能 以 成 有 常 1

이 세상을 전체 아우르고 있는 것은 오직 하늘과 땅이다. 그래서 땅위의 만물은 모두 다 형색을 지닌 것이다. 모양으로 말하면 가로로 되어 있는 것이 있고, 세로로 커가는 것이 있다. 가로로 살아가는 것들을 흔히 일러 동물이라 하고, 세로로 자라는 것을 일러 식물이 한다.

즉 개와 같은 것을 비롯한 동물들은 다 같이 좌우를 누비며 살아가기 때문에 이 모양을 그대로 본 뜬 글자가 '犬'(개 견)이요, 소나무처럼 뿌리가 뻗어 아래에서부터 위를 향해 자라는 것들은 나무라 이르기 때문에 '나무'란 땅속에 묻힌 부분과 위로 자라는 부분을 그대로 본떠 '木'(나무 목)이라 이른 것이다. 그러니 나무가 뿌리를 바탕삼아 자라는 이른바 '鑛物'(광물; 쇠붙이가 묻힌 넓은 땅)이란 동물과 식물이 자리를 잡고 살아가는 바탕이 된다. 그런데 땅속에는 생명을 살리는 물이 있다. 그 까닭은 금은 반드시 물을 낳기 때문에 땅속에 들어있는 것이다. 그래서 동물이니 식물이니 하는 말은 바탕인 땅을 떠나 있을 수 없는 것이며, 땅 또한 하늘이 없다면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즉 몸속에 물(피)을 담고 마음대로 살았다고 좌충우돌 하는 것들은 움직이기 때문에 이를 동물이라 이른 것인데 반하여 물을 먹으며 아래에서 위로 자라는 것들을 일러 식물이라 말한 것이다.

여기에 소위 만물의 영장이라 일컫는 사람은 어떤 모양을 이루고 있는 것인가? 사람의 정면 모양을 그대로 본 뜬 글자가 곧 두 팔과 두 다리를 활짝 벌리고 있는 '大'(큰 대)라 하고, 대라는 글자가 기본이 되어 위에 '一'을 붙이면 하늘이 되고 아래로 '一'을 붙이면 '立'(설립)자가 된다.

따라서 사람은 동·식물들과는 달리 '立生'(입생; 직립하여 살아가는 것)이라 하고, 동물을 '橫生'(횡생; 가로로 누비며 살아가는 것)이라 하고, 식물(植物)을 '直生'(직생; 세로로 자라가는 것)이라 하였다. 즉 반듯하게 서 있으면 세로로 보이지만 걸어가는 모양을 보면 가로로 살아가는 것이 사람이다. 이런 뜻에서 일단 누가 뭐라 해도 사람은 종횡무진으로 대 자유를 지닌채 대지를 활보할 수 있음과 동시에 또한 자리를 잡으면 한자리에서 고스란히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영험한 존재인 것만은 틀림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천지간에 만물과 더불어 살아가면서도 오직 사람만이 우러러 하늘을 쳐다보며 하늘을 살펴 하늘 돌아가는 이치를 궁구할 수 있고, 또 선채로 땅을 굽어 살피며 땅이 지니는 특성이 높고 낮은 구분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또 하늘은 언제나 그대로 있으면서도 항상 땅을 향해 빛을 내려 주기도 하고 또는 어둠을 내려 주기도 하여 이른바 밤과 낮을 끊임없이 순환시켜 주기 때문이 그 빛을 받아 땅에 있는 만물로 하여금 모양과 더불어 색을 갖도록 한다.

그래서 이 땅 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하늘의 지시에 따라 낮에는 성장을 하고 밤에는 쉰다. 이것이 곧 '能以成有常'(능히 써 형색을 이룬다)하는 것이다.

<문역연구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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