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헌 개정은 교화비전 담아내야

▲ 박중훈 수위단회 사무처장이 원기98년 출가교화단 총단회에서 교헌 개정 경과 보고를 하고 있다.
원불교 100년을 앞두고 교단의 가장 큰 고민은 교화 과제라는데 이의가 없을 것이다. 통계치를 떠나서 새로운 개벽문명 세상을 향한 새 회상 원불교의 개교 취지를 세상에 충분하게 전달하고 있는가에 대하여 답은 그렇게 확신적이지 못하다. 무엇인가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하다는 막연한 공감대는 있지만 그것이 딱히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아직은 명료하게 통합된 견해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즈음에 교헌개정의 문제가 가시화 되고 있다. 제203회 수위단회 개회사에서 경산종법사께서 교헌 개정의 필요에 관한 유시(諭示)가 있은 뒤로 대중의 관심이 고조되면서 논의가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지난 주 마감된 금년 총회는 교헌개정특별위원회를 출범키로 했다. 굉장히 발 빠른 행보다. 실은 이미 정책연구소와 함께 100년성업회 내에 혁신분과를 출범하면서 교단 변화의 필요가 깊숙이 개진된 바 있었으나 크게 탄력을 받지 못하였고, 미주 원달마 센터 출범을 계기로 미래지향적이고도 글로벌(Global)한 교화 논의의 필요가 일부 제기되었으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유는 단 한가지, 개교 100년의 기념사업의 범교단적인 합력이 요구되는 시점에 혹여 에너지의 분산과 혼선을 빚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고 그것은 충분히 이해되고 공감될 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하이원 빌리지 사태이후 최근 육영기금 관리부실 문제로 심각한 내홍의 아픔을 겪으면서 교단 운영의 총제적인 혁신 주장에 힘이 실리게 되었고 그 결과가 교헌 개정으로 귀착된 셈이다. 따라서 교헌 개정의 논의는 무엇보다 글로벌하고 미래지향적인 교단의 총체적 혁신을 담아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렵게 논의를 시작한 교헌 개정 과정에서 가장 염려되는 것 중에 하나는 자칫 교단의 권력구조 등 몇 가지의 한정된 논의에 그칠까하는 점이다.

물론 권력구조 문제는 교단 혁신을 끌어내는 단서가 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일이기는 하지만 세상이 기대하고 대중이 원하는 혁신의 모든 것을 담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생각한다. 이 때 무엇을 위한 혁신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는데 총체적 혁신을 이끌어 낼 키워드는 역시 총체적 의미의 교화, 새로운 문명 세상에 대한 비전을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교단이 세상에 대하여 교화적 사명을 다하지 못할 때 그 존재 의의를 잃어버리게 되고 그렇게 되면 세상이 우리를 외면할 것은 자명한 일 아닌가. 우리가 이번 교헌 개정에 위기의식을 가지고 총체적 혁신을 주문하는 이유이고 배경이다.

그러므로 그 논의의 기저는 이미 대종사께서 〈불교혁신론〉을 통해서 밝혀주신 새로운 불교, 새로운 문명세상의 비전들을 다시 드러내고 현재 우리가 어디쯤에 서있는가를 뒤돌아보는 일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중세 로마 카톨릭이 신자들로부터 민심이 이반되던 때 마틴 루터는 95개 조항의 대자보를 통해 종교개혁을 주창했다. 그 내용을 들여다 보면 하나님을 향한 모든 성도(聖徒)들의 속죄와 참회로부터 시작하여 교황(敎皇)의 무오류성과 절대적 순종에 대한 반론, 사제들의 신도에 대한 일방적 지배,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미신적이고 왜곡된 신앙행위에 대하여 강도높게 비판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지금 우리가 한번 쯤 깊숙이 음미해볼만 한 대목이 많다고 여겨진다.

1960년대 천주교의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오늘날 세계 천주교 발전의 초석이 된 것으로 평가받고 있고, 한국 천주교의 성장도 이에 기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를 들면 천주교는 이전까지만 해도 자국의 언어로 미사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로마 중심의 고답적이고 폐쇄적인 공동체였다고 한다. 그 때 채택된 문헌들을 제목만이라도 열거해 보자면 공동체의 하나님에 대한 경배와 신심, 그리고 신앙의 쇄신과 능동적 참여를 규정한 전례(典禮)헌장을 비롯해서, 교회란 무엇인가, 사목(司牧)은 어떻게 하는가, 그리고 이 외에도 교회일치운동, 수도생활의 쇄신, 사제양성, 평신도의 역할, 종교교육의 방향, 종교자유의 선언, 매스미디어와 출판의 이해 등의 주제를 매우 정교하고 세련된 문장으로 담고 있다.

