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미처 몰랐네, 생전 천도 목표로 공부

▲ 미주서부교구 LA교당 홍범익·이영옥 교도 부부. 출국을 앞두고 10월24일 화산교당 응접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70대에 미국 이민 길을 단행한 부부. 그리고 2년 만에 영주권을 얻은 LA교당 홍범익(86)·이영옥(81) 교도 부부. 아내 이영옥 교도는 "막내딸이 미국에 간호사로 있다. 우리들이 조금이라도 건강할 때 한번 모셔보고 싶다고 언제든지 오라고 해서 방문한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의 일은 이제 마쳤으니 저희들하고 살면 좋겠다"며 "기회를 달라고 하기에 미국에 눌러 앉게 됐다"고 이민 동기를 말했다.

2005년 10월 방문비자로 갔다가 딸이 신청한 영주권으로 8년 만에 미국시민권까지 갖게 된 홍범익·이영옥 교도 부부를 만났다.

오랜만에 한국에 온 이 부부는 "서울교구에서 봉공회 활동을 하던 옛 도반들과 이제는 원로교무가 된 당시의 교당 교무님을 최대한 많이 만났다. 여한이 없다"며 행복해 했다. 홍 교도 부부는 '이민생활 경계 극복과 노년의 삶'에 대해 진솔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80대, 늦지 않은 직장생활과 공부

"너무 늦은 나이에 큰 용기를 낸 것이다." 부부의 첫마디다. 낮선 미국에서 첫 경계는 '언어적인 장애'였다. 홍 교도는 "자발적으로 중증 장애인이 된 것이다. 말도 못하고 듣지도 못해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계속 살아야 하기에 학원 다니면서 공부를 했다"고 밝혔다.

그는 "사위도 잘 해줬다. 하지만 미국에서 2년 정도 살다보니 가진 돈을 다 써버렸다. 딸이 용돈을 주는데 주는 사람은 돈 떨어진 줄 모른다. 그렇지만 쓰는 사람은 금방 떨어진다"며 "아무리 자식이라 해도 빈번하게 말하기가 어려웠다. 딸은 늘 바쁘니 챙겨 놓고도 잊어버리기도 했다. 자식 관계이지만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자력생활을 하기로 다짐했다"고 말했다. 대종사님 말씀대로 해 보자는 각오를 한 것이다.

이 교도는 "나이 70이 넘으니 성인병도 있었다. 가지고 간 약도 다 먹고 현지에서 약을 구입하려니 어렵고 비싸기도 했다. 한국에서 보내오는 것은 허가도 받아야 했다"며 "영주권도 나왔으니 약을 현지에서 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보자"는 의기투합을 하고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다. 부부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건강정보센터에서 의료신청을 했다. 이후 인터뷰를 한 후 의료수혜자격을 받게 됐다. 또 건강정보센터 직원에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수 있을까 문의한 결과 길을 알게 된 것이다.

6개월을 기다린 끝에 연락이 왔다. 홍 교도는 "2곳에 가보라는 연락이 왔다"며 "먼저 보건소에 갔다. 인터뷰를 하고 바로 일하게 됐다. 근무 시간은 1주일 20시간, 하루 4시간씩, 급료는 시간당 8불이었다"며 "용돈으로 충분했다"고 고백했다. 이후 아내도 직업 신청 1주일 만에 근무 연락이 와서 함께 직장을 다닌 것이다. 부부는 함께 모은 돈으로 딸이 하고 싶어 하는 공부를 시키는 등 보람찬 일상을 보냈다.

부부는 또 하나 서원을 세웠다. '독립을 위해 아파트'를 신청한 것이다. 미국사회는 영주권을 가진 나이 많은 사람은 아파트를 신청할 수 있다. 그런데 4년 만에 아파트가 나온 것이다. 이웃 사람들은 "7~8년을 기다려도 나오기 어려운데, 행운이다"고 부러워했다.

부부는 "'사은님 이것만은 이루게 해 주세요'하고 기도하며 감사생활을 해 왔다. 그 결과 이뤄지지 않은 것이 없었다"며 "꼭 어떤 사람이 우리를 이끌어 주는 것 같다. 오롯이 오직 한 길 우리가 서원하는 길만을 가기 때문에 아마도 일이 잘 풀리는 것 같다"는 고백도 했다.

