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활동, 수행과 사회적 실천 아울러야
미얀마, 티벳 정신문명 희망지
동·서양문화 도덕문명 승화

▲ 경산종법사가 법륜스님과 도덕문명에 바탕해 물질문명을 발전시켜나자는 등의 환담을 나눴다.
천일기도 회향으로 익산에 내려온 법륜스님이 15일 중앙총부 종법원에서 경산종법사를 예방하고 환담을 나눴다. 경산종법사는 "깨달음의 장과 책 출판으로 제중사업을 열심히 하고 계셔서 좋다"며 반갑게 첫 인사를 건넸다.

법륜스님은 "요즘은 옛날에 비하면 밥 먹고 살만한데 사람들이 마음엔 밥 먹고 살기 어렵다고 한다"며 "이제는 물질적으로 할 것은 없고 마음가짐을 잘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대중적으로 마음가짐에 대해 이야기를 펼쳐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산종법사는 평화재단 이사장이기도 한 법륜스님에게 통일 분야 등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격려했다.

경산종법사는 "이 시대의 멘토로 세상에 행복을 전하고 있는 활동을 응원한다"며 "불교와 원불교 등이 서로 힘을 합해 도덕문명에 바탕하여 물질문명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종교활동을 해가야 한다"는 내용으로 대화를 마쳤다.

전통불교, 개조불교, 새불교

경산종법사는 9월 태국 방문에서 느낀 불교의 활동을 전했다.

경산종법사 - 태국은 전통불교를 찾는 불자들이 많은 것 같다. 전통불교도 있고, 교리를 약간 고친 종단, 원불교처럼 새롭게 만든 불교 등 세 가지로 분류돼 있다. 이러한 분류들이 이해관계를 떠나 합력으로 세상구원을 잘 했으면 좋겠다.

법륜스님 - 태국은 전통불교를 따르는 좋은 점도 있다. 그러나 국가권력과 결부되어 있는 점도 있다.

이어 경산종법사는 태국 내 불교의 현대화와 참여불교에 대해 의견을 개진했다.

법륜스님 - 사회활동에 신념을 갖는 불교도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워낙 전통이 강해서 전통 수행을 고수하는 반면 권력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사회적 종교 활동이 제한되어 있다. 국가가 산업사회로 바뀔 때 일반적으로 전통이 깨지기 쉽다. 이웃나라에서 노동자들이 몰려오기 때문에 본토인들은 많이 혼란스러워 하는 측면이 있다. 문화적으로 서구화가 되는 과정에서 우리나라도 기독교가 급속도로 번창했다. 전통을 고수하는 스리랑카, 미얀마 등지에서는 이러한 것을 대비해야한다. 전통 수행을 고수하는 불교와 산업화 과정에서의 문화 융합이 잘 이뤄져야 한다는 의미이다.

경산종법사 - 결국에는 서구적 가치, 기술, 동양적 사유방법, 도덕성 이런 것들이 융화되는 것 같다. 어떻게 갈등없이 융화할 수 있느냐는 차이다. 우리가 볼 때 서구과학문명과 동양의 문명이 잘 섞여가는 과정으로 보인다. 되도록 갈등이 적고 선순환으로 잘 융합되길 희망하고 있다. 결국 과학문명과 도덕문명이 결합되어야 한다. 개화기 시대 기독교는 학교, 의술 등 여러 가지 과학문명을 가져왔다. 안 받아들일 수 없는 처지였다. 지난해 미국의 청년들을 만났는데 소승불교를 배워서 그렇게 불교를 이식시키고 있는 것 같았다. 자연스럽게 그 어떤 그룹이 있는 것 같았다. 희생하지 않고 그렇게 되면 참 좋겠다.

법륜스님 - 소태산 대종사님 말씀처럼 서구문명이 물질개벽이라면 아마 동양문명이 그것을 기반으로 해서 정신개벽을 하는 과정이 될 것 같다.

경산종법사 - 동양문화가 서구의 기술적인 과학문명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구태의연한 도덕성만으로는 세상을 향도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동양과 서양을 다 보기 때문에 그러한 세계로 전환해 갈 것이라 본다.

영육쌍전의 가치 실현해야

법륜스님 - 현재 동양 정신이 가장 잘 보존된 곳이 미얀마에서의 수행법이다. 그 다음은 티벳이다. 아직 산업화가 이뤄지지 않은 두 나라가 과연 미얀마와 티벳이 산업화 과정을 잘 이겨 내느냐 하는 것이다. 소비주의라는 물질문명의 유혹에도 끌리지 않을 것인가 이것이 관건이다. 현재 미국에서는 미얀마의 위빠사나로 정신개혁에 영향을 주고 있다. 티벳의 달라이라마 역시 영향력을 주고 있다. 그러나 본토가 산업화 되었을 때도 유지 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중국은 티벳에 빠른 속도로 산업화를 진행하고 있다. 그렇게 티벳을 변화시키는데 과연 현재의 정책을 유지 할 수 있겠는가.

경산종법사 - 어떻게 보면 오래 묵어있는 묵정밭을 뒤 엎어서 종자를 심는 형식이다. 새 문명을 받아들일 때 항상 약자편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과거의 것이 온전하게 현대사회에 적응하는 것은 어렵다고 본다. 결국 실사구시 실용주의로 갈 것이다. 확실하게 한판 바뀌는 시대를 맞이했다. 결국 티벳도 우리책임이다. 새롭게 받아들여서 나가야지 온전히 지킬 수는 없다고 본다. 새롭게 나아갈 것이다. 원불교식으로 영육쌍전이 되어야 한다. 영적인 것만으로는 살 수 없다. 존재적인 육신의 것만으로도 안된다. 영적인 것과 경제적인 현실이 잘 조화되나 주종만 다르다. 결국 전통적인 불교에서 새로운 것이 잉태되어야 된다. 이렇게 보고 있고 정도의 차이는 있을 것이다.

