 찾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각자를 보람으로 여겼다. 30여년의 내공이 그냥 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처남의 인연으로 25세부터 이 일을 시작했습니다. 각자를 하는 사람은 적고 일은 많았을 때 였으니까요. 이제는 본업이 됐습니다. 그리고 동서가 운영하던 황등 돌 공장에서 글씨 새기는 일을 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이 시기를 전후해서 원불교 일도 많이 했습니다. 지금은 어디에 구속되어 있지 않고 자유스럽게 일을 하는 편입니다."

그의 말에 귀가 번쩍 띄였다. 교단 중요 사적지에 세워진 기념비에 각자를 한 것이라 더 더욱 그랬다. 자세히 물어보니 범산 이공전 종사가 중앙문화원장으로 근무할 때 이루진 일임을 알 수 있었다.

제법성지 장엄공사 1차 사업으로 교강반포 60주년을 기념하여 세운 일원대도비를 비롯 대종사가 3개월간 머물며 정진하였던 것을 기념한 연화삼매비, 정산종사의 구도성장지 근처에 세워진 소성구도비, 대종사와 정산종사가 처음 만난 땅을 기리기 위한 화해제우비, 7대교서의 편수도량이 된 것을 알리기 위한 하섬 원음탑을 서각한 것이다.

"이외에도 중앙총부 나무 밑에 세워져 있는 글씨들은 제가 새겼습니다. 50여개 정도의 자연석을 놓고 한달간 작업을 했지요. 선진님들의 친필을 받아 새긴 것도 있습니다. 반백년 기념관 우측 벽면에 있는 '진리는 하나 세계도 하나, 인류는 한가족 세상은 한일터, 개척하자 하나의 세계'도 새겼죠. 원불교대학원대학교와 원불교 영산선학대학교에도 제 작품이 있습니다. 누가 새겼다고 이름을 넣으라고 어른들이 말씀해도 넣지를 않았습니다."

그는 각자한 것을 밝히지 않는 겸손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그저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것이 편안하단다.

그가 작업한 각자는 미국, 일본, 개성공단, 금산사 박물관 옆에도 자리잡고 있다. 이 내용들을 자랑할 만도 하건만 손사래를 친다. 굳이 내 놓을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이 일을 하면서 보람된 일이 많았습니다. 어떤 분들은 자기 선진들의 표석을 소중하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진정으로 고맙다고 할때 보람을 느낍니다. 세태가 달라 그 모습을 자주 볼수 없지만 기억에 남습니다. 누가 일을 맡기면 힘이 닿는대로 각자를 할 것입니다. 황등에서 손으로 작업하는 사람이 1∼2명에 불과하지만 신앙심으로 현재의 어려운 점을 슬기롭게 넘깁니다."

그는 작업을 멈추고 한마디 했다. 그의 사명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전문가 다운 당당함이 느껴진다.
"모든 것에는 기다림이 중요합니다. 독촉을 한다고 해서 좋은 각자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는 다시 햇빛이 부시는 영모묘원에 시선을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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