홍 교도는 지금도 직업을 갖고 일을 하고 있다. 이 교도는 LACC대학 시니어반에 등록해 공부를 하고 있다.
그는 "학습활동을 하기에 정신력도 건강해 지는 것 같다. 금생만 있다면 골치 아프다는 핑계로 공부 그만 하고 싶지만 내생을 준비한다는 입장에서 꾸준하게 공부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실 한국에서 80대라면 활동이 어려웠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부부는 "이 법으로 살아왔기에 낯선 미국에서 그런 도전이 가능했다. '자력생활을 해야한다'는 의식이 오늘날 우리를 있게 했다"고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홍 교도는 퇴근해 집에 들어 설 때마다 큰 소리로 외친다. "마이 해피하우스. 모두가 은혜입니다."

UCLA대학 시신기증도

이 교도는 "대종사님은 나이 40이 넘으면 죽음 가는 보따리 챙기라고 하셨다. 과연 우리가 싸야할 보따리 뭔가. 뭘 싸야 한다는 것인지 잡히지 않았다. 그러나 서원일념의 보따리와 마음의 힘을 싸야 겠다"는 생각을 밝혔다. 이제 인생의 해시계가 서산에 기운 것이니 서둘러야 한다는 의미다.

홍 교도는 "우리가 시신기증을 했을 때 노화로 안구나 장기를 활용하는 가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연구 재료는 될 것이라 생각했다. 빈껍데기가 된 육신을 화장해서 강에 뿌리는 것이나 매장을 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었다. 그러니 기증을 하기로 한 것이다"고 과정을 설명했다. 몸을 내 놓아 후학들에게 도움이 되겠다는 것이다.

부부는 2년 전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UCLA대학에 시신기증 신청서를 냈다.

홍 교도는 "기증을 하고나니 마음이 참으로 가벼웠다. 이제 해야 할 일을 다 한 것 같은 느낌이다. 아무런 착심이 남지 않는다. 거추장스러운 것이 일시에 사라진 것처럼 홀가분하고 기뻤다"는 당시의 상황을 웃으며 설명했다.

도반으로 살아온 이 부부는 '죽음도 벗 삼아 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는 것이다.

'애별이고(愛別離苦)'에 대해 일기를 쓴 이 교도는 "제일 헤어지기 어려운 것이 육신임을 알았다. 자녀, 남편 보다 더 애착이 가는 것은 결국 내 육신이었다. 이제 처리할 곳이 생기니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는 고백이다. 사후 천도재가 아닌 생전 천도를 목표에 두고 공부하는 부부다.
▲ 홍범익 교도의 시신기증 카드.

법랍 62년 만에 공부인 되다

요즘 〈정전(正典)〉에 대조하며 일기를 기재하는 재미에 푹 빠진 부부.

"벌써 법랍 62년이다. 그동안 우리 공부가 항상 아닌 마음 나오거나, 안 나올 마음 나올 때 그 마음 제대로 받아주지 못하고 내 공부 내 수양만 탓하고 간섭하여 왔다. 그러니 괴로웠다. 이제라도 일기기재를 통해 공부인의 방향로를 알게 됐다. 일어나는 마음이 진리이고 묘유로 받아들이는 공부를 하며 이 공부를 하고 있는 중이다."

이 교도는 "일어나는 마음을 보면 웃음이 나온다. 어느 때는 길을 가다가도 웃는다. '그 마음이 나오네' 인정하며 많이 웃는다. 무척 공부가 쉬워졌다"고 솔직한 속내를 드러냈다.

홍 교도는 "91쪽 되는 〈정전〉을 너무 소홀하게 공부했다. 지나간 50년 세월이 아깝다"며 "이제라도 제대로 해야지"하는 마음을 다 잡고 일기 기재를 시작했다.

"예전에 미처 몰랐었다. 그 경계마다 그 일마다에서 그 공부의 방향로를 알게 하는 것임을…." 100% 경계를 수용하는 마음의 힘을 갖춰가는 부부. 오늘도 부부의 행복한 웃음 소리가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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