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 구도자로 인재양성, 개척불사 헌신

일생 구도자로 살았던 균타원 신제근 원정사가 운봉수도원에서 열반에 들자 그를 따르는 많은 제자들은 물론 재가 출가교도들이 애통해 하고 있다.

이에 경산종법사는 "대종사께서 균타원 원정사는 '장차 큰 인물이 되어 호강 받을 텐데'라고 예견할 정도로 올곧은 서원을 가졌다"며 "힘들고 가난한 교단 초창기에 물 긷고 밭매기를 하면서도 일 무서운 줄 모르고 혈심혈성으로 공도에 임했고, 교화현장에서도 신성과 감사로 헌신적인 삶을 살아 후진들의 귀감이 됐다"고 추모했다. 이어 "'교동교당 가거든 인재양성에 주력하라'는 대산종사의 뜻을 받들어 전무출신 양성에 사랑과 정성을 다해, 교단의 동량인 전무출신을 40여 명 배출했다"며 "연원교당을 개척하고 교단의 각종 불사에 크게 기여하는 한편 영모묘원 건설에 심혈을 기울여 선진제위의 보본사업에 큰 공덕을 나퉜다"고 회상했다.

원기24년 도양교당에서 입교한 원정사는 운타원 조만식 대봉도의 추천으로 전무출신을 서원했다. 원기24년 영산선원 공양원을 시작으로 관촌·신태인·용각·운봉·완도·교동·대전·초량교당 교무를 역임했고, 원기63년 부산교구 교구장 겸 부산교당 교감, 영모원 원장으로 헌신했다. 원기67년 정식법강항마위에 승급한 후 원기73년 대봉도, 원기76년 종사 법훈을 수훈했고, 정년퇴임한 뒤에도 영모원 교령으로 공사를 맡았다.

출가교도 고사에서 김주원 영산선학대총장은 "균타원 원정사께서는 일생 공부하는 구도자, 사업하는 구도자, 봉공하는 구도자로 교단의 뜻에 따르기 위해 노력했다"며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자신의 내면을 밝혀 삼대력을 얻고, 세세생생 이 교단에서 제생의세하는 일꾼이 되는 것이었다. 노환으로 기력이 떨어진 가운데 일과를 엄수했고, 기도적공에 빈틈이 없으셨던 스승님이었다"고 추모했다.

재가를 대표해 이춘일 전 중앙교의회 의장은 "40여 년 전 균타원 원정사와 대전교당에서 처음 법연을 맺었다"며 "부산교구장 재직 시에는 숙원사업이던 교구청 건축에 온 힘을 다해 봉불했고, 교구의 어려운 살림을 얼마간이라도 해소하기 위해 청소부도 내보내고, 교당에서 자치적으로 관리를 하는 등 근검 저축하며 제주 국제훈련원과 삼동원의 건축기금에도 기여했다"고 회고했다.

균타원 원정사는 세수 92세, 법랍 73년11개월, 공부성적 정식출가위, 사업성적 정특등4호, 원성적 정특등으로 원불교교단장으로 거행됐다. 종재는 12월10일 오전11시 총부 반백년기념관에서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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