법륜스님 - 대만에서는 자제공덕회가 성공적으로 운영 중이다. 좋은 점은 전적으로 사회참여를 하는데 그 시작이 여성이다. 남자가 아니다. 전세계 자원봉사자 1천만 명 중 대만에 4만여 명이다. 환경운동, 교육 등을 중시한다. 이런 몇 가지에서 실험을 넘어 성공적인 사례를 보이고 있다. 한국에서는 원불교가 사회참여를 잘하고 있다. 사회적 실천이 좀 미약하기는 해도 소태산대종사님이 영육쌍전을 밝혀주셨고 이를 추구해가려하는 것이 그 출발점이다. 종교의 현대화가 같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보아진다. 성공적이라 본다.

종법사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하려면 사회적 실천이 좀 더 비중이 높아져야 한다. 위빠사나 수행이나 티벳불교가 미국에 들어갔어도 영혼을 안정시키는 역할만 한다. 사회적 실천이 미진하다. 서구사회에서 지친영혼을 감싸 줄 뿐 적극적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다음단계인 수행과 사회적 실천이 동시에 될 수 있도록 영향력을 펼쳐야 할 것이다.

경산종법사 - 밖에서 원불교를 좋게 봐주고 기대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안에서 볼 때는 적극적 활동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다.

교리실천을 위한 사회참여 후원

법륜스님 - 교무님들의 사회적 활동을 지지한다. 종법사님도 정신적 후원을 해 주셔야 할 것 같다. 기성단체가 되면 균형을 이뤄야 한다. 교단이 사회적 교리 실천이나 참여를 못하게 막는 일은 없어야 한다. 분리를 해 주는 방안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는 천주교가 참 잘하고 있다. 배울 점이라 본다.

경산종법사 - 대종사님은 정교분리를 말씀하셨다. 전공분야가 다르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아픈 사람은 병원으로 가서 치료하고 종교는 마음의 안정을 주라는 것이다. 그러나 정교분리에서 정교동심을 재차 말씀하셨다. 분리도 하면서 또 협력도 하라는 것이다. 정치는 엄부와 같은 법을 주재하고, 종교는 자모인 어머니와 같다. 즉 자비인 것이다. 이 둘이 서로 잘 협력할 때 사회적 평화를 가져오고 진보하는 이상사회가 될 것으로 봐왔다. 그런데 지금 정치와 종교라는 게 구분이 애매할 때도 있다. 도덕성의 문제도 저변에는 존재한다. 그러니까 갈등이 있다.

법륜스님 - 지나치게 정치, 권력화는 경계해야한다. 역사적으로 동학이 좋은 뜻이었다. 하지만 희생자가 엄청나게 많았다. 소태산대종사는 그 문제를 깊이 보신 것이라 느껴진다.

경산종법사 - 당시 그 분들은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기성 사회의 찌든 현상들을 뒤집었다. 뒤집히지 않았다면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지 않았다. 예수님 당시도 마찬가지였다.

법륜스님 - 당시 소태산대종사님은 불교의 틀을 벗어났다. 불교에서도 용성종사 역시 불교의 틀을 그대로 갖고 전통불교의 틀을 벗어나려 했다. 그러나 기성의 틀에서 결국 벗어나지 못했다.

경산종법사 - 새로운 분은 기존 언어에 오염되지 않는 것 같다. 대종사님도 그런 말씀 하셨다. 과거의 것과 단절되었을 때 새로운 것이 와진다. 대종사님도 깨달으신 이후에 〈금강경〉 등 여러 경전 보셨다. 그 중 석가모니불을 성중성이다고 하시고 맥을 대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佛)자를 쓰셨다. 그리고 예언하셨다. 불교가 장차 세계의 주세 교단이 될 것이다. 그래서 원불교에서는 불교 공부도 한다. 전통불교, 개조불교, 새불교 등이 힘을 합쳐 물질문명인 서구 문명을 향도할 책임이 있다. 이러한 사명아래 우리는 늘 불교와 같이 일을 한다 생각하고 있다.

법륜스님 - 백용성 스님은 전통불교에서 개조를 하되 불교 안에서 했다. 당시 이름도 바꾸었다. '대각교'라 하고 '스님'이라 부르지 말고 '선생'이라 불렀다. 획기적으로 모든 의식을 바꿨다. 그러나 전통의 언어를 버리지 못했다. 하지만 원불교는 작지만 지금의 모습으로 독자성을 갖췄다. 전통적인 불교 안에서 독자성은 힘을 쓸 수가 없다. 또 그대로 들어가기에는 근본적으로 가르침이 다르다. 그래서 어려움이 있다.

경산종법사 - 언어의 개념이나 구조에 자기 생각을 담을 수밖에 없다. 우리들도 원불교적 언어에 익숙해져 있다. 새로운 것을 할 때는 확실히 대중의 언어로 바꾸어 스님 말씀을 실천해 보도록 노력하겠다. 결국 불법시생활 생활시불법(佛法是生活 生活是佛法)이다.

법륜스님 - 바쁜 시간 예방을 허락해 줘서 감사하다. 소태산대종사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이 가장 큰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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