維摩元自病  유마가 원래 스스로 병이 났거늘
俗人疑示疾  사람들은 보이기 위한 병이라고 의심했다지
形骸豈殊衆  육신이야 어찌 일반 사람과 다를까
超悟獨無匹  깊은 깨달음은 짝이 없이 혼자 이루는 것이라
不言不二門  둘이 아닌 진리를 끝내 말하지 않았나니
萬言從此畢  온갖 가르침의 말이 여기서 끝나는 도다
笑謝文殊師  미소 지으면서 문수보살에게 감사드리니
淸風生丈室  방장실에도 맑은 바람이 감도는 구나


'병에 대하여(述病篇)'-이식(李植 1584 -1647 조선 중기의 문신)

이식의 본관은 덕수, 뛰어난 학자이고 대 문장가로서 당시 흔들리는 한문학의 풍조를 바로잡았으며 저서로 '택당집'이 전한다.

이 시는 인도의 대부호였던 유마거사가 병든 체하자 문병 온 석가의 제자들 중에서 병든 이유를 묻는 문수보살의 질문에 대답한 유마거사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즉 유마거사는 보살은 본래 병이 없으나 중생이 병들기 때문에 보살도 병이 든다고 답하였으며, 깨달음의 경지를 묻자 유마거사는 끝내 침묵을 지켰다고 '유마경'에 전한다.

이식은 인목대비의 폐모론에 반대하여 관직을 버렸고, 대사간으로서 조정의 실정을 논박하다가 여러 번 좌천당했으며, 병자호란 때는 척화론자(斥和論者)로서 심양에 끌려갔으나 탈출하는 등 삶이 순탄치 않았다. 또한 소설의 폐단을 강경하게 지적하여 허균을 공격한 당대의 4대문장가였다. 그런데 깨달음이란 마음에 달려 있고, 마지막엔 침묵하면서 도는 스스로 깨우치는 것이라고 보았으니, 참으로 달통(達通)한 성리학자가 아닌가. 원래 만법이 둘이 아니고 한 근원에서 나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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