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우삼 교도 / 경주교당
반야심경에 무색성향미촉법이라 하였으나 소위 육입이라고 하는 이것을 우리는 살아있는 한 외면할 수가 없다.

시각(眼)은 눈을 감거나 고개를 돌림으로써 그 대상을 일시적으로 피할 수도 있지만, 청각(耳)은 자신의 의지만으로는 좀처럼 그 대상을 선택 혹은 거부할 수 없는 인간의 감각이다. 음악은 청각을 통하여 인간의 심성을 움직이는 예술이다. 음악이라고 하지만, 넓은 의미로 보면 청각에 의한 모든 활동에 음악적 요소가 들어있다.

원불교의 각종 의식에서는 경종·죽비·목탁·독경·성가 등이 음악적으로 잘 연동 되어야 그 의식이 매끄럽고 품위가 있으며, 참여자로 하여금 깊은 신앙심과 자존감을 갖게 할 수가 있다.

종교 의식에서 일체감이나 통일성을 너무 강조하여 군대식의 딱딱한 집회가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가능하다면 사회자는 질서 유지와 분위기 조성에 힘을 써서 모든 절차가 자연스러우면서도 통일성이 있도록 대중을 유도해야 하며, 교단에서는 그렇게 할 수 있는 표준 매뉴얼을 제시해야 한다.

어떤 의식에서 반드시 교가를 해야 하는지, 심고, 독경, 성가 등이 끝나고 합장 혹은 경례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어정쩡할 때가 있다. 여기에 대한 명확한 지침을 누구나가 알 수 있게 내려주어야 하며, 신입교도에 대한 최소한의 교육이라도 있어야 하겠다. 법에 너무 얽매이는 것도 문제이지만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생각은 최선에 대한 고민의 부족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원불교 의식의 거룩함과 신앙의 대상을 향한 간절한 마음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첫째, 의식에 참여한 대중들은 모든 과정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의식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특히 성가를 할 때는 미리 그 곡을 충분히 연습하여 가사의 의미를 드러내는 것은 물론, 대중이 하나되는 일체감을 조성하고, 음악적 감흥을 살려 깊은 감사와 다짐, 신앙심과 공부심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성가를 잘(못)하는 것과 개인의 신앙심과는 별개이지만, 누군가가 대중과 이질적인 소리로 노래한다면 그 분위기를 흐트릴 뿐만 아니라, 듣는 이로 하여금 불쾌감을 주기에 충분한 연습이 필요하다.

둘째, 원불교의 모든 의식에서 심고와 기도는 최고의 정성으로 감사와 소원을 기원하는 중요한 순서이다. 그런데 설명 혹은 묵상심고 후에 대중이 함께 심고가를 직접 부르는 것은 간절한 심고의 분위기가 단절되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대중이 합장하고 있는 상태에서 심고가 대신 피아노보다는 오케스트라·오르간·합창 등의 부드럽고 풍성한 화음이 은은히 울리는 짧은 음악으로 심고를 마무리했으면 좋겠다. 무반주로 하는 심고가는 시작도 어색할 뿐 아니라, 저마다 다른 조성으로 노래하여 심고의 마무리가 너무나 산만한 느낌이 든다. 지금 우리의 여건상 합창단이나 오르간 연주도 불가능하다면 전문가의 연주를 녹음하여 적시에 울리게 하는 것도 좋은 대안이라고 생각된다.

셋째, 인력과 재원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교단의 음악 문화를 이끌어가는 훌륭한 출가 재가 교도들이 있기에 합창단이나 오케스트라, 국악연주단 등이 조직 운영되고 있다. 이는 정말 고맙고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반면, 대부분의 교당에서는 너무나 열악한 음악적 환경 탓으로 심오한 종교음악을 접할 기회는 적고, 대중들의 인기에 편승한 음악으로 흥취를 돋구는 경우도 종종 있어 왔으나, 이는 절대 남용되어서는 안 되겠다. 법당에서 울려 퍼지는 경종, 목탁, 염불, 성가 소리는 언제나 신비롭고 경건하여 주변을 지나가는 사람들로 하여금 저절로 손이 모아지고 옷깃을 여미게 해야 하며, 육도 중생도 귀를 기울이고 제도 받기를 갈망하게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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