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 원전 반대 지역공감
매주 월요일 22㎞ 걸어
광주전남지역 이웃종교 동참

영광핵발전소 안전성 확보를 위한 원불교대책위(이하 원불교대책위)의 생명평화탈핵순례 역사는 원기97년 11월26일 시작됐다. 영광군청을 시작으로 영광읍과 법성, 홍농을 거쳐 영광원자력발전소까지 닿는 22킬로의 여정은 26일 오전 10시 반 기도식으로 시작했다.

혹한의 날씨 속에 진행된 초창기 순례에 먼저 발길을 보탠 것은 이웃종교인들이었다. 원불교대책위의 간절한 바람과 적극적인 행동에 감동해온 개신교·불교·천도교·천주교 성직자와 신자들이 서서히 순례를 찾았다. 12월17일 4차에는 광주전남지역의 목사와 장로들이 참석해 기도식을 열었다. 원불교의 탈핵순례가 이웃종교의 기도식과 함께 하는 범종교 행동이 된 기점이었다.

매주 월요일마다 영광군청에서부터 원전까지 걷는 생명평화탈핵순례는 지역사회에도 빠르게 스며들었다. 원기98년 1월 8차 순례에는 영광군공동행동의 회원 7명이, 9차 순례에는 홍농 범대위 공동의장 주경채 농민회장이 참여해 지역과의 소통과 협조를 보여줬다. 이후 영광여성의전화, 영광함평·전주 한살림, 함평군농민회, 광주YMCA, 생명평화마을 등이 참여해오고 있다.

1월부터 교무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순례는 짜임새를 갖춰갔다. 참가자가 10명 미만일 때도 있었지만, '공간'을 지켜가는 힘에 대한 반향이 컸다. 인근 교회와 천도교 한울연대의 고정 참가자들이 늘어나고, 순례는 종단 간 탈핵과 생명평화를 위한 논의의 장이자 지역사회를 위한 종교인들의 토론회 역할을 하게 됐다. 6월 핵발전소 비리가 언론이 불거지면서 이른바 '핵마피아'에 대한 규탄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이웃종교들의 참여율을 더 높아졌다.

원불교대책위는 탈핵순례를 이어가는 한편 탈핵을 위한 보다 적극적이며 구체적인 방안도 고민했다. 원기97년 12월 재사고가 발생한 영광핵발전소 5호기 중단을 건의하는 1인시위를 진행했으며, 원기98년 3월 '영광 핵발전소 안전성 확보를 위한 원불교 대책위'를 출범시켜 영광교구·광주전남교구·전북교구·영산성지공동체·원불교환경연대의 수장들을 대표단으로 위촉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계속되는 순례는 명절에도 이어졌다. 참석저조가 염려됐던 설명절에는 한겨레중고등학교 생명살리기 동아리 교사와 학생 5명이 참석했다. 매주 이어지는 다양한 참가자들의 행렬 속에서 신조어도 생겨났다. 부모와 자녀 모두가 참석하는 '핵가족', 버스정류장에 자리를 깔고 점심공양을 하는 '공양 뷔페', 핵없는 세상을 위해 힘차게 걷는 '무지개용사' 등이다.

8월 역사적인 폭염 속에 진행된 40차 순례에는 경산종법사와 영산성학대학교 이성원 부총장을 비롯한 교직원과 학생 50여명이 참여했다. 핵발전소 비리와 먹거리에 대한 불안, 밀양송전탑 사태 등으로 탈핵에 대한 국민들의 의식이 높아짐에 따라 교단에서의 위상과 무게도 달라진 것이다.

반년이 넘은 순례는 가시적인 성과도 얻었다. 9월 2일 부실시공으로 밝혀진 영광 한빛2호기에 운행중지가 결정된 것. 그러나 중지시기가 위원장 권한으로 맡겨져 10월 29일까지 운행됐고 19일만에 '이상 없다'는 결과를 내놓으면 11월 18일 재가동됐다. 생명평화탈핵순례는 고통에 신음하는 전국의 다양한 곳도 찾아갔다.
8월 22~24일에는 영주댐 문제로 정부와 주민들이 첨예하게 대립한 영주와 내성천, 영양을 찾았으며 10월 47차 순례는 영광과 밀양 두 곳에서 동시에 진행되기도 했다. 이제 광주전남지역에서 '생명평화탈핵순례'는 원불교의 또다른 이름이다. 광주전남과 영광 교구 교무들의 자발적 참여는 물론, 영산선학대학교대학원의 예비교무들의 묵묵한 걸음을 보며 '원불교가 종교의 몫을 제대로 한다'는 지역민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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