한국 천주교가 올해 다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개막 50주년을 기념하여 '새로운 복음화'라는 기치를 내걸고 공의회의 개혁 정신을 되새기며, 공의회에서 전망하고 지향했던 공동체를 향해 올바르게 가고 있는지 자기 성찰을 하고 있는 점들은 타산지석(他山之石)을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 9월 '교단혁신을 위한 재가·출가 연대'가 출범하면서 채택했다는 선언문을 보면 혁신의 절박함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이들은 선언문에서 '개교 100주년의 제일 성업은 교단 혁신이며 혁신은 원불교가 가진 태생적 생명력이다(중략) 초기 교단의 혁신성을 계승하지 못하고 오랜 교화 정체와 불합리한 재정운영, 출가위주의 비민주적인 교정 운영, 부적절한 관행과 독선적인 구조 등으로 교도들의 자부심이 상처받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범교단적인 혁신을 요구하고 나섰다. 교단사에서 혁신을 주제로 재가 출가가 연대해서 나선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하지만 막혔던 논의의 장이 열렸고 계기가 마련됐다. 경산종법사는 203회 수위단회 개회사에서 "대중의 공론을 모아 교헌개정을 하고 교단의 전 분야에 걸쳐서 세상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 교단혁신을 이뤄가자"며 그동안 끝없이 논란되어오던 "여성교역자 복장문제와 공동생활문제, 재가 출가의 역할분담과 합력, 수도권교화를 위한 총부역할의 서울진출, 합리적이고 효과적인 교단경제 및 금융운용"등을 예로 열거하며 적극적 의지를 천명했다.

이외에도 대종사 당시부터 논의되어오던 세대 전무출신의 문제, 전무출신의 후생대책문제와 관련한 직업종사의 문제를 포함해서 최근 현안이 되고 있는 교무양성기관의 통합과 교무양성과정의 제문제, 기복(祈福)신앙의 문제 등의 현안이 이제는 기피되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제 100년성업의 주된 기조는 혁신으로 옮겨졌다. 교화대불공(敎化大佛供)도 혁신기조 하에 논의해야 하고 자신성업봉찬(自身聖業奉贊)도 쇄신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조급할 이유도 없다. 머뭇거릴 이유도 없다. 이번 교헌 개정 논의가 미래지향적이고 글로벌한 교화비전을 이끌어내고 이런 과정이 교단 대중의 새로운 통합과 동력을 결집하는 적극적인 리더십을 창출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과감해졌으면 좋겠다. 작은 장애요인을 핑계로 숲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원각성존(圓覺聖尊) 소태산대종사의 문명에 대한 혁신정신을 계승하고 이 혁신 운동이 루터의 종교개혁이나 가톨릭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혁신을 능가하는 교단사에 길이 남을 정신운동으로 원불교 교화의 르네상스(Renaissance)로 승화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당부하고 싶은 것은 교단의 혁신과 교헌개정이라는 막중한 과업에 남녀노소, 출가 재가가 적극 동참하자는 것이다.

혁신을 주장하면서 동참하지 않는 것은 민주주의를 요구하면서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그래서는 민주주의를 성공할 수 없는 것처럼 혁신의 성공을 보장받을 수 없다. 또 막연한 비판보다는 자기 생각과 주장을 충분하게 개진하는 문화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동안 가슴을 열고 마음껏 논의 할 수 있는 장이 많지 않았다는 점은 인정할 수 있지만 이제는 공론화된 이상 모든 매체들도 논의의 장을 충분하게 제공해야 하고 또 대중은 적극적인 참여로 응답해야 한다.

또 이 과업과 관련하여 중추적인 책임을 가질 수밖에 없는 수위단회와 교정원도 열린 마음으로 함께하고 대중은 적극 참여함으로써 아름다운 소통과 합력의 리더십을 발휘해 줄 것을 충심으로 바란다.
▲ 김경일 교무/경남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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