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읽기를 통한 내 마음 읽기

지금 나는 원음방송에서 평일 아침 7시에 방송되는 시사프로그램 '민충기의 세상읽기'를 만들고 있다. 이 프로그램을 맡은 지 어느덧 2년이 지났고 이번 가을 개편 때도 계속 프로그램을 맡게 되었으니 당분간은 '세상읽기'를 계속 제작하게 될 것이다. 지금은 매일 새벽 출근해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자연스러운 나의 일상이지만, 시사프로그램을 처음 맡게 되었을 때는 솔직히 말해서 불편하고 맞지 않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방송국에서는 보통 봄, 가을 프로그램 개편을 통해 새 프로그램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담당 프로듀서가 바뀌기도 한다. 하지만 PD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프로그램을 맡게 될 지는 전혀 알 수 없다.

개편 발표 이후, 내 머릿속에서는 내가 시사프로그램을 하면 안 되는 이유들, 좀 더 정확히 말해서 내가 하기 싫은 이유들이 수없이 떠올랐다. 우선 집이 먼데 새벽에 일찍 나와야 한다는 점, 입사하고 줄곧 지내던 정든 라디오국 사무실을 떠나 보도국으로 가야한다는 점, 그리고 뉴스를 종일 모니터 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음악과 이별해야한다는 부분이었다. 다른 직업을 모두 마다하고 라디오 PD를 직업으로 선택한 가장 큰 이유가 음악인데, 날개가 꺾이는 느낌이었다. 물론 음악프로그램을 만들지 않아도 혼자서 음악을 들으면 되지만 나에겐 일상이고 일이었던 음악과 떨어져서 일해야 한다는 건 당시의 나로서는 나름 심각한 고민이었다.

고민과 두려움에 지쳐가면서 개편날짜는 하루하루 다가왔다. 개편 후 예상대로 얼마동안은 계속 우울한 마음이 이어졌고 내가 본 내 모습은 무척 어색했고 마치 남의 옷을 입고 있는 듯 했다. 거기다 매일 군대 기상 시간보다 이른 시간인 새벽 4시에 일어나다 보니 피로가 누적되고, 가수 섭외는 하루에 열 명이라도 하겠지만 처음 하는 정치인 섭외는 왜 이렇게 어렵고 망설여지던지, 힘든 나날의 연속이었다.

특히 경력 10년차 PD가 이렇게 마음을 못 잡고 헤매고 있다는 점 때문에 나 스스로에게 더 실망하게 되었다. 이런 나를 돌아보며 목적반조를 떠올렸다. 내가 왜 이 일을 하는지, 인생을 왜 살아가는지, 그리고 내가 프로듀서가 된 목적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돌아보고 결심을 새롭게 하니 조금씩 내 생활도 달라졌다. 결심이 약해지고 내 일상이 흐트러졌을 때, 이를 통해 나 자신을 오히려 채찍질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시사프로그램에 조금씩 적응해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고 새벽에 일어나는 것도 덜 힘들어지면서 언제부턴가 '그래도 나름대로 할 만하네'라는 마음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음악 프로를 하던 사람도 나 자신이고, 시사프로그램을 하고 있는 사람도 나 자신인데, 왜 굳이 둘을 구분 지으면서 스스로 더 힘들어 하는 걸까? 둘 다 소중한 나 자신인데…' 그래서 마음을 완전히 돌려보기로 했다.

'세상읽기'를 만들면서 '내 마음읽기'를 하게 된 것이다.

뉴스나 신문을 꾸준히 보다 보니 유용한 정보도 많고 조금이나마 나 자신이 유식해지는 것 같았다. 예전에는 뉴스에 안 좋은 소식이 나오면 듣기 싫고 피하기만 했지만, 이제는 좋지 않은 것을 보면 타산지석으로 삼고 좀 더 나 자신과 주위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섭외 답변을 기다리는 시간에 감사하며 책도 읽고, 산책도 하면서 시간 활용법을 익혀가기 시작했다.

그동안 라디오 PD로서 다양한 장르의 프로그램을 해봤고 지금도 그 과정에 있다는 걸 소중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라디오를 늘 곁에 두고 음악과 감성을 배우면서 자란 라디오 키드였던 내가 이렇게 라디오를 가까이에 두고 관련된 일을 계속 하고 있다는 것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살기로 했다. 처해진 상황과 환경보다는 마음을 어떻게 먹고 어떻게 쓰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마음공부의 아주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원리를 이제야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다.

은생어해(恩生於害), 해 가운데서도 은혜가 나온다고 했다. 2년 전에는 정말 하기 싫고 해(害)처럼 느껴졌던 시사프로그램이 나 자신을 많이 변화시켰고, 내게 많은 성장을 가져다주었다.

이런 나의 마음공부는 지금도 진행형이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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